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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하깔라춤의 의미

기자명 법보신문

민초들에 권선징악 일깨우는 지혜의 장

 

▲마하깔라 가면 춤은 시킴 지역의 까규파 사원에서 1년에 한 번 접할 수 있는 티베트 전통문화공연이다.

 

 

“빠~라 빠~라 빠아빠 빠아.”
기도(푸자)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던 날,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주에서 온 ‘제니’는 숙소 주인집의 딸에게 티베트 전통의상을 빌려 입었다. 우리 일행이 절로 올라가는데 길가에 아주 익숙한 풍경이 다가왔다. 제주도에서 흔히 보았던 ‘막대기로 걸쳐놓은 대문’의 모습, 반가웠다. 재질은 대나무였지만 생긴 모양새가 너무도 똑같아 한참동안 눈길을 머물렀다. 이역만리 제주와 이곳의 낯익은 대문 풍경에서 ‘사소한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시킴 사람들이 아주 오래된 이웃사촌처럼 친근해졌다.


시킴에서 가장 이색적으로 다가온 것은 라마들의 ‘마하깔라춤’이었다. 나팔을 울려 대면서 시작 된 ‘마하깔라춤’은 시킴에 있는 까규파 사원에서 일 년에 한번 접할 수 있는 티베트의 전통문화공연으로, 서막은 나팔 소리가 장엄했다. 마당 한쪽에서 나팔 소리가 울리자 그 신호에 맞추어 법당에서 라마들로 구성된 악대행렬이 줄을 지어 나왔다. 연주에 이어 기도 전에 만들어 일주일간 법당에 봉안한 3m 높이의 ‘마하깔라’ 존상이 마당의 한 가운데로 이운됐다. 관세음보살의 분노존인 ‘마하깔라’ 존상은 버터로 만들었다. 그 사이 미리 와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요 모든 사람들이 존상을 중심으로 마당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마당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보시금을 올리면서 ‘마하깔라’를 향해 삼배의 예를 갖추었다. 우리 일행도 한 명씩 존상을 향해 예를 올렸다.


행복한 새해 기원하는 발원의 장

 

 

▲마하깔라춤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공연.

 


그런데 갑자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산 아래에 안개가 살짝 깃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안개 군무가 몰려왔다. 한 노보살님이 절을 올리자 해학적인 노파 가면을 쓴 라마가 향로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마당을 돌아다닐 즈음에 때를 맞추어 안개가 도량을 휘감았다. 10m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안개가 그득한 도량에서 춤을 추고 있는 라마들의 모습은 마치 흑백 영화를 보듯 묘한 신비감을 주었다. 무거운 안개로 인해 향 내음은 바닥으로 깔렸고 향 기운을 온 도량에 흩어지게 한 안개는 5분도 안되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늘이 맑게 개이자 안개가 들기 전보다 더 상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킴 사람들에게 ‘마하깔라춤’은 밀교적인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지난해의 나쁜 액운을 씻어내고 행복한 새해를 기원하는 발원의 장이기도 하다. 본 의식이 시작될 무렵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았고 다양한 계층의 구경꾼들이 빈틈없이 마당 주변을 채웠다. 하루 전날의 무리한 연습에도 불구하고 라마들의 얼굴엔 최선을 다해 공연에 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춤의 주인공은 화려한 의상과 모자가 특히 눈에 띄었다. 모자는 뾰족하고 창이 컸으며 비단 옷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춤을 추는 라마는 조그마한 공양구를 들고 나와 공양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 듯 일정한 리듬과 격식을 갖추어 곡물 하나하나를 차례로 마당에 뿌렸다. 춤이 끝나자 이번엔 네 명의 라마가 익살스런 탈을 쓰고 나타나 주변 정리를 했다. 어찌나 장난스럽고 짓궂어 보이던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짓게 했다. 라마들의 어린아이 같은 춤사위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엄숙할 수도 있었으나 그들의 맛깔스런 추임새는 자칫 무겁기만 할 수었던 의식을 부드럽고 재미있게 하는 윤활유와 같았다.

 

 

▲사슴 가면 춤 공연.

 


다음에 이어진 장면은 좀 더 종교적이었다. ‘마하깔라’를 밖으로 모셔왔던 정성스런 장면처럼 장엄한 의식에 이어 라마 악대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날 ‘마하깔라’ 존상의 대리인 역을 맡은 한 라마는 ‘마하깔라’ 복장으로 중앙에 봉안한 ‘마하깔라’ 앞에 서서 염불을 하면서 기도문을 읽었다. 이 라마가 특이한 것은 가면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도문을 읽은 후 법당 앞에 앉으니 평상복을 한 라마가 예를 갖추었다. 의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이윽고 여러 가지 동물의 탈을 쓴 라마들이 나와 손에 칼을 든 채 화려한 춤사위를 뽐냈다. 칼은 욕망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세상의 일체 고통이 빚어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마하깔라’ 존상을 대신한 라마가 한바탕 춤을 추고 나니 이번엔 ‘마하깔라’의 가면을 쓴 라마들이 나와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마하깔라’의 여러 대리인들은 고통의 뿌리를 정화하듯 행동 하나하나에 혼신을 다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버터로 만든 사람 형상의 조형물이 너른 판자 위에 실려 나와 마당 한가운데에 놓였다. ‘마하깔라’의 대리인들은 돌아가면서 손에든 무기로 버터인형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자 이번엔 사슴 왕이 등장해 한바탕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더니 버터 인형에게 다가가 칼로 내리치려했고 익살스런 춤을 추었던 네 명의 라마들은 그런 사슴 왕을 말렸다. 그러나 버터 인형은 사슴 왕의 칼날에 산산조각이 났다. 죄업을 씻는 정법의 칼날이리라.


공연 직후 점심 공양을 들었다. 일정 담당자인 ‘소남’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시킴의 최고승인 ‘걀찹 린포체’(Gyaltsab Rinpoche)께 문안을 드리러 가자고 권했다. 소남은 린포체에게 ‘한국에서 온 승려’라고 소개를 했다. 린포체는 나를 가만히 주시하더니 반문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예”
린포체의 눈빛을 보고 있다가 짧게 답했다. 린포체는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린포체께선 까르마파님의 4대 제자 가운데 한 분이세요.”
법당을 나오면서 시드니에서 함께 온 노보살님이 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저분은 명상 수련의 일인자라고 합니다. 평소엔 말씀을 조금 밖에 안 하신다고 합니다.”
나 개인적으로 걀찹 린포체는 세 번째로 가까이서 뵌 ‘린포체’였다. 명상 수련의 일인자라는 말에 언젠가 인연이 된다면 덕킁 린포체처럼 지근에서 받들면서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춤사위엔 희노애락 담겨 있어

 

 

▲공연이 열리는 마당 한 가운데 봉안한 마하깔라 존상, 버터로 조성해 이채롭다.

 


오후에 다시 춤마당이 펼쳐졌다. 저승에서 온 듯한 복장을 한 라마가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결국엔 빨갛게 색칠한 사람 인형을 색출해 벌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벌을 주고 나서는 많은 동물들이 나와 즐겁게 춤을 추다가 무대에서 내려가는 등 여러 종류의 춤들이 되풀이 됐다. 그런 다음 신나는 리듬에 맞추어 추는 춤이 이어졌다. ‘마하깔라’가 세상에 다시 나투어 중생들에게 행복을 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춤이다. 마당 한 가운데 모신 ‘마하깔라’ 존상 앞에 버터로 만든 새와 짐승 등 여러 종류의 동물신을 올려놓은 채 경전을 염송했고 마당 한쪽에 마련된 빈 공간으로 ‘마하깔라’ 존상을 옮겼다. 라마들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름날 달집을 태우듯이 불을 지펴 모든 것을 태웠다. 그런 다음 노라마의 화장터에서 보았던 것처럼 공양물을 불에 던져 태움으로써 ‘마하깔라춤’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 날 라마들이 보여준 동작들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반복적이었다. 그러나 장면 하나하나에는 인간의 희노애락과 칠불통계(七佛通戒)가 담겨 있었다. 우리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인 ‘마하깔라’는 선을 권하고 악을 응징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보여주었다. 공연을 친견하는 이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춤 동작으로 일깨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생들이 겪었던 한해의 모든 업장들을 정화해 새로운 한해를 행복하고 즐겁게 맞이하라는 것이 바로 ‘마하깔라춤’의 가르침이다.


공연 중간에는 몇몇 불자들이 춤을 추는 라마들과 수행자들에게 똑같이 공양금을 보시했다. 공양을 올리는 불자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맑고 진지해 보였다. 보는 이에겐 환희심을 선사했다. 그날의 축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잠깐 쉬었다가 해가 지자 법당 앞에서 또 한 차례 나팔 소리와 법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마하깔라’ 복장을 한 라마가 다시 등장을 하고 염불을 했다. 회향의 장이다. 염불을 마치자마자 모두가 법당 앞에 미리 준비해 둔 밀가루를 서로에게 뿌렸다.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 처음 보는 ‘밀가루 전쟁’이었다. 잘 마무리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리라.


저녁 공양을 하면서 낯익은 라마들과 사진도 찍었다. 우리가 덕킁린포체의 손님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불편해하고 어려워 했으나 그날 행사를 마치고 나니 다정스럽게 급변했다. ‘마하깔라춤’ 축제를 함께 했기에 이제는 우리 일행을 ‘도반’으로 인정하는 듯 했다.


그날 공연의 마지막은 죽은 영가들을 위한 기도였다. 한 시간 가량 몇 명의 라마가 법당 앞에 마련된 법석에서 염불을 한 뒤 종이에 쓴 영가의 명단과 버터로 만든 공양물을 태우면서 그날의 행사를 회향했다.


“예전엔 사자루에서 스님들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극도 하고 그랬어요.”


산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시킴의 축제를 보면서 예전에 순천 송광사 아랫마을에 살았던 한 노인의 말이 생각났다. 라마들의 춤은 민초들을 위한 끝없는 자비심의 발로이니 우리네 스님들의 연극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선대 스님들이 화주 보살과 불자들에게 베푼 연극도 라마들의 춤 공연처럼 순수하면서도 아주 특별한 보시행이 아니었을까.


일체 법구의 소리가 멈추니 한 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하깔라’를 태운 자리에서 여전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는지 몇몇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린 동자승도 있었다. 나를 알아 본 라마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사슴 왕은 버터로 만든 마하깔라 존상을 칼로 부순다.

 


“사진 줄 수 있어요?” 그날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니 자신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 라마들의 표정이 더욱 진지해졌다.
“당연하지요.”
“고맙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이 사진기 안에 또렷하게 담겨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유심히 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에선 우리의 30~40년 전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첨단 기술이 집약된 디지털 카메라가 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이 앞섰다.


다른 일행들은 이미 숙소로 내려간 지 오래였다. 라마들이 모두 숙소로 들어간 뒤에도 나는 불꽃 옆에서 떠날 수 없었다. 라마들의 잔잔한 춤사위가 불꽃과 함께 떠올라 잔잔하게 되새기고 싶었다. 불꽃을 바라보면서 섬광처럼 지난 하루를 생각하다가 문득 몇 구절 가르침이 떠올랐다.


비단옷 무거운 신발을 걸치고 / 가락에 맞추어 보여준 진실엔 / 대자대비관음보살 그 마음이 담겼으니 / 내딛는 걸음은 사뿐히 땅을 밟고 / 내 쉬는 호흡은 마음 밖에 있지 않고 / 많은 중생 구제하기 위해 / 성난 얼굴 나투었으나 / 마지막 보이는 그 모습은 / 모든 이 업장을 온몸에 실어 / 화염 속에 태우니 / 선악의 구분 없이 제도하는 / 보살심의 화현이어라


불꽃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려는 라마들의 따스한 마음처럼 마지막 재로 변할 때까지 잔잔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었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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