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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가 궁궐 지킴이 된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왕의 침전 칩입하는 악귀 쫓는 벽사물

조선시대 대유행…궁궐 이외는 조성 금지



[서유기(西遊記)]는[삼국지],[수호지],[금병매]와 더불어 중국의 사대기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설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손오공(孫悟空)]이라는 동화책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소설 속에는 당나라 시대 실존인물이었던 삼장법사 현장 스님과 여러 가지 신통력을 지닌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등장한다. 줄거리는 당나라 황제의 명령으로 부처님이 계신다는 천축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과정이지만, 실제 내용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마장들의 은유적 표현을 담은 가장 오래된, 그리고 수준 높은 불교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오랜 옛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을 오늘날 도심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경복궁, 창덕궁, 남대문 등 서울 도심 속 궁궐의 지붕 추녀마루에는 소설 속 인물인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조성돼 있다. 일명 잡상(雜像)이라 불리는데 진흙으로 만든 와제 토우(土偶)의 일종이다.

조선시대 중기 유몽인(柳夢寅)은[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신임관료가 부임해 선임 관료에게 첫 인사를 할 때 대궐 문루 위 이 잡상들의 이름을 단숨에 10번을 외워야 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왕실과 관계된 궁궐(宮闕)를 제외한 민가(民家), 사원(寺院), 서원(書院), 지방향교(地方鄕校)에는 이 잡상의 설치를 엄격하게 금했다고 한다.

잡상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녔기에 신임 관료가 이름을 줄줄 외우고 궁궐에만 사용했을까?

전문가들은 궁궐 지붕 위의 잡상이 잡귀를 쫓는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소설[서유기]에는 당나라 태종의 꿈속에 밤마다 나타나는 귀신이 기와를 던지며 괴롭히자, 군사들로 하여금 궁궐을 방어케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서 잡상들의 모티브를 따 왔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잡상들은 천지를 떠도는 귀신이나 잡신을 잡아 임금님이 계신 궁궐을 방어하는 일종의 군사들인 셈이다.

그러나 잡상에는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유야담]에는 추녀마루 가장 앞부분부터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산갑, 이귀박, 나토두 등 10개의 잡상이 등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궁궐에 남아있는 있는 잡상은 꼭 이와 같지는 않아서 5, 7, 9, 11개 등 숫자도 다양하고 같은 잡상이 두 개 이상 겹쳐있는 경우도 있다.

모습도 서유기에 나오는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삼장법사는 가사장삼 대신, 머리에 갓을 쓰고, 몸에는 갑옷을 걸쳤다. 또 눈은 부릅뜨고 다리를 벌리고 위풍 당당하게 앉아 있다. 수행자의 모습은 간데 없고, 오직 무사로서의 위엄만이 가득하다. 손오공도 삿갓을 쓴 모습이 영락없이 포졸의 모습이고, 사오정과 저팔계는 소설 속의 이미지를 찾아보는 것조차 힘들다.

잡상은 중국 송나라 시대에 처음 등장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궁궐뿐만 아니라 사원과 민가에도 구분 없이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궁궐 외에는 어떤 건축물에도 사용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의 시대. 삼장법사와 손오공은 유교적 왕도 정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궁궐의 지붕 위에 걸터앉아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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