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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명강의]티베트 스승 링 린포체

기자명 법보신문

“일체 중생이 곧 ‘나의 어머니’ 무아 알고 보리심 낼 때 깨달아”

오늘 저는 여러분께 『화엄경』의 일반적인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법문에 앞서 티베트본 『화엄경』 여섯 부를 통도사에 봉헌하기도 했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주로 보현보살을 대상으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입니다. 제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기 위한 길이 설해져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화엄경』은 대부분의 보살님이 수행하는 길을 보여주신 경전입니다.

경이 설해지는 자리는 네 가지를 충분히 원만하게 가지고 있는 공간입니다. 네 가지의 원만이란 ‘누가 설하고’, ‘어디에서 설하고’, ‘어떤 대중에게 설하고’, ‘무엇을 설할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합니다. 『화엄경』의 경우, 부처님께서 설하셨고, 보현보살과 같은 큰 보살님께 설했고, 『화엄경』의 말씀을 설하셨고, 영축산에서 이 법을 설하셨다고 하는 네 가지의 원만함에 대해서 경의 첫머리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나시에서 사성제의 법을 설하시는 과정 속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근본적인 토대, 수행하는 길, 그리고 수행의 길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성취하는 과, 이 세 가지가 등장합니다. 『화엄경』의 말씀도 처음에는 사성제의 가르침에서 출발합니다. 사성제의 가르침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네 가지의 진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고통에 대한 부분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고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고고는 우리의 육체적인 고통과 같은 것이고, 괴고는 일시적으로는 안락을 주는 것 같지만 그 자체가 결국은 고통인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자세히 설해지는 행고는 과거 전생의 업력에 의해서 일체 중생이 육도를 윤회하는 과정 속에 끊임없이 고통받는 것을 말합니다.

모두의 고통 짊어질 마음 가져야

제일 먼저 고통에 대해 말씀드린 이유는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출리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리’란 윤회의 고통을 보고 거기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고통을 정확하게 보면 아집과 아만, 악업을 없애고 선업을 키울 수 있습니다. 모든 자비심도 일체 중생의 고통을 보는 마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중생의 고통을 보고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이것은 좥입보리행론좦에서 자세히 설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근원은 집(集)에 해당됩니다. 집은 업(業)과 번뇌(煩惱)를 의미합니다. 집과 관련하여 일체 중생이 윤회하는 12연기의 말씀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번뇌를 없앤 것이 멸제(滅諦)에 해당합니다. 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성에 대한 가르침을 인식해야 합니다. 반야심경에서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 명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체 모든 법이 무아(無我)라는 가르침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뗀진’이라고 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합체해서 ‘뗀진’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지, 자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라는 마음이 일어나지만 ‘나’라고 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고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무아(無我)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아를 깨닫기 위해서 결국 우리는 수행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량도(資糧道), 가행도(加行道),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라고 하는 다섯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처음 우리 마음속에서 윤회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청정한 출리심이 일어나는 것을 자량도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가행도는 무아를 깨닫기 위해서 지(止), 관(觀) 수행이 하나로 합쳐지는 처음의 단계입니다. 그 다음에 공(空)을 처음으로 보는 단계가 견도이고, 견도의 단계에서 끊임없이 보살의 행을 쌓아가면서 수도, 무학도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집멸도라는 사성제에 대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대승의 길에서는 육바라밀을 설명합니다. 육바라밀은 보살의 실천입니다. 보살이 육바라밀의 행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데는 첫째, 미륵보살의 가르침에서 전승되는 일곱 가지 인과의 가르침을 통해서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과, 둘째,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통해서 전승되는 나와 남을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곱 가지 인과의 가르침을 통해서 보리심을 일으키는 방법에서는 제일 먼저 일체 중생이 ‘나의 어머니’라는 생각을 반드시 일으켜야 합니다. 중생에게는 어느 장소에서 태어나고 태어나지 않고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없을뿐더러, 과거 전생 수없는 세월동안 윤회해 왔기 때문이 일체 중생이 한번쯤은 나의 어머니였을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은혜를 반드시 갚으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고, 그러할 때 모든 중생의 고통을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두 번째 방법인 나와 남을 바꾸는 것은 나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남을 무시하는 마음을 바꾸어서 나를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남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수행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살기 어렵습니다. 만약에 돈이 있더라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고, 입을 옷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점에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인욕바라밀을 실천할 때에도 귀하고 친한 사람에게 인욕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거나 적(敵)인 사람에게 그러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 때 인욕바라밀을 올바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도움은 대단히 큰 은혜와 공덕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 자비심은 모든 중생에 평등

즉, 인욕의 대상도 중생이고, 보리심의 대상도 중생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자비심과 연비심을 일으키는 대상도 바로 중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우리에게 성불하는 가장 큰 은혜로운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일체 모든 중생의 고통을 없앨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어서 그 힘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 청정한 마음으로 “일체 모든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겠습니다”라는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고,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특히 실제로 우리를 지켜주고 구제해 주는 것은 법(法)입니다. 부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나투셔서 죄나 업, 번뇌를 없애주지 않습니다. 그런 법 중에서 궁극적으로 깨달아야 할 법은 ‘무아(無我)’입니다. 이것은 스님들 뿐만 아니라 재가자들도 같이 행해야 합니다. 오로지 법을 통해서 ‘자아가 없다’라고 깨닫는 청정한 지혜를 통해서만이 우리가 유일하게 구제될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자로서는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 그리고 대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입장으로서는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 그 두 가지를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은 똑같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데바닷타라고 하는 사람이 부처님께 끊임없이 해를 끼치려고 했지만, 아들인 라훌라에 대해서나, 데바닷타에 대해서나 부처님께서 일으키는 마음은 똑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부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 때문에 부처님의 자비심의 마음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과의 업을 알고, 조그마한 선업이라도 할 수 있으면 실천하고, 조그마한 불선업이라도 없앨 수 있는 만큼 없애야 합니다. 인과의 업의 이치는 대단히 엄격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시를 지극하게 하는데도 보시의 과보를 받지 못하고 현생에 계속 재물이 부족하거나 재물의 고통을 받는 경우를 가끔씩 봅니다. 그럴 경우에 사람들은 보시를 하더라도 보시의 과보가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의심하지만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과거 전생에 보시하지 못하는 애착 행위의 결과로, 지금 보시를 하더라도 재정적인 고통을 받는 것이지, 절대 인과의 진리에는 어김이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 실천이 중요

사람의 수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짧습니다. 이 짧은 수명 속에서 정말로 귀한 보배를 챙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의 법을 만나고, 또 대승불교의 가르침까지도 만났는데 실천을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마치 아주 형편없는 개나 형편없는 벌레가 죽는 것과 똑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큰 손실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끊임없이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울러서 티베트가 대단히 힘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티베트의 불교와 문화도 지금 중국의 억압 속에서 대단히 고통을 받고 있고, 위급한 상황에 있습니다. 티베트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길 바랍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한국 불자들과 한국불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한국에 달라이 라마께서도 방문하셔서 여러분들을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링 린포체 는

1985년 8월 인도 다람살라에서 태어났다. 당시 ‘텐진 초광’이었던 그는 1987년 달라이라마의 환생 스승인 링 린포체를 찾기 위한 스승들의 시험에서 전생 링 린포체가 썼던 염주를 찾아내는 등 수십여개에 달하는 시험 과정을 거쳐 1993년 링 린포체의 환생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이 법문은 링 린포체가 지난 11월 30일 영축총림 통도사 설법전에서 봉행된 53 선지식 초청 화엄산림 대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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