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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남전 선사와 호랑이

기자명 법보신문

중국의 남전 스님이 귀종, 지견 스님과 행각을 하던 중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남전 스님이 귀종 스님에게 물었다. “좀 전에 본 호랑이가 무엇으로 보였는가?” 이에 귀종 스님은 “고양이 같았다”고 말했다. 귀종 스님은 지견 스님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지견 스님은 “개 같았다”고 답했다. 귀종 스님은 다시 남전 스님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다. 이에 남전 스님은 “내가 본 것은 대충(大蟲)이었다”고 말했다.

남전은 호랑이를 보고 고양이도, 개도 아닌 ‘큰 벌레’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큰 벌레’라는 대충(大蟲)은 호랑이의 별칭이다. 따라서 귀종이 고양이로 보였다 하고, 지견이 개로 보였다 했을 때 남전 선사는 ‘호랑이’였다고 말한 것이다.

세 사람이 똑 같이 호랑이를 보았는데 각자의 견해가 덧붙여지면서 다른 동물의 이름이 툭툭 튀어 나왔다. 그런데, 왜 귀종과 지견은 호랑이에 버금가는 사자나, 멧돼지, 황소 같은 드센 동물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고양이와 개를 내보였을까?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들은 경계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일견은 남전의 한마디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고양이나 개보다 작은 ‘벌레’를 말하면서도 호랑이 그 자체를 드러내었으니 말이다. 호랑이를 호랑이라 말하지 못한 두 스님은 벌써 남전 스님이 쳐놓은 경계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풍기 희방사에 전해오는 재미있는 호랑이 설화가 있다.

신라 선대여왕 당시 두운 대사는 소백산 기슭의 한 동굴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씩 호랑이 한 마리가 이 동굴을 찾아와 정진중인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곤 했다. 하루는 호랑이가 동굴 앞에서 입을 쩍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두운 대사가 살펴보니 호랑이 목에 비녀가 걸려 있었다. 그 비녀를 뽑아 준 후 대운 대사는 한마디 일렀다.

“사람을 잡아먹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니 다시는 사람을 해하지 말라.”
추상같은 두운 대사의 말에 놀랐는지 호랑이는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어느 봄 날 그 호랑이가 다시 와서는 두운 대사의 옷자락을 물며 어디론가 가자는 시늉을 했다. 따라가 보니 동굴 인근의 폭포 아래에 한 처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두운 대사는 그 처녀를 동굴로 데려와 약초를 달여 먹이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쾌차하게 했다. 그 후 그 처녀는 두운 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산 중턱에 절을 지어 보시하며 한 가지 제안 했다.
“이곳은 저희 가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방위이니 절의 이름을 희방사라 하면 좋겠습니다.”
두운 대사는 이에 쾌히 승낙했다. 처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폭포 이름도 ‘희방폭포’라 불리워 졌다.

남전선사의 ‘호랑이 선문답’을 우리 일상으로 끌어와 살펴볼 수 있겠다. 바로 ‘아는 척’, ‘있는 척’하는 행태들이다. 경계에 안 걸린 척 하는 선사의 행태와 ‘아는 척, 있는 척’하는 세간의 형태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한 번 쯤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척 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왜 우리는 모르면 모른다 하고, 없으면 없다 하면 될 것을 그리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 이면에는 자신의 존재에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나 명예만으로 자신감을 얻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자신을 정확히 아는데서 부터 자신감은 시작되는 건 아닐까? 자신을 볼 줄 알아야 세상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지혜의 눈이 떠진다면 두려울 것도 없을 것이다. 남전 선사처럼 호랑이를 호랑이라 말할 수 있을 때, 두운 대사처럼 호랑이에게 추상같은 호령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 해인 올해는 회광반조하며 얻어진 정견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과 맞서고, 세상을 보듬을 수 있는 기개와 아량의 원천이 정견에 담겨 있음을 새해 벽두에 새겨보자.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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