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주의[主義]를 가르치지 않았다
붓다는 주의[主義]를 가르치지 않았다
  • 법보신문
  • 승인 2009.05.2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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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없다』/스티븐 배철러 지음/김윤성 옮김/이론과 실천

몇 해 전 ‘낙태’와 관련한 한 세미나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이 낙태의 실태와 그 폐해에 대한 다양한 사례 및 연구결과를 보고하더니 “타종교계는 낙태 불가 입장이다. 그러니 불교계도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하길 바란다”라고 주문했습니다.

불교계의 입장이라...

세상 어느 종교가 생명을 경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 낙태를 잘하는 일이라고 권장하는 종교도 없습니다. 하지만 설령 부처님이 낙태에 대해 옳지 않다고 규정했다고 해서 정작 이 문제에 봉착한 임산부에게 “경전에서 이렇게 말했으니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확인시켜 주신 분입니다. 즉, 자기 문제를 자기 입장에서 자기 머리와 가슴으로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리기를 권하신 분입니다. 자유롭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내리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되며, 심지어 풍습이 그렇다느니, 경전에 그렇게 쓰였다느니 해서 그냥 쉽게 결론을 내려버리거나 그렇게 믿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신 분입니다. 다만 결정하기까지의 자유를 누린 만큼 결정에 따른 책임은 온전히 당사자에게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부처님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그런 부처님의 의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딸딸 외우고 그걸 믿어야 불제자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배철러 교수는 이 책 도입부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 붓다는 ‘다르마 행’이라는 하나의 ‘방법’을 가르쳤지 결코 또 하나의 ‘~주의(ism)’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다르마는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해야 하는 것이다... 붓다는 그의 이성이 그를 데려가는 극한까지 그 이성을 따랐으며, 증명될 수 없는 결론을 가지고 확실한 척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이 ‘과학지상주의’라는 신조로 타락해 온 것과 비슷하게 다르마 행 역시 ‘부디즘’이라는 하나의 신조로 변해버리고 말았다.”(40쪽 요약인용)

붓다의 가르침이 ‘진리’가 아니라 ‘부디즘’ 즉 종교가 되었을 때 “우리가 처한 상황의 독특한 우연성에 대해 그저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상투적인 해답과 교리만 반복하게 되며”, “오늘날의 깨달음의 문화에 창조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은 채 그저 사라져 가는 과거의 문화들을 고수하게 되는(177쪽)” 우려가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 뜨끔해 집니다. 벌써 그런 우려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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