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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지기 지선 스님이 본 故리영희 선생은…

  • 사회
  • 입력 2010.12.13 11:10
  • 수정 2010.12.16 10:23
  • 댓글 0

“오탁악세 사바세계서 정견 잃지않은 참사람”

 

▲1998년 베트남의 해안에서 함께 한 전 불국사 주지 설조 스님과 리영희 선생, 지선 스님, 보선 스님.

 

 

81세의 일기로 타계한 ‘실천하는 지성’, ‘진보계의 거목’ 리영희 선생이 12월8일 자신의 유언대로 국립 5·18민주묘지 7묘역에 안장됐다. 한 줌의 재료 화현한 선생의 마지막 세연(世緣)에는 민주화 운동의 동지이자 도반인 지선 스님도 함께 했다. 70~80년대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선 민주화 운동에도, 힘없는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에도 함께했던 지선 스님과 리영희 선생은 ‘30년 지기’ 오랜 벗이다.


두 지도자의 이러한 인연을 잘 알고 있기에 하관식에 앞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동참 대중들은 지선 스님에게 고별사를 부탁했다. 그러나 스님은 정성스런 염불로 이를 대신했다. 스님은 “리영희 선생이 염불에 담긴 의미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말을 대신해 염불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故) 리영희 선생 장례위원회의 고문이기도 한 지선 스님은 선생을 ‘참사람’이라고 불렀다. 오탁악세(五濁惡世)인 사바세계에서 세속의 무명(無明)을 타파할 수 ‘정견’을 지녔기 때문이다. 스님은 선생을 ‘자연인’이라고도 했다. 선생은 엄혹한 세상에서 가진 자들에게 늘 당하고 찢기면서 온 몸, 온 마음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궁극에는 마음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자연의 일상에서 고달픈 심신을 추스르려 했다. 그런 마음을 실현하기 위해 선생은 70의 고령에 ‘고물차’ 한 대를 사서 천천히 몰고 다니며 이 땅의 산과 골을 꼼꼼히 살폈다. 선생은 지선 스님에게 낡고 허름한 고물차 예찬론을 펴곤 했다.


“난 이차가 너무 좋아.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거든. 거기다가 집사람처럼 잔소리도 안 해.”
자연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선생의 맑은 마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선생은 말년에 와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내면에 대한 수행과 공부에 대한 관심도 대단히 컸다고 전했다. 스님은 “세속화로 인해 전통 승가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 불교에 대해 백장 선사의 청규를 강조하면서 수행과 노동의 일치를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스님의 상좌인 광주 문빈정사 주지 법선 스님의 손을 잡더니, “스님은 손이 너무 고와. 수행자도 노동을 많이 해야 돼”라며 ‘실천하는 수행’을 강조했다. 당신이 평생 구현해 온 ‘실천하는 지성’으로서 ‘실천하는 수행자’가 돼 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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