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청심] 두렵기까지 한 다수의 의견
[세심청심] 두렵기까지 한 다수의 의견
  • 법보신문
  • 승인 2010.03.2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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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슬픔은 혼자여서가 아니다. 진정 어린왕자를 슬프게 한 것은 길들여진 삶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데 있었다.

우리사회는 갓 난 아이들을 길들이기 위해 가히 혈안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들은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투명한 의식에 사회적 관념을 그려 넣기에 여념이 없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이 사회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니 늘 감사해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불교적 개념으로 접근하면 양태가 크게 달라진다. 해탈이란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보면 진정 우리의 해탈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관념들일 것이다. 다수는 항상 개인을 무참히 희생하기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보스턴에 머물 때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타고 겨우 법회에 나올 수 있었던 보살님이 있었다. 그 보살은 요즘 국제적 이슈가 되어있는 토요다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서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였지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의례적인 위로의 말들을 했고 뒤돌아서서 그 보살의 과민함을 운운하면서 세계최고에 육박하는 자동차회사와의 소송이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에 대해 입방아를 찧곤 했다. 한때 토요다 측으로부터 일정액의 보상금 합의를 제의 받았지만 보살은 자신의 정당성을 굽히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서 상상하지 못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토요다의 부도덕한 기업윤리로 그동안 숨기려 했던 문제들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뉴스를 접하고 그 보살의 소송 결과가 궁금해 연락해보았더니 아직도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면서 마음속으로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당시 다수의 견해라는 생각에,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기업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억울한 호소에 따스한 관심대신 그저 입 발린 위로만 하였던 것을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내 마음속에서 자꾸 일어나는 부끄러움을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일을 격은 후 많은 변화를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항상 소수의 말과 개인의 의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요즘 온 나라가 유괴 성추행 살인 사건으로 들끓고 있는 것을 보면서 모두가 한 젊은이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마치 지금 돌을 들지 않으면 공공의 적이라도 되는 듯 한 사회분위기 앞에서 법률에 대한 관념은 혼돈에 빠지기만 했다.

언젠가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판결이 나기 전에는 보호해야 한다면서 얼굴 가려주기에 급급하더니 이번에는 얼굴을 들어내는 것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듯 당당해진 집행관들의 행태가 더욱 놀랍다. 언제나 냉철하게 법을 집행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혼자만의 감정이 아닐 것이다.

포퓰리즘이라는 거대한 공룡이 우리 사회를 거칠게 휘졌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 사회에 냉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한 것 같다.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라는 구호가 있지만 진정 개인을 위하는 사회는 참으로 요원한 것 같다.

봄꽃이 가득한 이 아침 영하 날씨에 눈이 내린다. 이 모순 가득한 시대에 붓다의 지혜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건 나 자신만이 아닐 것이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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