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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생명은 사람과 동물 차별이 없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토끼해가 밝았습니다.
수도산 봉은사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맞이 타종식을 가졌습니다. 먼저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열, 아홉, 여덟…둘, 하나. 마침내 ‘둥~’하는 묵직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범종 소리는 새해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첫 울림입니다.


장엄한 그 울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낡은 것을 보내버리고 새 것을 맞이하는 소리입니다. 악한 것은 물러가고 선한 것이 오기를 바라는 소리입니다. 불행 대신 행복이 오기를 기원하는 소리입니다.
범종의 울림과 동시에 봉은사에서는 화려한 불꽃의 향연이 시작됩니다. 도시의 빌딩 숲 한 복판에서 보는 불꽃의 향연은 장관 그 자체입니다.


저는 눈앞에 펼쳐지는 불꽃의 향연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불꽃은 ‘번쩍’ 섬광과 동시에 화려한 모습을 보이고는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참으로 아름답지만 그 장면은 불과 몇 초 사이에 유(有)에서 무(無)로 사라져 버립니다. 참으로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시간도 이와 같습니다. 시간이 실제 있을 것 같지만 또한 있다가 없습니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동물 천도는 인간 몫


구한말 일본 임제종의 종연(宗演)선사는 조선의 학명(鶴鳴)선사에 연하장을 보냅니다. “나는 이제 묵은해를 보내지만 그대는 새해를 맞이하소서.” 무슨 뜻입니까.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무시무종(無始無終)입니다. 시간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다만 그 시간을 우리가 임의로 잘라서 묵은해니 새해니 하는 것입니다. 12시는 마지막 시간이지만 0시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12시는 곧 0시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나누는 것은 좀 더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한 방편입니다.


학명 선사는 구한말의 유명한 선지식입니다. 스님은 새해와 관련해서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오고 봄이 오는 해 바뀐 듯 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스님의 말씀처럼 시간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 한번으로 흘러갈 뿐입니다. 어제 못 먹은 점심을, 오늘 밥 두 그릇을 먹는다고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점심을 오늘 먹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순간이든 그 순간은 우리에게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운문 선사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좋은날을 만들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매 순간을 좋은 시간으로, 일들로 채워나가며 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자면 나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에도 세밀하게 관심을 가지는 그런 불자들이 돼야 합니다. 불교를 믿고 수행하면서 얻었던 성과를 이웃과 사회에 나누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적 실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삶 속에서 몸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불교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수행하는 종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새해 첫 법회에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희망만을 말할 수 없는 우울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가득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지난해 11월29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구제역이 발생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경북지방을 휩쓸고 경기도로 올라와 파주, 양주, 고양, 강화도를 거쳐 강원도로 번졌습니다.


지난해 12월31일까지의 통계를 보면 소, 돼지 52만 마리가 살처분 돼서 생매장이 됐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더욱 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52만이라는 숫자가 상상이 되십니까. 52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몰살을 당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대충 짐작이 될 겁니다. 지금 엄청난 살생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그저 죄 없는 소와 돼지를 죽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생매장했다고 합니다. 산채로 구덩이를 파서 묻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약물 주사를 놓아 죽여서 생매장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동물들의 이 엄청난 고통, 그 원한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얼마전 인터넷에 축산 농가 아들의 가슴 절절한 글이 올라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댓글만 1000개가 넘게 달렸다고 합니다. 글 원문을 제가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지난 12월 19일 밤 11시, 파주시 축산계장에게서 농장이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12월 20일 오후, 농장 한가운데를 파서 매립해야 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지하수가 오염되고 121마리를 묻은 곳에서 편히 살 수 없다고 눈물지었다. 매립지 문제로 살처분은 하루 연기됐다. 12월 21일 오후 3시, 방역담당 여자 직원 1명과 남자 직원 1명이 농장에 왔다. 우리 가족은 이 사람들에게 항의도 하고,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오후 5시, 파주시 관계자가 찾아와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예방적 살처분에 협조를 부탁드린다”며 사정했다. 오후 6시,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가는 소들을 위해 고급사료를 줬다. 소들을 안락사 시키려고 주사기에 독약을 넣던 30대 여자직원은 주사기 개수를 확인할 때마다 구토했다. 이 직원은 “살처분 때문에 3일째 밤샘하고 있다. 1주일째 소화가 안 된다”고 했다. 오후 7시가 되자 안락사가 시작됐다. 큰소는 2분 만에, 암소는 1분 만에, 송아지는…. 여자 방역직원은 송아지들의 독약 주사기를 들고는 “제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네요”라고 울면서 바늘을 찔렀다. 그리고는 다시 구토했다. 밤 12시 마지막 송아지가 죽는 것을 확인했다. 12월 22일 오전 4시30분, 121마리의 소들이 밥 달라고 울어대던 농장에는 적막만 흐른다.’


올 한해 내 주변 관심 갖는 불자 되길


자 어떻습니까. 인간의 탐욕 때문에 가축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독극물을 주입해서 생매장을 시키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생명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 시비왕(尸毘王)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성불을 하시기 전 과거 생에 시비왕으로 계시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비왕은 자비심으로 백성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런 시비왕을 제석천은 마뜩찮게 생각했습니다. 시비왕이 다음 생에 자기 대신 제석천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기질투한 제석천은 매로 변해서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내려오면서 비둘기를 시비왕이 살고 있는 궁전으로 몰아넣습니다. 매에게 쫓긴 비둘기는 도망치다가 더 이상 도망 갈 곳이 없게 되자 결국은 시비왕의 소매 속에 숨습니다. 매로 변한 제석천이 시비왕에게 비둘기를 내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비왕은 비둘기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며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매로 변한 제석천이 말합니다. “그 비둘기를 먹지 않으면 내가 죽을 텐데, 내가 굶어죽는 것은 괜찮습니까.” 그러자 고민하던 시비왕은 비둘기의 살만큼 자신의 살을 내어놓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먼저 허벅지 살을 떼어냅니다. 그러나 저울에 달아보니 비둘기의 무게가 훨씬 많이 나갑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깨살을 떼어냈습니다.


그래도 비둘기를 올려 논 저울이 훨씬 아래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비왕은 온 몸의 살을 내어놓고 결국 뼈만 남게 되자 저울이 평행을 이룹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나서야 결국 저울이 평행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제석천이 묻습니다. “한 마리 하찮은 비둘기를 위해 이렇게 까지 하느냐”고. 이에 대해 시비왕은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원력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생명이나 동물의 생명이나 그 무게가 똑 같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생명의 무게는 똑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비록 늦었지만 봉은사는 이미 죽은, 또 죽어가는 동물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낼 계획입니다. 모두 동참해서 억울하게 죽어간 동물들을 위해 함께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경청도부(鏡淸道付) 선사의 말씀을 끝으로 법회를 마치겠습니다.


어떤 스님이 중국의 경청도부 선사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신년벽두의 불법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경청도부 선사는 “새해 아침 복을 여니 만물이 새롭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각자 복된 한해를 열어 가정에 만복이 깃들고 또한 많은 복을 짓는, 참으로 의미 있고 알찬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정리=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이 법문은 봉은사 주지 진화 스님의 1월 2일 일요법회 법문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진화 스님은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2년과 1986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각각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본사는 송광사다. 광주 증심사 주지, 역삼청소년수련관 운영위원장, 강북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송광사 기획국장, 봉은사 부주지, 14대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15대 중앙종회의원,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봉은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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