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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시론] ‘송구영신’ 덕담을 거부하는 까닭

기자명 법보신문

송구영신 덕담을 나눌 때다. 하지만 그럴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밑의 세속 풍경이 녹록하지 않다. 살천스럽다. 인권운동을 지며리 펴온 활동가들이 발표한 ‘2009년 10대 인권뉴스’가 그 ‘증거’다.

10대 인권뉴스의 머리는 단연 서울 용산참사다. 더러는 또 그 이야기냐고 눈 흘길 지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게 누군가의 노림수는 아닐까. 용산 참사의 진상을 가리거나 진저리치게 만드는 여론조작이 한 해 내내 이어졌다. 그 결과다. 참사는 시나브로 잊혀가고 있다.

철거민만이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일방적 해고에 맞선 노동자들도 가혹하게 탄압받았다. 그뿐인가. 미디어법도 날치기 처리했다. 시국선언 교사와 공무원 노조를 징계하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서슬은 새삼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톺아보게 한다.
저들은 말끝마다 민주주의란 다수결의 원리임을 강변한다. 가령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고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했기에 자신들의 정책을 추진하는 게 옳다는 논리다. 얼핏 들어보면 사뭇 그럴 듯하다. 더러는 반론 펴기가 궁색하다는 느낌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첫째,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얻은 표는 결코 다수가 아니다. 2007년 12월 대선은 사상 처음으로 당선자가 얻은 득표율보다 기권한 유권자 비율이 더 높았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고작 30%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게 현 정부다. 2008년 4월 총선은 더하다. 사상 처음으로 유권자 과반수가 투표하지 않았다. 절반도 안 되는 유권자가 참여한 투표에서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이 되었을 뿐이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한나라당이 국민 다수를 대변하고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착시다.

둘째, 백번 양보해서 설령 선거 공약으로 다수 지지를 받았다고 하자. 그렇다고 모든 공약을 밀어붙이는 게 타당한 것은 아니다. 가령, 이명박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여론의 거센 비판이 일자 ‘포기’를 밝혔다. 물론,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꼼수를 두고 있지만, 대운하를 내놓고 추진하겠다는 말은 감히 못하고 있다. 반면에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뒤집고 있다. 한나라당이 공약한 대학등록금 절반도 모르쇠다. 다수결 원리의 일방적 해석이 지닌 문제는 비단 선거공약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셋째,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다수결 결정 이전에 충분한 대화와 토론이 그것이다. 그 기준이 충족되지 않을 때 다수결은 벅벅이 독재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일찍이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놓은 장 자크 루소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앞서가던 영국의 정치제도에 대해 “영국인들은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에만 자유롭다.

의원이 선출되자마자 민중은 노예화 된다”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4년 또는 5년에 한번 씩 투표로 대표를 선출하고 나머지 모든 날은 그 사람에게 복종하는 삶은 다름 아닌 노예라는 분석이다. 루소가 그 경고를 한 게 250여 년 전이다. 선거에서 이겼으므로 대화나 토론 없이 다수결로 표결하겠다는 배짱은 국민을 노예로 멸시하는 자세다.
그래서다. 민주주의는 지난 250여 년 동안 성숙해오며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다수결의 전제로 삼아왔다. 대화와 토론이 전제되지 않는 다수결은 민주주의가 더 이상 아니다.

여론조사에서 다수가 반대하는 입법을 무람없이 강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 반민주적이다. 2009년 한 해를 보내며 굳이 민주주의를 성찰하는 이유는 2010년 새해에도 민주주의가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데 있다. 오랜 세월, 우리 민중과 더불어 호흡해온 불교가 2009년 세밑에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고심해야 할 까닭도 여기 있다. 그렇다. 지금은 송구영신 덕담을 나눌 때가 아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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