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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 스님의 차담법담] 39. 갈애

기자명 법보신문

생각대로 바라보면 본질 놓쳐

한 농부가 밭을 일구다 우연히 오래된 항아리 하나를 발견했다. 아주 오래된 것으로 뚜껑까지 잘 덮여 있어 농부는 마치 무슨 보물을 발견한 것 마냥 기뻐했다. 더 기쁜 사실은 항아리 뚜껑을 열자 그 안에 검고 딱딱한 냄새나는 어떤 물체가 가득 담겨 있었는데 아마 오래 전에 담가 둔 된장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였다. 오래된 된장이 들어있는 항아리를 발견했다는 소문은 금세 여기 저기 퍼지기 시작했고, 몸이 아픈 사람과 골동품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항아리나 그 속에 들어있는 묵은 된장을 팔라고 난리였다. 그럴수록 그 농부는 그 항아리를 집안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 두고 값이 더 오르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농부는 갑자기 큰 병이 들어 약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었다.

그 농부에게는 여섯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평소에 아버지가 숨겨 둔 항아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가 체 끝나기도 전에 여섯 형제들은 그 항아리에 서로 욕심을 내어 다투게 됐고, 급기야는 항아리의 내용물은 여섯 등분으로 나누어 갖고 항아리는 팔아서 또 여섯 등분으로 나누기로 하였다. 형제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장남은 그 항아리를 들고 와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그 내용물을 밖으로 퍼내기 시작하였다.

위의 두꺼운 껍질 부분을 들어내자 갑자기 심한 악취가 나기 시작했는데 자세히 내용물을 살펴보니 인분덩어리였다. 순식간에 방안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더럽다고 밖으로 다 도망 나가 버렸다. 방금 전까지 눈에 불을 켜고 조금이라도 덜 가지지 않을까봐 조바심 내다가 똥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 항아리마저 서로 가져가라고 난리를 피웠다.

똥을 똥이라고 분명히 안 순간 우리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감정을 일으키며 그 똥을 얼른 피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똥을 보고나서 한참을 생각하고 난 뒤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똥을 본 순간 순식간에 일어난다. 참다운 지혜의 눈으로 평소 우리가 애착하던 어떤 대상을 본다면 그 것은 영원하지 않고 고유한 실체가 있지 않으며 단지 조건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임을 알게 되고 그 대상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의 생각대로 바라보기 때문에 똥을 된장으로 알고 집착하듯 감각적 대상을 좋아하거나 혹은 싫어하는 반응을 일으키며 산다. 이러한 반응을 ‘갈애’라 하며 우리가 받고 있는 괴로움의 원인이기도 하다. 괴롭지 않기를 바란다면 괴롭게 하는 원인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괴롭게 할 원인을 잔뜩 만들어 놓고 그것을 청산해 줄 어떤 신통방통한 묘약을 찾는다면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기를 바라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는 짓이다.

지장 스님 서울 대원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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