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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 스님의 茶담法담] 57. 무심, 무지, 지혜

기자명 법보신문

경계를 만나도 분별심 없어야 참 수행

너무나 수행을 하고 싶었던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그는 마음의 고요와 평온을 얻고 싶어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의 암자를 찾아 들어 갔다. 그곳에서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온 종일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였다. 번잡한 도심과 사람들 속에 있을 때는 생각이 너무나 복잡하고 수많은 욕구들로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에 오직 일념의 상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수행하였다. 결국 오래지 않아 그 스님은 하루 종일 특별한 생각 없이 오직 하나의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속으로 산에 들어와 수행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마음을 하나의 상태로 유지하여 괴롭지 않게 하는 것이 수행이며, 그러한 수행을 잘 했다는 뿌듯함과 깊은 행복감에 휩싸여 시간 가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가로이 저무는 부드러운 햇볕을 느끼며 암자의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암자에서 키우는 하얀 진돗개 한 놈이 살며시 다가와 그 스님의 발끝자락에 얼굴을 기대고 풀썩 들어 누웠다. 두 앞발은 턱 밑에 다소곳이 포개고 숨 한 번 푹 내쉬고 천천히 눈을 내리 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 스님은 순간 한 생각이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저 개의 상태나 자신의 상태가 과연 무엇이 다를까? 둘 다 별 생각 없이 마음이 편안한 상태일 뿐인데. 한 동안 그 생각이 스님의 고요한 마음에 물결을 만들었다.

얼마 후 산 아래 있는 큰 절에 일손이 필요하다 하여 내려갈 일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절에 큰 법회가 있어 많은 손님과 관광객들이 혼잡스럽게 뒤엉켜 있었다. 한참을 산속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보냈던 그 스님의 눈은 다양한 감각적 대상들에 이리저리 끌려 다녔고, 잊고 있었던 아니 없어졌을 것이라 여겼던 예전의 감정적 반응들이 순간순간 불꽃을 발화시켰다.

그동안 공부를 잘해오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 젊은 스님은 생각을 안 하는 것만이 수행의 전부가 아니고 어떠한 대상이나 경계를 만나도 마음에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실감하게 되었다. 그 후 그 스님은 마음에 분별심이 생기지 않으려면 대상의 참 성품을 사실대로 꿰뚫어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지금은 지혜를 닦는 수행을 하고 있다.

무심과 무지, 지혜, 이 세 가지는 겉보기에 증상이 똑같다. 특별한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상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전혀 다르다. 무심은 일념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삼매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상태고, 무지는 어리석고 피곤하여 생겨나는 상태다. 그리고 지혜는 대상을 분명히 잘 보고 알고 있는데 그 성품까지 꿰뚫어 보고 알기 때문에 마음에 분별심이 생겨나지 않는 상태이다.

상황에 따라 무심과 무지가 작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무작정 그 상태가 다 수행의 결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심과 무지는 잠재적으로 집착과, 분노, 무지가 계발될 소지가 있고,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또한 강한 자극에 직면하면 전혀 소용없어지기 일쑤다. 

지장 스님 서울 대원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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