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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수아 리더십과 한국의 지도자

기자명 법보신문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칠레에서의 매몰 광부 구출 소식이다. 유사한 사고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33인 전원 구출이라는 기적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던 최초의 17일은 물론이고, 최장 3~4개월 이상 걸릴 구조작업 또한 비관적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알다시피 완벽한 성공이었다. 세계가 환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70여 일간 막장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한 상황이 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인의 귀와 눈으로 전달되었다. 거기서 가장 극적으로 부각된 사람이 우르수아이다. 우르수아는 막장의 광부였지만 단순 노동자는 아니었다. 지질학을 공부한 바 있는 이 분야의 나름 전공자였고, 인원을 통솔할 수 있는 작업반장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성공적인 구조의 가장 큰 역할을 해낸 그에 대해 세계는 불가사의하게 생각했다. 그는 33인의 집단을 지하 700미터 막장에서 완벽하게 통솔했다. 이를 일러 아예 ‘우르수아 리더십’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마침 ‘건국신화와 리더십’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물어보았다. 짤막한 리포트로 제출한 학생들의 글은 감동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우르수아의 리더십이 지닌 본질을 분석했는데, 그가 보인 뛰어난 판단력에 대해 특히 주목하고 있었다.


“냉철하고 올바른 판단력이 결여된 리더십은 카리스마도 호소력도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리더십은 단순한 위계 질서적인 명령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따라야 할 지혜이기도 했다.”


한 학생의 글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판단력은 냉철하고 올발라야 한다고 보았다. 카리스마와 호소력이 리더십의 근본을 이룰진대, 근본의 진짜 뿌리에는 냉철하고 올바른 판단력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가 단순한 위계질서적인 명령이다. 위계질서는 말 그대로 질서가 잡혔을 때에만 써 먹힌다. 비상의 상황, 혼돈의 상황에서는 실질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혜로운 판단이다.


상황 상황마다 우르수아는 어떤 판단을 내렸던가. 먼저 사고 순간이다. 그는 광부들에게 재빨리 몸을 웅크릴 것을 명령했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이 때문에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광산의 지형 정보를 조사하고 터널을 만드는 등 생존과 구조를 최초 사고 지점인 지하 400미터에서 피난처를 700미터로 옮기는 결정이 그나마 쉽지 않았다. 식량 배급의 판단은 더 철저했다. 그는 48시간마다 과자 반 조각, 참치통조림 두 숟가락, 우유 반 컵을 나누어주었다. 생사 확인까지는 몇 날이 걸릴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로서는 이 기간을 최대로 벌어야 했고, 극단적인 소량의 배급은 거기서 나온 계산법이었다.


드디어 지상에서 캡슐을 통해 음식이 전달되었을 때, 이번에 그는 무리한 섭취를 자제시켰다. 배탈을 염려해서였다. 나아가 공간과 시간을 구분했다. 공간은 작업, 취침, 위생의 셋으로 나누었다. 같이 매몰된 트럭의 헤드라이트로 낮밤을 구분하였다. 공간과 시간은 막장의 갇힌 공간과 시간을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공간과 시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그들의 세계가 구축된 이상 두려움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무수한 에피소드가 그들의 막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요약해서 앞의 학생은 다음과 같이 리포트를 맺었다.


“카리스마와 따뜻함, 이 두 가지 가치의 조화를 이루는 리더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엄격함만을 가진 리더는 진정한 ‘리더’가 아니라 힘을 가진 ‘대장’에 불과하고, 인간미만을 가진 리더는 조직을 통솔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순박하지만 명쾌한 결론 아닌가. 구조된 광부 한 사람은 말했다. “우르수아는 타고난 리더다. 조직원을 명백하게 사랑했다.”


▲고운기 교수
한 해가 저무는 때, 지금 이 나라 국민은 과연 몇 사람이나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명백하게 사랑받는’ 느낌을 받고 있을까.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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