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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없는 정치와 무능에 의한 전쟁

기자명 법보신문

며칠 전 위키리크스의 비밀문서 공개로 전세계가 난리다. 남들이 관심을 가져줄 비밀조차 별로 갖지 못한 나로선, ‘비밀’을 알게 되는 재미에, 권세 있는 분들이 난리 법석을 떠는 것을 보는 재미까지 느긋하게 웃으며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사실을 보고선 재미가 있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던 것이 있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나 외교부장관, 통일부 장관 등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관리자들이 북한이 2015년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할 것이라고 보아, 대북협력정책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통령 또한 ‘붕괴할테니’라며 대북강경론으로 일관할 생각을 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런 태도 덕에 남북관계가 전쟁에 준하는 상황으로까지 밀려갔지만, 모든 걸 걸고 전쟁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북한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대북압력을 가할 수단을 이미 오래전에 다 끊어 놓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전쟁 의사가 없는 군인이나 민간인마저 살상한 상황에서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것 말고는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한심할 정도로 무능한 것이다.


이번에 폭로된 비밀문건을 보면 ‘전략적 인내’라는 이들의 대북정책이 이러한 무능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니 그냥 강경론을 취하면서 붕괴를 ‘참고 기다리자’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었던 것이고, 그 전략에 함축된 목표는 북한의 붕괴였던 것이며, 전술은 그 동안의 교류를 절단하여 붕괴를 늦출 요인을 최소화한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북한의 정치적 내지 군사적 행동에 대해 자신들이 대처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 무능력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대남정책을 위해 대북정책을 희생시키고 만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무능력이 종종 가장 끔찍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진퇴의 시기와 방법에 능란한 장수라면 쓸데없는 싸움도, 쓸데없는 희생도 치르지 않는다. 반면 무능한 장수는 버티거나 밀고 들어가야 할 때 후퇴를 하거나, 아무 때나 무대포로 ‘전진 앞으로!’를 외치며 때 아닌 싸움을 하게하고 엄청난 희생를 치르게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그렇다. 전쟁 말고는 쓸 수 있는 정치적 선택지가 거의 없는 지금, 어떤 우발적 사태로 다시 충돌이 벌어진다면, 정부로서는 전쟁을 불사하는 강공책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어떻든 막강한 전력으로 이기면 되지 않는가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쉬웠을’ 이라크에서도 전쟁은 적장을 잡고 대체권력을 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끝도 없는 게릴라전에 미군도, 이라크인도 피폐해갔다. 결국 미국이 포기하고 철수하지 않았던가. 이젠 어느 나라에서도 전쟁은 기동전으로 끝나지 않는다. 험한 산악과 ‘빨치산 전통’을 자랑하는 북한이 거기서 끝날 리 없다. 군사적 시뮬레이션에 따른 천만 명의 예상 희생자에 더해, 일상의 삶이 전쟁이 되는 끔찍한, 결코 짧지 않을 시기가 시작될 것이다.

 

이진경 교수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렇게 거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일까? 황폐하게 망가졌을 북한의 영토?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의 노동력? 아니면 적과 싸워 이겼다는 승리감? 아닐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목표’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대남선전’을 대북전략이라고 착각하고 무모함을 용기라고 믿는 눈먼 자들의 무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 무능력을 ‘주시하고’, 그것을 정정하기 위해 온 마음의 힘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 두 사람의 무능력이 세상을 얼마나 망쳐놓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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