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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잘 가르친다는 건 뭐지?

기자명 법보신문

『가르칠 수 있는 용기』파커 J. 파머 지음 / 한문화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알고 싶어서 절에 찾아갑니다. 또는 뭔가 답답해서 가슴이 뻥 뚫릴 만한 말씀을 듣고 싶어서 사찰의 교양대학에 등록합니다. 그들은 절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서 명강사들과 스님들의 알찬 강의와 법문을 들으면서 평소 궁금해 하던 사항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에 빠져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덕분에 풍부한 불교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애매모호한 느낌을 아주 오랫동안 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강사와 스님들은 목이 아프도록 강의를 하는데 사람들은 그럴수록 불교를 어렵게 느끼고 결국은 ‘똑 부러지게 알 수 없는 것이 불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각 사찰이나 불교교양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때 어떤 스님께서 탄식하듯이 내게 던지신 이 한 마디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불교를 쉽고 재미있고 알차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스님의 이 말에 미국의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의 저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혹시라도 스님처럼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분이 계신다면 3장까지를 정독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가르친다’는 말 속에는 다 배운 사람(교사)이 덜 배운 사람(학생)에게 지식을 불어넣어준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 교육현장(강의실)은 권위가 덮이게 마련이고 교사와 학생은 영원히 분리될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교사는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배우러 온 사람보다 몇 권의 책을 더 먼저 읽었을 뿐이고, 몇 시간을 더 먼저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 경험자일 뿐입니다. 불교교양대학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강단에 선 스님이나 법사, 강사는 배우러 온 수강생들보다 조금 먼저 그 문제를 다루어보았고 그들보다 시행착오를 몇 번 더 해본 경험자일 뿐입니다.

엉뚱한 상상입니다만 부처님이 “불교는 이러이러하다”라고 가르치셨을까요? 그보다는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며 대화를 유도해 낸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훌륭한 교사는 그의 지침을 받은 학생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요’,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의 정체성을 찾게 해주려면 교사(강사)는 학생과 내면적인 유대감을 가져야 하며’, ‘교사 자신의 자아와 가르침의 내용, 그리고 학생이 생명의 그물 속으로 촘촘하게 엮어져서 그 속에서 학생들 스스로 하나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것이 훌륭한 교사’라는 파머의 말을 기억하고서 강단에 서면 그날의 강의실은 극락이 따로 없는 즐거운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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