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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生이냐 死냐 ①

기자명 법보신문

스승의 답에 만족 못한 제자는 스승을 때리고

도오(道吾)라면 석두(石頭)-약산(藥山)으로 전해 오는 법맥을 이은 선사인 바, 그가 조문차 어느 상가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따라가던 점원(漸源)이 관 뚜껑을 두들기면서 그에게 물었다.

'생(生)입니까, 사(死)입니까'

대단한 기백이다. 그의 가슴을 꽉 메우고 있던 생사에 대한 의혹이, 죽음의 생생한 현장에 부딪치는 것을 계기로 하여 포탄처럼 일시에 폭발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이라 말하지도 못하겠고 사라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생사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열기에 비해, 돌아온 것은 아주 차가운 대답이었다.

'어째서 말씀하지 못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한다'

부글부글 끓어대는 화로 인해 점원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랐다. 이렇게도 절실한 물음인데도 이토록 눈길 하나 주려 안하다니! 그러고도 스승이란 말인가. 그래도 남의 눈이 있어 이를 악물고 참아내던 점원은, 절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침내 분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스님. 제게 시원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도 말씀하지 않으시겠다면 때리겠습니다'

점원의 격분이 극에 달했음을 알만 하거니와, 도오선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때리겠거든 때리려무나. 말인즉슨 해주지 못하겠다'

이에 마침내 점원은 스승을 때리고야 말았는데, 정작 얻어맞은 도오선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제자에게 일러주었다.

'이 일이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절에서 소동이 벌어져 너를 가만두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니, 얼마 동안 절을 떠나 있도록 해라'

만일 당시에 생사의 문답에서 그렇게나 자기를 냉대했던 스승이 이번에는 어째서 이렇게나 제 걱정을 해주는지에 생각이 미쳐, 상반되는 두 행동의 의미에 대해 곰곰히 성찰해 보았더라면, 지녀오던 의혹을 대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그런 찬스를 놓친 점원은 행각(行脚) 길에 오르고 도오선사는 도오선사대로 얼마 후 입적하고 하여, 이것이 마지막 작별이 될 줄은 두 사람이 다 짐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리하여 이 절 저 절을 옮겨다니던 점원에게도 눈트일 날이 오기는 왔으니, 어느 작은 절에 들렀을 때였다. 우연히도 한 행자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독송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는,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몸으로 제도할 자란, 곧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몸 나투어 법을 설하며' 라는 부분에 이르러 홀연히 깨닫고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가 그때에 우리 스님을 잘못 의심했었구나. 어찌 알았으랴, 불법의 일대사(一大事)가 언구(言句)에 있지 않을 줄을!'

그러고는 예전에 있던 절로 사형인 석상경제(石霜慶諸)를 찾아갔다. 그는 도오선사의 수제자로 큰 발자취를 남긴 거물이다. 그리하여 그 동안에 있었던 사연을 털어놓았더니, 석상 스님이 말했다.

'얘기해 줄 테니, 내게 물으라'

이리해 문답이 벌어졌다.

'생입니까, 사입니까'

'생이라 말하지도 못하겠고, 사라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어째서 말씀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까'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한다'

석상의 대답은 도오선사의 그것과 판에 박은 듯 똑같았는데도 점원은 이에 크게 깨달으니 더 없는 다행이었으나, 이에는 후일담이 있다.

며칠 후의 일이다. 점원이 삽을 들고 법당에 나타나 무엇을 찾는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석상이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돌아가신 스님의 사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온 땅을 뒤덮은 물결이 하늘을 삼킬듯한데, 어떤 사리를 찾아낸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더욱 전력을 다해볼 만합니다'

여기서 문답은 끝나는데, 후일 태원부(太原孚)는,

'도오선사의 사리는 지금도 거기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촌평을 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법계가 다른 설봉(雪峰) 문중의 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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