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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봄 인사를 물었다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세상에 수행보다 좋은 게 없고(世間莫若修行好), 천하에 밥 먹기보다 어려운 일이 없다(天下無如吃飯難).
이 시는 북평(北平) 백운관의 주련인데, 명나라 때부터 내려오는 것이라 한다.

‘다반사(茶飯事)’는 말 그대로 밥 먹고 차 마시는 일로서 참으로 일상이요, 수행은 뭔가 특단의 용기가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시인은 정말 그럴까 하고 되물었다. 원래 밖으로 잘하기보다 안으로 잘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동서양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관계정립은 많은 차이가 난다. 자기 경험을 지혜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주의가 사회적 시스템으로 발전한 서양과 달리 동양은 전체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원만한 인간상을 선호해 왔다.

사회의 기능이란 것이 개인의 성취에 이익 되어야지 개인이 사회로부터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회는 옳지 않다. 공자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최고의 덕으로 쳤던 분이다. “안회라는 사람이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더니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죽고 지금은 없다”라고 할 만큼 삼천 제자 중에 안회를 가장 사랑했던 것도 그의 이런 자세 때문이다.

안회가 죽었을 때 아버지인 안로가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외관(槨)을 살 것을 청하였다. 그만큼 가난했다. 흥미롭게도 불청(不聽)하는 공자의 변,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결국 자기 자식이다. 내 아들인 이(鯉)가 죽었을 때도 내관(內棺)뿐이었다. 내가 도보로 다닐지라도 수레를 팔 수 없는 것은 대부의 직위에 있었기 때문에 걸어 다닐 수 없어서이다.” 일정이상의 관직을 지내면 ‘걸어서 다닐 수’ 없었던 ‘예’가 있었던가 보다.

중세 유럽의 기사가 섬기던 다섯 가지 미덕이 있다. 첫째는 절제, 둘째는 용기, 셋째는 사랑, 넷째는 충성, 그리고 다섯째는 예의 바름이다. 이 ‘예의 바름’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단정하게 처신하라는 주문이다. 이 세상의 고통을 함께 받으려는 사람은 영웅이다.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칠 수 있는 ‘영웅’은 자비(compassion)를 수용할 만한 다정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passion’은 곧 고통인데, 이걸 ‘함께(com-)’하는 것이 바로 자비다. 세상은 홀로 이뤄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안회가 죽자 공자가 상심하여 곡을 지나치게 했다는 모습이 『논어』에도 나오지만, 가장 사랑하는 제자의 장례임에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었던 원칙성이 그의 마르지 않은 영혼의 샘이 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계본에는 누군가 계율을 범했을 때 어떤 것은 ‘마른 풀로 덮듯’ 조용히 처리하라 한다. 전임자의 잘잘못을 낱낱이 들춰내는 ‘뒤처리’도 있겠지만, ‘남을 이뤄주는 것이 아름다운 일(成人之美)’이라는 처신 또한 세상에 없지 않다. 정치에서의 열정은 곧 탐욕으로 흐르기 마련이어서 그 물에 노는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꼭 전직 대통령이 구설에 올라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예의, 그리고 스스로 기품을 잃어서는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거울  삼고 싶을 뿐이다.

새벽 산책길에 재채기를 자주 하고 있다. 문득 이때쯤 생기는 변화임을 생각해내고는 뒤뜰에 나가보니 라일락이 보랏빛 꽃과 함께 향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한 낮의 햇살을 받으며 봄도 나도 서로에게 물었다. 요즘 재미는 어떠시냐고.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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