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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양윤호 감독 ‘유리’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 근본 다룬 난해한 구도영화

5월이면 칸영화제가 열린다. 작년에는 ‘춘향뎐’의 본선진출과 ‘해피엔드’와 ‘오! 수정’의 초청이라는 가시적인 약진을 보였다. 올해도 여러 작품들이 깐 진출을 겨냥하여 후반작업을 서두르거나 한 두 작품은 이미 칸을 노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칸이나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내에서 일정한 작품성을 평가해주는 분위기였다. 해외영화제의 위력이 국내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1996년에 패기만만한 신인 감독의 영화 한 편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 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지금은 이름있는 배우의 자리에 등극한 박신양이 러시아에서 연기를 공부하다 귀국하여 온 몸을 다 벗고 열연한 ‘유리’라는 영화였다.

양윤호 감독은 신인 배우군단과 충무로 경험 현장이 미비한, 의욕에 넘친 후배들을 이끌고 서해의 갯벌에서 ‘유리’를 찍어나갔다. 단지 젊은 패기 하나로 작업은 진행되었으며, 더구나 문단 내에서도 난해하기로 소문난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새롭게 해석하여 카메라로 담아내는 작업까지 수행했으니 그들의 열정을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난해한 영화 ‘유리’는 신인감독과 신인 배우의 열정이 생산한 합작품이다. 개봉 당시 불교계와 ‘유리’ 제작 측과는 다소 갈등이 존재했지만 해외에서의 호평과 감독의 항변으로 크게 비화되지않고 불씨를 잠재울 수 있었다.

‘유리’는 대단히 난해한 영화다. 영상이 함유하는 다양한 의미망에 원작자와 감독의 상징이 부가되어 가일층 해독의 층이 두터워져서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유리’의 공간은 구도의 공간이자 혼돈의 공간이다. 유리(박신양 분)는 유리에 도착하여 누구에게나 아무런 대가없이 살보시하는 여인과 만나 동침을 한다. 구도를 하는 도중 존자와 대사를 만난다.

존자는 연못에서 대사를 읊조린다. 그 대사는 신수(神秀)가 지은 시다. 그리고 유리가 응답한 말 역시 혜능의 시다. 이 부분에서 유리와 존자의 만남과 대사의 살해에 대한 상징을 풀 실마리를 제공받게 된다. 감독은 한국불교 보다 근본불교에 더 관심을 갖고 매료되었다는 발언의 맥락도 이 부분과 연관하여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선종의 5대 조사 홍인은 법을 전해줄 시기가 임박하자 제자들에게 깨우친 바를 시(詩)로 써오도록 당부했다. 그 때 수제자 신수는 ‘몸은 보리수이며, 마음은 맑은 거울틀과 같나니 오래도록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먼지며 티끌 못 앉게 하리라“라는 시를 지어 올렸다.

홍인은 이때 절간에서 방아찧고 막일을 하던 까막눈 혜능(慧能638-713)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혜능은 “보리수 나무가 원래 없고 거울 또한 틀이 아닌데 본래 한 물건도 없는 터에 어느 곳에 먼지며 티끌 앉을까”라는 시를 올렸다.

유리가 존자의 말에 답한 대사는 바로 혜능의 시다. 유리는 돌로 정수리를 내리쳐 존자를 죽이고 대사를 죽이고 구도의 길을 떠난다. 이로써 유리는 기존의 인습과 관념과 모든 계율을 파하고 진정으로 구도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유리’는 구도의 길을 걷는 유리의 6조 촌장의 행적을 카메라로 잡아낸 영화다. 혜능은 제6조 조사가 되었으며 유리는 6조 촌장에 추대됨으로써 ‘유리’의 불교적 맥락이 보다 선명해진다. ‘유리’는 상업영화의 장에서 젊은 패기로 불교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담으려 시도한 희귀한 사례를 남겼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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