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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나를 비우고 성찰할 때 갈등 줄고 세상은 진보

마음을 비워라, 욕심을 버리라는 말을 흔히들 합니다. 마음을 비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물그릇 비우듯이 비우는 것인가. 저는 그것이 마음의 힘 빼기라고 쉽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고정된 시각, 즉 개개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지위, 환경, 교육, 습득된 정보 등에 의해 사물을 보고 판단을 내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저에 대해 ‘현 정권에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스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고정관념을 갖고 저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뇌리 속에 저는 그렇게 입력돼 있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실망하곤 합니다. 저는 이러한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입견에 대한 집착.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 또한 내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것이 그리스도 정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잘못된 기독교적 신앙에 대한 믿음, 확신이 한국 사회에 여러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사회의 갈등이 타협의 여지없이 맞불작전처럼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때로는 사회와 주변을 이렇게 힘들게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자기 견해에 대한 집착이 갈등 원인

이 대통령이나 여러분, 나 우리 모두에게는 ‘혹시나 내가 갖고 있는 확신과 고정관념, 세계관으로 인해 세상을 잘못 보거나 판단하지 않을까’에 대한 성찰, 회의가 필요합니다. 굳은 신념을 갖고 앞으로 앞으로 가자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것이 잘못됐을 경우 불러오는 폐해는 막대합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간절히 해야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옳은가, 오류가 없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없다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몸에서 힘을 빼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서 힘을 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는 고정관념은 경우에 따라 엄청난 갈등을 유발시킵니다.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는 전쟁도 불사합니다. 보는 관점이 다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부딪히면서 갈등이 생깁니다. 어떤 것이 옳으냐를 판단할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 대통령도 그런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이런 어려운 시절에 나에게 대통령직을 주신 것을 소명으로 여기는 확신이 아주 강합니다. 그것이 결국 세상에 불화를 일으킵니다.

내가 아무리 옳은 생각을 가졌다하더라도 성찰을 통해 변화해 나가지 않으면 결국은 같아집니다. 70, 80년대를 거치며 한국사회에는 많은 변화와 변혁이 있었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갔는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80년대 민중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개인적인 성찰 없이 그냥 그때그때 맞춰 살아가다 결국엔 비참한 모양새가 됩니다.

삶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에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가, 맞을까, 나는 무엇일까, 어떻게 살까. 존재에 대한 끝없는 물음입니다. 이런 물음이 전제되지 않는 삶은 결국 오류를 낳기 마련입니다. 끝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물어서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 입니다. 그 모른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른다’는 것은 ‘안다’의 반대입니다. 안다는 것은 내가 경험한 것, 살아오면서 받아들인 인식, 정보, 세월을 모아서 사물을 판단하는 인지력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안다는 것이 정확할까요. 내가 받아들인 정보가, 내가 알고 있는 세계관이, 우주관이, 인생관이, 사물에 대한 판단이 정확한가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오류가 있습니다. 지금이 언제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알고 있는 것이 전부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는 것을 덮어버리거나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신에게 맡겨버리곤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기며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비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문제인데, 내가 살아가는 삶의 문제인데 어떻게 맡겨 버립니까.

판단 유보한 채 세상 본적 있나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답은 ‘모른다’이고 아는 것은 전부 잘못된 것이니 아는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는 것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몸에서 힘을 빼듯이 마음의 힘을 빼는 길입니다. 모든 정보로부터 채득되어진, 모든 앎으로부터 만들어진 힘입니다. 그 힘을 빼는 것은 곧 앎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는 것을 다 내려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모름이 됩니다. 모름은 어떤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크다, 작다, 너다, 나다라는 상대적 분별에 의한 판단을 유보한 상태입니다. 모르는데 너와 나, 크고 적음, 이것 저것이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시비할 것도 싸울 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공에 떨어진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분별로부터 빚어진 갈등의 상태는 유보가 된 것입니다. 모르니 잘난 채 할 수 없고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버려서 하얀 백지 같이 나를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자유입니다. 속박되지 않은 자유입니다. 지금의 나는 알게 된 정보에 의해 묶여있는 상태입니다. 나를 묶고 있는 모든 앎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합니다. 오랜 습관 버릇 앎과 지식으로 만들어진 거짓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입니다. 해탈은 산속이나 먼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올바른 견해입니다. 잘못된 견해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일단 내가 모른다는 입장이 되면 적어도 오류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이라도 이처럼 관점밖에 서서 올바른 시각으로 사물을 보기 위해 판단을 유보해 본적이 있는가, 판단을 유보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에 대해 돌이켜 봐야 합니다.

종교적인 갈등도 내 종교가 옳다는 편협한 생각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종교를 떠나서 세상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세상을 건전하고 거룩하게 만들어가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세상 말입니다.

그런데 모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공포로 다가옵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밤이 어두운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안 죽어 봤기 때문입니다. 안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텐데 모르기 때문에 공포가 되는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취득해서 판단을 내리고 이것이 다라고 해야만 우리는 든든합니다. 습관 돼 있기 때문입니다. 습관돼 있지 않은 곳이 결국 모름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모름은 모든 판단을 유보한 상태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판단내릴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해탈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포기하고 자꾸 앎의 세계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모름의 세계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름의 세계로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잘못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를 스스로가 살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자세로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대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움을 통해,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게 되길, 그리고 그것이 사회 변혁의 기본자세라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강연은 오마이뉴스가 2월 25일 개최한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특강’의 17번째 강좌에서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불교와 사회 참여를 말한다’를 주제로 진행한 강연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명진 스님

1950년 충남 당진 출생.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75년 혜정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송광사, 해인사, 봉암사, 상원사, 망월사, 용화사 등 제방 선원에서 40안거를 성만했다. 1988년 대승불교승가회 회장,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위원회 상임위원, 조계종 11, 12대 종회의원 및 부의장,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서울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맡아 도심 사찰에서의 수행과 포교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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