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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지 못할 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0.11.30 15:49
  • 수정 2010.12.06 10:19
  • 댓글 0

조기 잡던 풍요로운 섬이 비극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30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번도 손질 안 한 습기 찬 방공호에서, 연평도 사람들은 밤새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저들의 살 길과 안전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렇게 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이 일 하나 수습하자면 여러 가지가 뒤로 묻히겠다 싶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기로는 4대강 사업이다. 일의 전말과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를 나는 자세히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이렇듯 큰 공사가 너무나 잽싸게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 하나에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불안은 누구든 느끼는 바이고, 나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는 그저 정부가 이만한 불안이라도 없애달라는 소박한 바람뿐이다.


중국 신화를 읽다가 이런 대목에 이르러 나는 문득 책을 놓았다. 순(舜) 임금은 곤(鯀)에게 치수(治水)의 임무를 맡길 참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좋지 못해 자기 멋대로 하였으니, 백성이 물난리로 걱정이 태산인데, 순은 선뜻 그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곤이 물을 다스리려 사용했던 방법은 ‘막고(堙)’ ‘쌓는(障)’ 것이었다. 진흙으로 막고 쌓아서 홍수를 막았다. 그러나 큰물이 막히기는커녕 오히려 더 거세져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자 순은 마침내 우산에서 그를 죽였다.


이어 임금은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홍수를 다스리도록 하였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막고 쌓던 방법에 변화를 주었다. 바로 물길을 트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어 홍수가 다스려지고, 우는 드디어 백성의 고통을 해결해 주었다. 그러자 순은 우에게 왕위를 선양해 주었다. 하(夏) 나라의 개국 군주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신화에서 곤은 본디 흰말이며 황제의 손자였다. 그는 물 때문에 고생하는 땅위의 백성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황제에게는 식양(息壤)이라는 신비한 물건이 있었다. 식양은 끊임없이 불어나는 흙이다. 조금만 떼어서 대지에 던지면 곧 크게 불어나 산이 되고 제방이 된다. 곤은 할아버지의 식양을 훔쳐 물을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일이 마쳐갈 무렵 황제가 이를 알았다. 황제는 불의 신인 축융(祝融)을 보내 곤을 우산에서 죽이고 남은 식양을 뺏어가 버렸다. 땅 위의 백성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곤의 영혼은 죽지 않고 시체 역시 3년이 지나도 썩지 않았다. 그의 뱃속에서 점차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어 가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들인 우였다. 세상에 태어난 우는 상제에게 식양을 달라고 부탁하였다. 불쌍한 마음이 든 상제는 이를 허락했고, 우는 여러 용을 끌고 내려가 물을 다스렸다. 그러나 우가 거기서 쓴 방법은 물길을 트는 일이었다.


어떤 쪽의 이야기가 되었건, 곤은 막는 방법을 우는 트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막기와 트기는 다르다. 막기 위해 트는 것과 트기 위해 막는 것도 다르다. 곤은 물길을 막는 데 식양을 던졌다. 그러나 우는 물이 흘러가는 길을 만들러 흙을 쌓았다. 이것이 순리(順理)이다.

 

고운기 한양대 교수

뜻이 좋으면 수단과 방법이야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곤과, 정리(情理)에 합당하게 행동한 우 또한 달랐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 있는 이들은 한 목소리로 두고 보라 말한다. 서울의 한강 개발이나 경부고속도로가 그랬듯이, 끝내 자신들의 주장이 옳으리라 목청을 높인다. 책임 지지 못할 소리이다. 막기가 다만 물만이 아니라 사람의 말과 마음에까지 이어져 있다. 그것이 문제라면 더욱 큰 문제이다.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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