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글라바 미얀마] 3. 바간의 꽃 마누하-아난다사원
[밍글라바 미얀마] 3. 바간의 꽃 마누하-아난다사원
  • 법보신문
  • 승인 2010.06.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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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폐된 왕의 슬픔조차 아름다운 전설이 된다
 
이라와디 강변의 저녁. 황금빛 불탑 아래서 바간의 주민들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본격적인 바간 순례를 시작하려니 막막함이 앞선다. 현재 바간 지역에는 2227개의 파고다가 남아있다. 아노라타왕이 불법에 귀의한 후 바간 지역에는 약 5000여 개의 파고다와 사원이 세워졌지만 바간 왕조는 불과 240여년 만에 쇠락하기 시작, 당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몽골의 쿠빌라이칸에게 1287년 정복당했다.

수많은 파고다와 사원들이 훼손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1975년 발생한 진도 6.5의 강진으로 많은 사원과 파고다가 무너지거나 파손됐다. 하지만 그 오랜 풍파를 견디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파고다와 사원 가운데 영국 식민지 시대 이전에 세워진 것만을 헤아린 숫자가 무려 2227개, 그 이후에 세워진 것을 모두 합하면 바간 지역에는 훼손된 것보다 훨씬 많은 약 3500여 개의 파고다와 사원이 건재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워낙 많은 파고다가 있다 보니 규모가 작거나 별다른 특징이 없는 파고다들은 변변한 이름도 없이 번호로 불린다. 순례 역시 이 모든 파고다를 돌아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가장 오래됐거나, 가장 크거나,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파고다들을 찾아가는 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난다사원은 바간 지역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존이 잘 돼 있는 사원으로 첫 손에 꼽힌다.

아노라타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짱짓따왕이 건립한 아난다사원은 미얀마 내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보전 상태가 좋아 바간 순례에서 아난다사원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바간왕조의 3대 왕인 짱짓따의 원력으로 1091년 세워진 아난다사원은 인도 오릿사주 우따야기리 언덕에 있는 난다몰라라는 동굴 사원을 모방해서 만들어졌다. 어느 날 짱짓따왕을 찾아온 8명의 스님들로부터 이 동굴 사원의 이야기를 들은 왕이 그 사원을 본따 아난다사원을 조성한 것. 짱짓따왕의 어머니가 인도인이었던 점도 인도양식의 사원을 조성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마누하사원에 조성돼 있는 거대한 불상.

아난다사원은 한 쪽 면이 63미터에 이르는 정사각형으로 각 방향에 입구가 있고 내부에도 각 방향에 높이 9.5미터의 입불이 조성돼 있다. 서쪽에 모신 부처님이 석가모니불이며 나머지 방향의 세 부처님의 과거 삼불이다. 티크 나무 한 그루를 통으로 깎아 이 같이 거대한 불상을 조성했다니 옛 사람들의 솜씨가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이 가운데 동쪽과 서쪽면 불상은 70여 년 전에 화재를 당해 소실된 것을 재조성한 불상이라고 한다.

창건 당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남쪽과 북쪽 부처님의 상호가 인도양식인데 비해 동쪽과 서쪽 불상은 새로 조성하면서 미얀마 양식에 더 가까워졌다고 한다. 또 서쪽면 불상은 티크 나무 대신 금, 은, 동, 아연의 합금으로 조성됐다고 하는데 겉으로 보아서는 다른 세 불상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서쪽 부처님 발아래 왼편으로는 신아라한 스님, 오른편으로는 짱짓따왕의 형상도 조그맣게 조성돼 있다. 하지만 보호용 유리상자를 씌워 놓는 바람에 이 두 조각상은 마치 장식용 인형처럼 보인다. 유물 보호도 좋지만 이처럼 미적 감각이 없어서야 사원이 주는 감동의 흐름을 무참히 잘라버리는 꼴이다.

아난다 사원의 네 분 부처님 가운데 가장 오래 발길이 머문 곳은 남쪽면에 모셔져있는 부처님이다. 이 부처님은 올려다보는 위치에 따라서 얼굴 표정이 달라 보인다. 멀리서 바라본 부처님은 방끗 웃는 듯 환한 미소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발아래서 올려다보면 화가 난 듯 무서운 표정으로 중생을 굽어본다.

“옛날에는 귀족들만 사원의 안쪽까지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평민들은 저 문밖에서만 부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지요. 그러니 귀족들에겐 엄한 표정의, 평민들에게는 온화한 표정의 부처님이었습니다.”

귀족에게 더 엄한 부처님 얼굴

 
사원을 조성한 마누하왕과 왕비.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 진다. 부와 권력을 장악한 귀족들을 향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일깨우려는 듯 엄한 표정을 짓는 부처님이지만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향해서는 환한 미소를 보내주는 부처님. 귀족의 자리에서 평민의 자리까지, 지금은 경계가 사라진 그 앞을 이리저리 오가며 이 불상을 조성했을 이름 모를 장인의 속마음을 잠시 가늠해 본다.

아난다 파고다와 함께 바간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사원이 바로 마누하사원이다. 이 사원에는 바간왕조 역사의 이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코끼리부대를 앞세워 주변의 군소 국가들을 점령하며 바간왕조를 건설한 아누라타왕은 신아라한 스님을 만난 후 경전을 구하려는 열망으로 이웃국가이던 타톤의 마누하왕에게 팔리어 삼장을 전해 달라 요구한다. 그러나 ‘경전은 나라의 보물’이라 여겼던 마누하왕이 이를 거절하자 아누라타왕은 이를 빌미로 1057년 타톤을 공격했다.

정복의 귀재였던 아누라타왕은 이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어 마누하왕을 비롯해 500여 명의 스님을 사로잡았으며 경전 및 주석서를 전리품으로 거두어 32마리의 흰 코끼리에 싣고 바간으로 돌아왔다. 이때 함께 포로로 잡혀온 수많은 기술자들을 통해 타톤의 건축술이 전해졌다. 또 경전을 버마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전해진 타톤의 문화와 기술은 아누라타왕이 바간에 그처럼 많은 파고다와 사원을 조성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포로로 잡혀왔던 마누하왕은 얼마 후 자유의 신분을 얻고 직접 사원을 건축했는데, 왕의 이름을 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마누하사원이 바로 그것이다. 마누하사원을 참배하기에 앞서 마누하왕이 포로로 잡혀있었던 난파고다로 먼저 향했다. 마누하사원 왼편에 있는 난파고다는 외벽과 내벽이 모두 사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창문의 창살마저 돌로 돼 있어 창문이라기보다는 환기구멍 정도밖에는 안돼 보인다.

여타의 사원들과는 달리 입구에는 쇠창살문까지 달려 있어 밖에서 바라보기에도 답답함이 느껴진다. 이 사원은 포로로 잡혀온 마누하왕이 갇혀있던 곳으로 마누하왕의 왕좌와 소지품 등이 함께 놓여있었다고 한다. 사원 내부도 널찍한 홀 대신 거대한 네 개의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내부 중앙을 차지하고 있어 좁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 같은 답답함은 마누하왕이 조성한 마누하사원에서도 계속된다.

사원 안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나란히 모셔져 있는데 어찌나 거대한지 사원 내부를 꽉 채우고 있어 참배객들이 지나다니기조차 비좁을 지경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계신 부처님의 무릎이 벽에 닿을 지경이어서 그 앞으로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밖에는 공간이 없다. 참배객들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도대체 마누하왕은 왜 이렇게 답답한 느낌의 사원을 만든 것일까.

후대인들은 포로로 잡혀와 감옥에 갇혀있던 마누하왕이 자신의 답답한 처지와 감옥에서의 힘들었던 시절을 표현하고자 굳이 이런 형태의 사원을 조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누하왕은 또 이 사원을 건립하기 위해 자신의 보석반지와 함께 왕비마저 팔아버렸다고 하니 그 속마음이야 오죽했으랴. 사원 옆에는 마누하왕과 왕비의 형상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사원을 건립하느라 팔린 마누하왕의 왕비가 고개를 돌려 왕을 외면한 채 앉아있는 모습이다. 마누하왕은 이 사원을 건립하고 마음의 위로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남편에 의해 내다 팔린 왕비, 노예로 전락해 버린 기구한 여인의 원망은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바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부파고다.

마누하사원처럼 바간의 사원들은 각각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간의 사원 중 원형보전이 가장 잘 돼 있는 틸로민로사원의 이름에는 ‘일산의 뜻대로 왕을’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 사원은 바간왕조의 여덟 번째 왕인 나따웅먀가 건립했는데 후궁의 소생이었던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선왕인 나라따띠 씻뚜가 다섯 명의 왕자 중 우산을 던져 왕위 계승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왕의 명령에 따라 한 신하가 우산을 던졌고 그 우산이 가리킨 막내 왕자 나따웅먀가 왕이 된 것. 물론 선왕이 막내 왕자인 나따웅먀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신하와 사전에 모의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라와디강 따라 삶은 이어져

 
아난다사원의 남쪽면 부처님.

우산이 던져진 자리에 세운 것이 바로 틸로민로사원인데 혹자는 이 설화를 가리켜 그저 꾸며진 이야기일 뿐 사실은 ‘세 세계의 축복’이라는 팔리어를 잘못 해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설화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이러한 이야기들이 바간의 파고다와 사원을 돌아보는데 몇 배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라와디 강변에 세워져 있는 부파고다는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손꼽힌다. 현지인들은 이 탑이 3세기경에 세워졌다고 믿고 있지만 학자들은 9세기 즈음으로 추측한다. 쀼족 양식의 이 파고다는 규모나 화려함에서는 다른 바간의 파고다들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이라와디강의 풍경은 바간의 유적들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이라와디 강변을 따라 줄지어 자리 잡은 형형색색의 파고다들 아래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과 시원한 강가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띤다. 강 위에서는 석양을 즐기거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들이 이라와디강 너머로 기울어지는 석양과 어우러지며 긴 그림자를 강물에 던지고 있다. 이라와디 강변의 석양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왕조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옛 바간의 영화를 다시 보여주는 듯 하다. 파고다와 사원만이 가득할 뿐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 같던 바간이 여전히 미얀마사람들의 삶과 더불어 살아 쉼 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바간왕조가 1287년 몽골에 의해 멸망당하기까지 바간에는 파고다와 사원이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니 그 장관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덕분에 바간왕조는 ‘건사왕조(建寺王朝)’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일반 서민들까지도 신실한 불교도로서의 자세를 생활 속에 정착 시키며 불탑 조성에 동참하는 미얀마의 풍토 역시 대부분 이 시대에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바간왕조가 비록 240여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미얀마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무게감만은 이러한 점에서 결코 적다할 수 없을 것이다.

바간왕조는 파고다와 사원 조성에 지나치게 국력을 소비했고 사원의 증가로 인해 세금이 면제되는 토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토지 분쟁을 증가시키고 국가재정에 압박을 불러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로인해 허약해진 왕조는 결국 외세의 발아래 무너졌지만 아름답고 신비한, 때로는 슬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원들은 오늘도 또 하루의 역사를 썼다. 바간의 붉은 황토를 점점이 수놓으며 들꽃처럼 피어나는 사연들은 도도히 흐르는 이라와디의 강물처럼 오늘도 바간의 마른 땅을 적시며 기울어지는 해를 따라 또 내일을 기약할 것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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