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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교수의 다시읽는 신심명]②『신심명』과 한국병 치료

기자명 법보신문

편협한 단답주의-과격한 감정주의가 한국병
이성 아닌 마음 깊은 사유만이 유일한 ‘처방’

지난 1회 깅좌에서 서양철학자들의 이름들이 나오기에 거기에 익숙하지 않는 이들은 생경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들을 잘 몰라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종종 그들의 이름들이 등장할 터인데, 이 글의 내용상 본질적인 것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서양철학과 동양사상은 전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분들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불교사상은 동양 전통사상이므로 순수하게 동양식으로만 사유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금방 무너져버리는 단견이므로 재고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런 생각은 순혈주의나 순수주의의 어리석음에 비유됨직 하다. 인도불교가 중국문화에 유입되어서 더 풍요로워지고 변혁되어 성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자명해진다.

문화와 종교와 철학은 다문화에 접목되어서 잡종화되어야 한다. 지금은 동양과 서양이 서로 융합되어 잡종의 새로운 변이를 받아들여야 할 때에 이르렀다. 한국은 원리주의(fundamentalism)와 순수주의(purism)의 자기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늘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한국 불교사에서도 선(禪)순수주의의 공허는 교학순수주의의 맹목만큼 우리를 실력 없게끔 만들었다.

지난 회에 서양 철학자들이 등장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모두가 무신론자들이고 이성적 논리를 거부하는 이들이다. 오늘날 서양철학에 유신론과 이성론과 개념론은 시들어져서 큰 사유의 맥락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서양에서 기독교와 신학이 별로 먹혀들지 않는다. 미국은 다소 예외인 것 갖지만, 미국의 열성적 기독교 신앙은 미국문명에 깊숙이 젖어든 과학기술주의의 반신학적 허무주의의 무의미를 경계하기 위하여 생긴 일종의 반작용이다.

미국도 열성적 신앙의 열광주의를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의 일반적 지성의 경향도 무식한 신앙주의의 상태를 떠나, 신에 대한 신앙이 아예 필요 없는 마음의 수련종교로 사람들이 전향하고 있다고 한다. 21세기는 반신앙주의, 반이성주의, 반인간중심주의, 반자의식주의, 반작위주의, 반물질주의 등의 사유가 새 옷을 입고 출현할 것이다.

그런 사유를 인도하는 대표적 불교사상이 승찬대사가 지은 『신심명』이다. 더구나 이 『신심명』은 경직된 순수 원리주의의 사유를 증발시킨다. 한국병은 어떤 원리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강한 집착 때문에 철학적 사유의 심화보다 오히려 투쟁적이고 전투적인 주장의 목소리를 매우 높인다. 특히 한국기독교가 매우 목소리를 높이는 독선적 열광의 병에 걸렸고, 다른 나라에는 이미 별로 문제가 안 되는 정치적 좌우의 격돌위기가 다시 생겨나고 있으며, 또 원리주의적 환경론자의 주장과 원리주의적 경제론자의 주장이 극열한 대립갈등의 골로 진행하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병은 편협하고 단답(短答)에 만족하는 단순주의와 과격한 감정주의가 순수주의를 명분으로 타협을 배제하고 자기 고집으로 줄달음치는 데 있다. 편협한 단답주의, 과격한 감정주의는 쉽게 집단적 흥분으로 변하여 한국은 격정의 나라, 단세포적 사고의 나라, 소 잃고 외양간도 제대로 못 고치는 나라, 홧김에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나라, 너 죽고 나 죽자는 집단적 히스테리 나라, 신앙의 집단적 열광이 집단적 종말사상의 승천으로 이어져 모든 가정을 다 포기하는 나라, 외부세력의 격랑에 쉽게 출렁거려 종교를 무속에서 불교, 유교, 천주교, 기독교로 집단적 전환을 잘 하는 나라의 이미지로 굳혀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모든 병적 징후에 대하여 지자들은 이성의 회복을 주장한다. 이성의 회복? 하나마나 하는 소리다. 우리사회에서 하나마나 하는 소리가 너무 흔하게 터진다. 『신심명』은 저런 한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 처방서이기도 하다. 이성이 한국병을 치유시키는 처방이 아니라, 마음의 깊이가 한국병을 잠재우는 최적의 길이겠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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