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에도 한 물건은 온 일이 없고 갈 때에도 이 한 물건은 갈 일이 없다(來無一物來 去無一物去).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일이 없어 청산과 풀은 스스로 푸름이로다(去來本無事 靑山草自靑).” (덕숭총림 제3대 방장 원담 대종사 임종게 전문)
초록 생명들이 소생하는 봄, 1500여 사부대중들이 예산 수덕사에 모여 덕숭산 천진도인이라 칭송받던 원담 대종사 열반 1주년을 기렸다.
예산 수덕사(주지 옹산)는 3월 7일 오전 덕숭산 대웅전 앞마당에서 ‘덕숭총림 제3대 방장 진성 원담 대종사 1주기 추모다례법회’를 봉행했다.
1926년 전북 옥구에서 사바세계와 인연을 맺은 원담 대종사는 당시 열 살이던 1933년 벽초 스님을 은사로 만공 스님을 계사로 수계득도했다. 이어 스님은 1958년 지리산 화엄사 주지, 64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70년 수덕사 주지, 83년 덕숭총림을 설립해 이듬해 제3대 방장에 취임했다. 1994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소임을 맡은 스님은 2004년 대종사 법계를 품수하고 2008년 3월 18일 수덕사 염화실에서 열반에 들었다. 법랍 76년, 세수 83년.
조계종 종정예하 법전 대종사는 법어를 통해 “종사는 일찍이 산문에 귀의해 일념정진으로 무생법인(無生法印)을 증득하여 융통자재(融通自在)하였고 대용(大用)을 보인 우리 종문의 눈 밝은 선지식”이라며 “산문에 머물 땐 밀의(密意)를 전하는 본분종사(本分宗師)였고 밖으로 나설 땐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춘 만행보살(萬行菩薩)이니, 오늘은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하늘의 관문을 흔들어 옛 가풍을 떨치고 있다”고 원담 대종사를 추모했다.
근현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세간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경허, 만공 스님의 법맥을 이은 원담 스님은 대중을 대할 때 항상 자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아 ‘덕숭산 천진불’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탈속의 경지를 이룬 일피휘지로 선풍을 드날려 당대 최고의 선필로도 일컬어진다.
수덕사 문중들은 원담 스님 영정 앞에 법어 및 추모문집을 봉정했고, 사부대중들은 하얀 국화를 헌화했다.
수덕사 수좌이자 화계사 회주 설정 스님은 문도대표로 단상에 올라 “은사 원담 대종사는 일생을 불조의 혜명을 이어 오셨다. 무섭기는 호랑이 같았고, 부드럽고 따스하기로는 봄바람 같았다”며 “우리 문도들은 스님의 가풍에 흠집 없이 수행 정진, 가풍을 이어나갈 것을 다시 한 번 서원한다”고 말했다.
추모다례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포교원장 혜총, 총무부장 원학, 호법부장 정만, 재무부장 정념 스님 등 총무원 주요 소임 스님들과 월정사 주지 정념, 법주사 주지 노현, 송광사 주지 영조, 관음사 주지 시몽 스님 등 각 교구본사 스님들을 비롯한 덕숭총림 수좌 설정, 수덕사 주지 옹산, 문도 대중,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 등 사부대중 1500여명이 동참했다.
예산 수덕사=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