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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붓다의 깨달음

기자명 법보신문

괴로움의 실체를 밝혀 완전히 소멸시켜

붓다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을까. 우리는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또한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에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할 때 올바른 실천에 전념할 수 있다. 물론 깨달음의 문제를 놓고서 입으로만 왈가왈부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면 바른 실천이란 아예 존재할 수 없다.


붓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진적 과정으로 언급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완전한 지혜(aññā)의 성취가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반대로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적으로 실천하고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완전한 지혜의 성취가 있게 된다.” 이와 같이 붓다는 점차적으로 무르익는 깨달음을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깨달음에 관한 경직된 태도들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극단적인 고행이라든가, 전문적인 요가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깨달음에 접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과 더불어 깨달음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내용은 과연 어떠할까. 초기경전에서는 중도(中道)를 깨달았다고도 하고, 연기(緣起) 혹은 사성제(四聖諦)를 언급하기도 한다. 이들은 다소 전문적인 용어들로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아니며 또한 서로 중복되는 특성을 지닌다. 예컨대 중도란 바른 견해(正見)·바른 의향(正思惟)·바른 언어(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삶(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마음지킴(正念)·바른 삼매(正定)로 구성된 팔정도(八正道)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팔정도는 사성제의 마지막 항목인 도성제(道聖諦)의 실제 내용을 구성한다. 한편 모든 현상이 서로 의존하여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연기의 교설 또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 과정을 밝히는 것에 다름이 아니며, 결국 사성제의 집성제(集聖諦)와 멸성제(滅聖諦)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법륜경’에는 이러한 사성제에 대해 12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깨달음을 심화해 나가는 양상(三轉十二行相)이 묘사된다. 예컨대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했고(苦聖諦), 그것의 원인인 갈망은 끊었으며(集聖諦), 그렇게 해서 괴로움이 소멸된 경지를 실현했고(滅聖諦), 거기에 이르는 길은 닦았다(道聖諦)는 네 과정이 세 차례씩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붓다의 깨달음이 일회적으로 단박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경전에서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걸친 연후에 비로소 ‘위없는 바른 깨달음(anuttaraṃ sammāsaṁbodhi)’을 선언했다는 언급도 나타난다.


초기경전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주로 사성제와 관련해서 등장한다. 이점은 불교의 궁극 목적이 다름 아닌 사성제의 깨달음과 실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우리는 이러한 사성제가 반드시 점진적인 과정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다시 한 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초기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사성제를 사다리에 오르는 과정 혹은 계단에 오르는 과정에 비유한다. 그리하여 괴로움의 현실을 밝히는 고성제로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하나씩 깨달아 나갈 것을 가르친다.


▲임승택 교수
불교라는 종교에서 깨달음이란 최고의 과제이며, 그 구체적 내용은 다름 아닌 사성제이다. 즉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 괴로움의 원인은 탐욕이라는 것, 괴로움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 괴로움을 극복하는 길은 존재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깨달음이란 현실과 유리된 고립무원의 초월적 경지가 아니며, 단박에 성취하고 나면 그것으로 그만인 그 무엇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순간부터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탐욕과 집착이 남아있는 한에서 끊임없는 반성과 닦음을 요구하는 그러한 과제이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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