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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피리부는 목동(牧笛)’(1963)

기자명 강성률

테 웨이(特偉) 감독 작품 ,말없이 전하는 깨달음의 세계


사람들은 흔히 탑과 석등 같은 조각이 있고, 아름다운 모양의 문이 있으며, 안에는 본존불이 모셔져 있는 대웅전 앞을 좋아하는데, 기이하게도 나는 아무 것도 없거나 때로는 잡다한 물건을 벽에 걸어둔 대웅전의 뒷편이 더 좋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조용한 그곳, 가끔 풍경소리가 들리거나 뒷산에서 새가 울거나 따뜻한 햇볕이라도 비취는 날이면 거기서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뒷편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거기에는 나를 끌었던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십우도(十牛圖). 흔히 탱화는 구사된 색채나 원근감 없는 구도, 불교적 소재 등으로 인해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림으로 인식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유독 십우도만은 별 어려움 없이 다가갈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소를 키웠고 직접 꼴을 베어서 소에게 먹였으니 친근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소를 먹이러 산에 가서 목동처럼 풀밭에 누워 졸다가 소를 잃어버려서 찾기도 했으니.

십우도는 10편의 그림을 뜻한다. 소를 찾는 10편의 그림이라고 해서 십우도(十牛圖)라 하기도 하고, 소를 찾는 그림이라고 해서 심우도(尋牛圖)라고 하기도 한다. 심우(尋牛, 소를 찾는다), 견적(見跡, 발자국을 보다), 견우(見牛, 소를 보다), 득우(得牛, 소를 얻다), 목우(牧牛, 소를 기르다),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다), 망우존인(忘牛存人, 소를 잊고 사람만 남다), 인우구망(人牛俱忘, 소와 사람 둘 다 잊다), 반본환원(返本還源, 본래의 근원에 돌아가다), 입전수수(入廛垂手, 시중에 들어가 중생을 돕다)의 총 10개의 순서로 된 그림이다.

이러한 십우도를 모티프로 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산실, 상하이 스튜디오의 초대 소장을 역임했던 테 웨이(特偉) 감독의 ‘피리부는 목동(牧笛)’이 바로 그것이다.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19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피리를 잘 부는 소년이 숲으로 왔다가 잠든 사이 소를 잃어 버렸는데, 결국 찾는 내용이다. ‘피리 부는 목동’은 기우귀가(騎牛歸家)하는 여섯 번째 그림까지만 형상화되어 있어서, 잃어버린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서 깨달음을 만인에게 전하는 내용은 빠져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자칫 한편의 짧은 이야기로 보일 우려가 있다. 게다가 대사라곤 한 마디도 없고 바람 소리, 새소리,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만 등장하니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피리 부는 목동’은 이성적으로 따져서 보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애니메이션이다. 셀 애니메이션으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수묵 애니메이션의 여백의 미와 함께 전하는 깊은 울림은 두고두고 보는 이를 감동의 장으로 불러온다.

‘피리 부는 목동’에는 몇 개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먼저 소를 타고 오는 행위. 불교 영화인 ‘화엄경’이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보면 주인공이 소를 타고 간다. 이때 소는 길 잃은 주인공을 구도하는 길 안내자일 수도 있고, “우주적 에너지”일 수도 있으며, “일체의 대립을 초월한 근원으로써 마음인 진여(眞如)”일 수도 있다. 다음으로 피리를 부는 행위. 이는 소를 통제하면서 자연과 친해지는 행위로서 우주적 에너지를 얻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진여를 깨달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목동이 피리를 불 때 새가 같이 노래하는 것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를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꿈에서 소를 찾는 행위. 현실의 간절함이 꿈에서도 나타난 것인데, 꿈을 깨는 행위를 통해 현실의 소망과 꿈의 소망 가운데 어떤 것이 진짜 욕망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 경계를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보여준다.



강성률 애니메이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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