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법문 명강의] 지리산 칠불사 회주 통광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지혜-묘용 본래 구족하니 닦고 밝히면 곧 대자유인

음력 칠월 보름은 우란분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란분절은 목련존자가 무간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시방의 스님들께 공양을 베풀어 어머님을 천도하고 나아가 조상을 천도했다는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어 받는 고통도 크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겪게 되는 고통도 적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고통이 있지만 누구나 최후에 겪는 고통인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의 고통은 태어났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나고 죽음의 고통을 여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목적은 이고득락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600년경에 마명 보살님께서 부처님의 말씀 중 불법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낸 100권의 경전에서 그 중요한 뜻을 간추려 『대승기신론』을 만드셨습니다. 마명 보살은 기신론을 지은 이유에 대해 ‘생사고를 여의고 나지도 죽지도 않는 열반락을 얻도록 하기 위해 기신론을 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삼계가 편안함이 없는 것이 마치 불난 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그대로 고통의 덩어리로 고통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업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업의 과보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이해할 때 부처님 법을 믿지 않을 수 없는 신심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위를 하면 즐거운 과보를 받고 악한 행위를 하면 고통의 과보를 받는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만히 살펴보면 마치 인과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어긋나지 않도록 살고 있음에도 몸에 병도 생기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쁜 짓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하는 일이 잘 돼가는 모습을 보면 인과법이라는 것이 실제로 맞는지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과보를 받는 데에는 세 가지의 시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순생보라고 합니다. 순생보란 ‘생을 따라서 과보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전생에 지은 것은 금생에 받고 금생에 지은 것은 내생에 받는 것입니다. 지금 바르게 살고 있는데도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전생에 잘못한 것을 지금 받는 것이고, 지금 선한 일을 한 것은 내생에 가서 받을 것입니다. 지금 잘 못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것은 전생에 좋은 일을 한 그 과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순현보가 있습니다.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아주 나쁜 행위나 아주 선한 행위를 할 때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순후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안 받고 금생에 지은 것을 내생에 받지 않는 경우입니다. 서로 인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인과로 얽힌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죽어 천상에 태어나고 한 사람은 인간에 태어났다면 서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 과보가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천만겁이 지나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여 인연이 만나질 때에 서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후보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근본 뜻은 인과법대로 살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불교가 인과론과 숙명론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순현보, 즉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는데 있습니다. 사주관상학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관상이나 사주를 갖추고 있더라도 그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원력과 실천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부귀영화상이 차츰 빈천상으로 바뀌어 갑니다.

단순히 얼굴 모양 뿐 아니라 주변 환경도 빈천하게 바뀌어갑니다. 관상학적으로는 비록 빈천한 상을 가졌더라도 부귀영화를 누릴만한 행동을 한다면 그 얼굴은 부귀상으로 바뀌고 또한 주변 환경과 모든 여건이 바뀌어 부귀를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관상이 불여심상이라는 것입니다.
『범망경』에 ‘중생이 부처의 계를 받으면 바로 제불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자기의 참 마음을 깨달아 증득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낳아준 이 몸을 갖고 금생에 바로 성불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순현보입니다.
영가를 천도한다는 것은 이 몸과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온갖 애착을 다 버리고 불생불멸의 진여자성을 깨달아 생사고를 여의고 열반락을 얻도록 법문을 들려 주는 것입니다.

태어나도 본래 태어난 적이 없고 / 죽어도 본래 죽은 적이 없다. / 태어남과 죽음은 본래 허망한 것이고 / 생멸을 여읜 실상은 항상 그대로 있도다.

생멸을 여읜 실상을 어찌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이렇게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본래 생사가 없으니 이것을 바로 보아 깨달으면 이 자리가 바로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가르침으로 유명한 중국의 백장 선사의 법문 가운데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부귀 누릴 행동하면 부귀상 돼

신령한 광명이 홀로 빛나 멀리 육근과 육진을 벗어났다. / 본체에 참되고 영원함 드러나 모든 인연에 구애됨이 없다. / 참된 성품은 물들지 않아 본래 원만하게 이루어졌으니, / 다만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로다.

참선을 하던 염불, 주력, 간경을 하던 그 목적은 허망한 망념을 여의고 일념을 이루어 본래 청정한 본연의 자리를 깨닫는데 있습니다.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한 생각 놓지 않고 일념으로 정진하여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을 깨칠 때 참으로 영가를 천도하는 것이 되고 자신을 천도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을 만나 불법을 신봉하여 열심히 도를 닦는다면 현실에서는 장수, 부귀, 건강, 덕, 잘 죽는 것의 다섯 가지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얻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백년도 못가서 죽고 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돈이 많고 벼슬이 높아도 궁극적인 생사고를 초월하는데 있어서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처님은 생멸변천하는 가운데 생멸변천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육조단경』을 보면 오조 홍인 대사께서 육조 혜능 대사에게 『금강경』을 일러줍니다. 육조 혜능 대사께서는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대목에서 깨닫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성이 본래 청정한 줄 내 어찌 알았으랴. / 내 자성이 본래 생멸이 없는 줄 내 어찌 알았으랴. / 내 자성이 본래 저절로 갖춰져 있는 줄 내 어찌 알았으랴. / 내 자성이 본래 동요가 없는 줄 내 어찌 알았으랴. / 내 자성이 능히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줄 내 어찌 알았으랴.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여 불보살을 감동시키면 불보살이 그 원하는 바를 성취시켜주는 것은 아미타불이 48대원을 세웠듯이 불보살이 도를 닦을 때 모든 중생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원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들이 원을 세우고 지극정성으로 매달려 불보살을 감동시키면 미리 약속을 했기 때문에 다 들어주는 것입니다.

또 육조 스님의 말씀처럼 본자구족(本自具足), 우리 자성에 본래 지혜와 신통 묘용이 다 구족해 있으므로 원을 세우고 정진을 하면 이뤄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본래 다 갖춰져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백장 스님의 말씀처럼 오직 허망한 번뇌 망상에 가려져 있어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꾸준히 수행하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져서 어느 한 순간 확 통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지만 3일이고 일주일이고 지극정성으로 하면 순간적으로나마 맑아져서 체험이 될 때가 있고 본성 자리와 계합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간절심 있으면 불보살도 감동

오늘 조상을 천도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법회에 동참하신 여러분들도 기도하고 수행하시어 맑아지고 밝아진 마음으로 조상을 천도하고 온갖 소원을 다 성취하며 나아가서는 모든 중생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견성오도하여 대 자유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8월 20일 인천불교회관에서 열린 백중 49재 7인 큰스님 초청대법회에서 지리산 칠불사 회주 통광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통광 스님은

1940년 경남 하동 출생.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7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 대종사로부터 전강 받았다. 지리산 칠불사에서 1000일 기도를 통해 폐허가 된 칠불사를 복원했으며, 조계종 13교구본사 쌍계사 주지, 지리산 칠불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쌍계사 승가대학 학장, 지리산 칠불사 회주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