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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 스님의 차담법담]버리고 비우는 삶이 곧 부처의 길

기자명 법보신문

중생들은 누구나 끌어들이는데 일등이다. 그러나 불법을 깨달은 자들은 하나같이 버리라 한다. 비우라 한다. 이처럼 기막힌 아이러니가 또 있는가? 모두가 끌어들이려 혈안인데 버리라니 도무지 가당한 일인가? 깨달은 자들은 세상을 이겼으니 더 이상 구할게 없다. 그들은 세상의 일등도 내던지고 부모와 처자와 재산 모두를 버렸다. 모두가 높아지려 악을 쓰는데 그들은 낮아지라, 낮아지라 외친다. 한쪽은 끌어들이려는데 일등이고 한쪽은 버리는 데 일등이다. 모두 다 일등이 되려고 하는 점에서는 같다 하겠는데 전혀 차원이 다르다. 왜 이 같은 괴리가 벌어지는가?

누구나 마음 가운데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존재를 모시고 있으면서도 그를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의 차이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버리는 일에 일등이 되려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끌어들이는 데 일등이 되려한다. 생각해보라. 언제 어디서건 버리는 사람 비우는 사람이 탁월한 지도자가 되지 않는가? 버리고 비우면 강해지고 나의 이익을 적게 하면 성공한다. 비워지고 버리면 무한과 하나 되고 부처님의 힘이 함께한다. 버리지 못해 비우지 못해 스트레스가 크고 병이 생긴다. 버리고 비우는 삶, 욕망을 이기는 삶이 부처의 길이고 욕망을 따르면 삶은 폐허가 된다.

욕망을 따르는 자에게는 이 세상은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과 투쟁의 싸움터이지만, 부처를 따르는 자에게는 이 세상이 자신의 참 뜻을 실현할 수 있는 도장이다. 그들은 그들의 사명과 임무가 끝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 욕망과 집착의 삶은 부처님을 저버리는 삶이요, 버리고 비우는 삶은 무한과 하나되는 부처님의 삶이다. 버리고 비운 사람은 죽음을 흔쾌히 맞아들일 수 있지만, 탐욕의 사람은 갖가지 애착이 죽음 다음에까지 그를 괴롭힌다. 애착 집착 때문에 떠나지 못해 괴로워하는 영혼들의 고통을 아는가?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고 애착이 더 두렵다 하는 이유를 알라! 현재도 괴롭지만 죽음 다음의 고통도 생각하라. 항상 무덤을 생각하며 살라. 무덤은 그대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무덤을 생각하면 좀 순수해지지 않는가? 무덤을 생각하면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고 대범해진다. 탁월한 인물들이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살라”, “무덤을 생각하며 살라”한 이유를 반추해 보라. 『열반경』에도 부처님께서는 항상 삶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라 하셨다.

무덤이라는 두 글자는 모든 것을 삼키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 무덤은 언제나 나를 비우게 하는 동시에 욕망과 탐욕을 절제하는 마음을 가르치며 후회 없는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크게 죽을 마음을 낼 때 거칠 것이 없어지며 무서운 힘이 뿜어져 나온다. 무덤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무덤을 생각할 때마다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한순간에 불귀의 객이 되는 중생들은 무엇을 그다지도 끌어들이려 하는가? 깨달은 자들이 모두를 버리며 사는 이유는 버림 가운데 영원과 하나 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중생들은 끌어 들이다 끌어 들이다 지쳐서 결국 풀잎의 이슬처럼 스러져 사라진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부처님은 이 땅에 오셨다. 법을 설해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깨달음의 광명을 선물하러 오셨다. 법을 이 세상 어둠 속 중생들에게 가장 탁월한 선물이라 하신 의미를 반추해 보라. 법은 고통을 제하고 번뇌를 녹인다. 설한 바와 같이 수행케 하며 법을 따르는 자들을 안심케 한다.

허공이 부처님 몸임을 깨닫게 하고 결국 공이 만상의 어버이임을 체험케 하신다. 제법공상이라 모두가 공으로 지어져 있고 공을 이용하고 있으며 만상이 결국 공으로 돌아간다. 그 같은 진상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려는 데 부처님 가르침의 큰 뜻이 있다. 결국은 모두가 무덤으로 나아가고 공이 되고 한 줌의 재가 된다는 준엄한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실천하는 자들에게 부처님의 무량 가피력이 함께 하시리라. 

지광 스님 서울 능인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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