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보신문 인기 연재 필진 6인의 ‘연재를 마치며’

기자명 법보신문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 「법보신문」에 칼럼과 기획물을 기고해온 여섯 명의 연재물이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갈무리 된다. 긴 세월을 「법보신문」 독자들과 함께 해온 기고가들이 연재를 갈무리하면서 ‘법보신문 연재를 마치며’라는 주제의 글을 통해 그동안 풀어놓은 글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섯 명 기고가들의 회향 글을 지면에 옮긴다. <편집자>

정사유 수행하는 자세로 집필
‘21세기 불교의 철학적 읽기’ 연재 김 형 효

천학비재한 제게 법보시문이 4년 연속으로 글을 맡겨주었다. 실로 신문게재의 글로서 파격적인 기간이었다. 불교의 덕화를 입은지가 얕은 필자로서 이런 후대를 받은 것은 너무 흥감한 일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제가 서양철학에 눈을 뜬 이후로 실존주의와 현상학, 그리고 구조주의와 해체주의를 섭렵하면서 어떤 생각이 구체화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 나고서 남긴 발자취가 역사적으로 무엇이라 불리워질 것인가?

불교적으로 보면 그냥 이 세상에 왔다가 그렇게 가는 것인데 무슨 이름이 필요한 일이겠는가 하고 생각하겠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고승대덕이야 그런 작위를 하지 않아도 마음의 허기가 발동을 하지 않겠지만, 무명의 중생은 너무 배고픈 허기가 작동하여 견딜 수 없는 것 같아서 허기를 채워볼려는 마음의 일단이 작용한 것이다. 그 허기를 채워보려는 마음이 저로 하여금 철학적 진리를 모색하기 위한 여정의 길을 밟게 하였다. 도대체 내가 철학자로서 찾았다라고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그 지대가 무엇일까?

공부하는 와중에 나의 사유는 점차로 서양에서 동양에로 전이되어 감을 느꼈다. 그리고 동양사상에서도 유교에서부터 도가사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교사상으로 마음의 중심이 이전되어가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렸다. 지금 단계에서 저는 막연히 동서양 철학을 공부한 학자라기 보다, 부처님이 설파한 세상의 사실을 철학의 사유논리로 그대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즉 팔정도의 정사유에 머물려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부처님의 제자라고 불리워졌으면 좋겠다.

새해에도 이런 소망이 원이 되었든지, 저는 또 승찬대사의 『신심명(信心銘)』을 다시 철학적으로 해석해 보는 계기를 얻었다. 신심명은 이미 성철큰스님이 번역한 대본과 해설이 있는데, 저의 해석은 그 스님의 번역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아주 다른 철학적 산보가 될 것이다. 이것은 불자들로 하여금 불교를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일에 일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될 것이다. 새해에 다시 뵙게 될 것을 바라면서.

용서와 아량으로 대하는 게 자리이타
‘이종찬 칼럼’ 연재 이 종 찬 교수

직업상 아는 체하고 살아야 하는 어리석음이 몸에 배어서 남이 이야기 좀 해달라 하면 사양할 줄도 모르고 아는 체한 것이 이제는 부끄럽기도 하련만, 그것 자체가 무디어서 오늘도 객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법보신문사에서 격주로 한 번씩 짤막한 이야기를 써 보라는 제안에 거절을 못하고 매달린 지가 벌써 3년 하고도 반이 가까운 기간이 되었네요. 첫 회로 활자화한 날짜가 정확히 2005년 7월 6일이었으니, 그리 짧은 세월은 아니었네요. 별 읽을거리도 못되는 글을 독자여러분이 3년 여의 시간을 보아 주셨으니 참으로 고맙네요.

첫 회의 주제가 모순의 만남이었으니, 어쩌면 이러한 모순으로 독자와 만났던 것이지요. 이런 모순을 긴 시간 유지했으니 남은 것은 꼬이고 꼬인 실타래의 얽힘이 아닐까 걱정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하네요. 첫 회의 내용이 어차피 삶이란 모순으로 출발하는 것이니, 모순적 역리를 순리로 되돌리는 지혜를 찾자고 제안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해의 마무리와 함께한 끝 회에서 순리의 제자리로 돌아왔다면 적이 다행한 일일 터인데 그러하지 못했을 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격주로 보내는 원고이지만 기일을 지키지 못할까 하여 항시 조바심도 되었을 그간의 담당 기자님들에게 이제는 마음 깊이 위로 드려야 하겠네요. 처음부터 담당했던 안소정 기자님은 낯선 늙은이의 글을 잘 보아주어 고마웠고, 그 뒤를 이은 남수연 기자님은 상냥한 음성으로 틀린 곳을 알려 주며 교정해 주신 친절함 고맙네요.

긴 기간 동안 읽어 주신 법보신문의 독자 여러분. 공감된 느낌은 저를 아끼는 사랑으로 간직해 주시고, 비위에 거슬렸던 부분은 연재를 마치는 이 시간과 함께 잊어 주시지요. 잘됐건 잘못됐건 용서와 아량으로 대하면 그저 그런대로 값어치가 있겠지요, 그것이 결국 자리요 이타 아니겠나요.

새 해 새 얼굴 새 글에서 더 새로운 기쁨 맞이하시기를 소원하는 것으로 묵은 해 보내고 새 해 맞는 인사로 대신하겠습니다. 내내 행복하세요.

불모지 개척하듯이 자료와 씨름한 시간
‘다시 쓰는 근현대불교사’ 연재 김 순 석 교수

2006년 5월에 처음 법보신문사로부터 ‘다시 쓰는 근현대불교사’를 연재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근현대불교사에 대한 연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모지나 다름없었고, 일반인의 인식 또한 친일불교라는 점에 치우쳐 있는 실정이었다.

누군가는 바로 잡아야 할 일이지만 학문도 부족하고, 천성이 게으른 내가 할 수 있을까 겁부터 났다. 신문은 대중 여론을 선도하는 매체이고, 그 위력 또한 대단하다. 그런 까닭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적지 않은 부담이 느껴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데는 이 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작할 때는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점검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좋은 글을 쓰리라 당차게 마음을 먹었다. 막상 연재가 시작되니 처음 각오와는 달리 늘 시간에 쫓기고 허덕이는 일이 잦았다. 토요일이면 동국대학교 불교학자료실을 찾아서 자료를 열람하였고, 관련된 인사들에게 전화도 하고 직접 찾아가 면담을 하기도 하였다.

글을 쓰면서 근대 부분의 서술은 불교계가 근대 사회에 적응하려는 긍정적인 모습을 그리려고 하였다. 일제 시대 불교사는 친일과 항일적인 모습을 균형 있게 보고자 하였다. 해방 이후 비구·대처승의 분쟁 역시 객관적인 입장을 지니고자 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불교계가 진행한 의미 있는 사업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 벌써 2년 7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뒤돌아보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원고가 손을 떠나는 순간 좀 더 성실하게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평가는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몫이다. 독자들로부터 가끔씩 격려 전화를 받았을 때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연재를 마치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제한된 지면이라서 해야 할 이야기를 다 못한 점이 아쉽다. 불교계의 환경문제, 문화재 보호 문제, 해외포교와 교류 사업, 사회복지 사업 부분과 노인문제, 불교계의 디지털화 사업 등을 다루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간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름다움 많기에 행복한 사문
‘기억으로 남은 스님’ 연재 제주 약천사 성 원 스님

어느새 다시 차가운 계절이 돌아왔다.
찬바람이 강하게 얼굴을 쓰쳐 어느 때보다 생기가 돌던 계절에 원고를 청탁받았다. 처음엔 몇 번 정도 쓰는 줄 알았는데 1년이 되었다. 때로는 기억을 떠올리지 못해 마감시간 독촉을 받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왜 이렇게도 기억에 스치는 스님들이 많은지 모를 일이다.

사실 그동안 함부로 이름을 들먹여 누가되신 분들도 많은 줄 안다. 그저 나 자신이 편하다는 생각에서 결례를 범했는데도 모두들 넓은 아량으로 섭수해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한편으로 이름 올리는 것이 차마 송구스러워 다루지 못한 분들도 많은 것 같다. 한정된 지면에 다 그려 넣을 재주가 없어 다루지 못한 분들도 참 많고, 또 기억속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온전히 살려내지 못할 것 같아 다루지 못한 스님들도 많다.

연재를 하면서 스스로 삶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때로는 잊혀진 듯 살아왔던 기억 속에서 이토록 환희로운 기억의 보석이 숨겨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만남과 감동에 대해 새롭게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지난 1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살아 갈 날들에 대한 보다 뚜렷한 좌표를 찾은 것 같아 큰 위안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겨지기보다는 누군가를 아름다운 기억으로 스스로에게 남도록 사는 삶이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다.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이 더욱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늘 나는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문이라 자칭한다. 누군가 나를 아름답게 생각해 주어서가 아니라 내 기억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행복한 기억 때문에 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을 뿐이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삶을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

지리산 암자서 일군 독창적 작업
‘불교미학에세이’ 연재 이 도 흠 교수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신비하고 이 지구 전체를 삼킬 듯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던 시절, 석굴암 본존불과 미륵반가상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여 망아를 경험한 소년은 저 지극한 아름다움이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하여 알고 싶었다. 청년은 네 가족이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모로 누워 소위 ‘칼잠’을 자는 일세방 체험을 하고서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고자 하였다. 이 학도는 다 털어버리고 공장으로 가려다 붙잡혀 향가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그를 더 이해하기 위하여 불교를 접하게 된다.

결국 불교를 통해,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고 왜 스티븐 디덜러스가 최종으로 선택한 인간의 길이 혁명가가 아니라 예술가냐고 반문하던 한 학궁(學窮)은 예술과 혁명, 칸트와 마르크스, 거룩하고 아름다운 길과 비천하고 질박한 길, 텍스트와 맥락, 감성과 이성을 종합할 수 있는 빛을 발견하였다. 이를 글로 적은 것이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종합』이다.

화쟁기호학을 통해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작업에 매진하다가 어두운 기억의 저 편에 희미하지만 아직 빛나는 것이 보였다. 소년 때의 꿈이었다. 마침 「법보신문」의 배려로 그 꿈을 펼친 것은 행운이다. 꿈을 펼치려 불교예술과 동양미학에 관련된 글을 천착하였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교 예술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감상문, 역사적 개괄이 대부분이었고, 불교미학이란 표지가 붙은 것도 미적 변용이 없이 불교철학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거나 서양미학을 각색한 것이었다. 불교미학이라면 불교의 사유와 패러다임으로 불교철학을 미학이론으로 변용하고 이를 실제 불교 예술작품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 자신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었지만, 마침 연구년이라 지리산의 암자에서 경전을 읽고 별이 가득한 능선을 거닐며 사색을 깊이 할 수 있었다.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작업이라 자부하지만, 비약과 억단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질정을 바란다.
세상이 많이 어둡다. 광기의 폭력이 난무한다. 아름다움의 세계에만 머문다면 직무유기일 듯하다. 다시 청년 시절로 돌아가 철이 덜 들었다는 소리를 들어야겠다. 허, 허, 허!


불교와 현대학문 비교는 부처님 법을 장엄하는 일
‘新교상판석’ 연재 연 제 홍 교수
옛말에 ‘서부진언(書不盡言) 언부진의(言不盡意)’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면 ‘글로써 하고 싶은 말을 다 나타내기 어렵고, 말로써 의중을 명확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만큼 상호간에 의사전달이 쉽지 않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간 신(新)교상판석이라는 명제 하에 두서없이 다양한 분야와 불교간의 접목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취지에는 불교란 인간을 중심으로 한 가르침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즉 신(神)이나 자연을 우선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탐구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베푼 것이 석가세존의 뜻이었다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더불어 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부족한 점은 보충하고, 잘난 점은 자제하도록 하여, 나의 장단점이 하나의 둥근 인격으로 변모해가는 것이 중도(中道)의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개별 인간의 구조와 속성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간과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확대해가며, 인간의 의식을 무한대로 넓혀가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인간의 내면에는 무한히 넓은 천지가 있다고 하는 ‘인간은 소천지’라고 하거나, ‘불국정토가 내 마음 안에 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내 마음안의 세상’에 대한 불교적 이해를, 기타 종교 및 현대 학문들과 비교하는 것은 불교의 이해에 도움을 줄지언정 결코 장애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불교는 가르침의 큰 바다와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모든 인간이 궁금해 하거나 알아야할 부분들이 집대성되어 있는 지혜와 지식의 창고라고 할 것이다.

불가의 핵심은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변화와 불변이자, 불이(不二)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면 무아 삼매지경으로 입정에 들어있음과 무아 보살행으로 세상에서 살아감이 둘이 아닐 것이다.

단지 무아(無我)라는 경지만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변화란 늘상 일어나는 것이지만 변화를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타종교와 현대학문에 대한 이해를 하면 할수록, 그것 또한 불법의 한 부분을 장엄하고 있다는 것이 신(新)교상판석을 통해 공유하려는 필자의 뜻이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