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만다라] 95. 윤회의 미혹을 넘어
[천불만다라] 95. 윤회의 미혹을 넘어
  • 법보신문
  • 승인 2010.01.0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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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 이치 깨달아야 윤회 굴레 벗어나

이 험하고 힘든 길 윤회와 미혹을 넘어
삶의 저쪽 기슭에 이르러 마음이 안정되고
욕심과 의혹이 없고 집착을 떠나 마음 편한 사람
그를 나는 수행자라 부른다.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불교에서는 우리의 삶 자체를 생사고해(生死苦海)라고 한다.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이 괴로움의 연속이라는 의미이다. 모든 괴로움을 총괄해서 말하면 태어남으로부터 괴로움은 시작된다. 태어남이 괴로움이기 때문에 뒤를 이어서 다가오는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어가는 것이 또한 괴로움인 것이다. 이를 요약하여 생사고(生死苦)인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의 원효스님은 사복(蛇福)의 어머니를 위한 영가 법문에서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설하고 있다.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이 괴롭도다. 죽지 말지어다. 태어남이 괴롭도다.” 이에 사복은 말이 너무 번잡하다면서 고쳐서 말했다. “죽고 태어남이 괴롭도다.” 우리의 모든 괴로움을 총괄해서 말하면 태어나고 죽어가는 괴로움인 것이다. 이 생사의 괴로움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이 되며, 더 자세히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져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과는 만나서 괴롭다. 얻고자 하는 것이 마음대로 얻어지지 않아서 괴롭고, 우리의 존재 그대로가 괴로움의 덩어리인 것(愛別離苦 怨憎會苦 求不得苦 五陰盛苦)이다.

생멸 고통 끊긴 자리가 열반

이와 같은 총체적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괴로움의 언덕인 이쪽(此岸)에서 평화롭고 안온한 저쪽언덕(彼岸)으로 건너가려는 노력이 곧 부처님 45년간의 설법교화(說法敎化)의 노정(路程)이었던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과 보살의 역할을 뱃사공에 비유하여 자비의 배로 중생을 괴로움의 바다에서 피안의 언덕으로 건네주는 안내자로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경전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글귀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역시 ‘고통이 없는 저 언덕으로 건너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경전에 생멸이 고통인 원인을 우리의 존재가 영원하지 않고 무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열반경』의 유명한 게송인 ‘변화무쌍한 모든 현상은 다 무상한 것으로 생멸하는 괴로운 법이다. 이러한 생멸의 법이 다한 근원의 도리를 깨달으면 곧 바로 참다운 고요의 세계에 도달하여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諸行無常是生滅法 生滅滅已寂滅爲樂)’고 설하고 있다.

위와 같이 생멸의 고통이 다한 경지를 열반(涅槃, Nirvana)이라고 부른다. ‘삶의 저쪽 기슭에 이르러 마음이 안정되고 욕심과 의혹이 없고 집착을 떠나 마음 편한 사람’의 경지인 것이다. 부처님이 스스로 열반을 얻으셨고 모든 중생이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서 열반의 평안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수많은 부처님은 세상에 나오셨다고 한다. 부처님의 길은 곧 열반의 길이며 부처님의 제자 역시 열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삶 속에 괴로움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우리는 생사의 괴로움의 언덕에 서있는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괴로움이 실체가 없는 허망한 모양임을 알아차리면 바로 열반의 저 언덕으로 향하게 된다. 하루에 수 없이 생사와 열반을 오가면서 우리는 성자의 길에 오르게 될 것이다.

감각으로 느끼는 행복은 허상

생사의 고통과 열반의 즐거움에 대한 이러한 상식을 갖고서 어떻게 하면 현대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열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는 남보다 많이 소유하려고 하는 중생의 병을 앓고 있다. 어리석음의 대명사인 중생은 태생적으로 소유욕의 노예로 살아간다. 이제부터 열반을 향해 걷기 위해서는 작게 가지려고 노력하고 덜어버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릇을 비우듯이 탐욕의 찌꺼기를 말끔히 비워버리도록 자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 다음은 폭류(暴流)처럼 흐르는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자신을 조금 비켜서게 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남이 이익을 볼 때 조금 손해를 보아도 마음 아파하지 않고 남이 앞서갈 때 조금 뒤쳐져도 자신을 자책하지 않도록 하자. 강둑에 앉아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듯이 흘러가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초연히 바라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철저하게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음을 꿰뚫어 볼 줄 알아야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 목숨이, 젊음이, 건강이, 명성이, 권력이, 재물이, 가족이, 그리고 나 자신이 영원하지 않음을 사무쳐 깨달을 때 허무에 빠지거나 아니면 열반에 이르게 된다. 불교는 후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철저히 무상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더없는 편안함과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허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세상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마른풀에 불이 번지듯 불타고 있는데 우리의 사는 모습은 대량생산으로 쓰레기 더미를 더해가고 있다. 배부른 자의 포만(飽滿)을 돕기 위하여 동물은 생명이 아닌 공산품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때, 우리는 여래가 설하신 열반을 얻은 사람이 될 것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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