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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우리 업적을 너무 자랑하지 말라니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2.24 14:20
  • 수정 2011.02.26 12:48
  • 댓글 0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시론

구제역 등 나라 온통 헤집고도 자화자찬
실책․공적도 구분 못하는 이 시대 反영웅


예전에 농담처럼 이순신을 주인공 삼아 소설을 하나 쓰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적이 있었다. 근접전도 아닌 해전에서, 그것도 전쟁을 끝내는 마지막 해전에서, 쫓겨 가는 왜군의 유탄에 맞아 승전군 최고 장수가 죽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보면, 임금이 사는 궁궐에 백성들이 불을 질러버린 상황은 조선이란 국가가 명이 다했음을 뜻하는 징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시대에 이순신 같은 인물에게는 ‘난세의 영웅’이 되어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 아니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난세의 영웅이 될 인품과 능력, 그리고 조건과 명성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명이 다한 왕조의 전복을 꿈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왕조에 대한 대의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는지, 그러기엔 너무 ‘욕심’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가적 정치 자체가 싫었던 것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훌륭한 승전의 대가로 이순신은 죽음으로 끌려갔지만, 아직 기세를 잃지 않은 왜군 덕에(!) 간신히 죽음만은 모면한 채 죄인이 되어 풀려났다. 다시 장수가 되어 막바지의 왜군을 쫓아낼 때, 이순신은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뜻함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쫓겨가는 왜군들 ‘유탄’에 맞아 죽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길을 선택했던 게 아닐까?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유언에서, 죽여야 할 적 때문에 살고 충성해야 할 왕 때문에 죽어야 하는,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적과 싸워야 했고 그 적과의 싸움을 끝내며 동시에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했던 ‘반(反)-영웅’의 슬픔과 고독, 안타까움과 ‘안도’를 본다.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며칠 전 개그정권의 총수 이명박 씨의, 정말 의표를 찌르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 집권 3주년을 맞아 비서진들을 모아놓고 했다는 그 말은 “우리 업적을 너무 자랑하지 마라”라는 것이었다. 푸하하하… 이 말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남북관계를 전쟁 같은 상황으로 밀고 간 것이나, 4대강을 온통 파헤쳐놓은 거야 자신의 업적이라고 생각할 테니 접어둔다고 해도, 구제역, 물가난, 전세대란 등 나라를 온통 헤집어놓고는, “국민에게 우리 업적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했다니, 정말 대단한 유머 아닌가.

 

그는 이미 지상의 고통과는 영원히 무관한 천국에서 대통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겸손한 성품은 일하러 나올 땐 천국에 두고 나오는 듯하다. 실적을 자랑하기 위해 헐값에, 그것도 장장 28년 상환 외상으로 원자로공사 따내고 수주조건은 몰래 감춘 것이나, G20 한다고 회의장 근처에 모든 시민들의 통행을 막아 ‘폼 나는 외양’으로 국격을 과시한 것, 툭하면 시장에 가서 서민 흉내 내면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 쇼를 하는 것을 보면, 정치를 오직 저 혼자 폼 잡고 자랑하는 것만으로 이해하는 게 아닌가 싶으니 말이다.


자신의 ‘업적’이 자신의 죽음의 이유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나,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그런 깊은 고민이나 고독, 슬픔이나 안타까움 같은 것을 싸안으면서 조용히 죽음을 선택한 반-영웅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길을 저 천국의 대통령은 알려주는 것 같다. 실책과 공적도 구별할 줄 모르고, 자신이 하는 것은 모두 업적이라고 믿으며, 그런 믿음을 흔드는 말은 듣지 않으며, 자신의 뜻과 다른 의견은 완전 ‘생까며’ 스스로는 그 ‘업적’에 도취해 항상 과시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업적을 자랑하지 말라고 비서들에게 당부하며 겸손을 과시하는 대통령. 자신을 잡아먹을 시대마저 껴안는 깊은 고민은커녕, 일말의 자의식조차 없어서 전국민의 거대한 폭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우리 업적을 자랑하지 말라”며 겸손을 떠는 주인공. 그는 모든 영웅을 조롱하고 모든 영웅적 행동을 웃음거리로 만들며, 모든 영웅적 감정을 천하게 만드는 이 시대의 반-영웅임이 틀림없으니까.


▲이진경 교수
언젠가 시간이 있으면, 이순신 대신에 이 새로운 반-영웅으로 소설을 하나 쓰고 싶다. 이 놀라운 웃음거리를 동시대인들만이 웃고 말기엔, 지금 치르고 있는 웃음의 비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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