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월호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지금 여기서 주인 되어 완전히 연소돼야”

밥 먹을 때 밥 먹고, 잠 잘 땐 잘 뿐
지금 일에 몰입 하는 게 잘 사는 법

 

 

 


성불(成佛)은 행불(行佛)로 부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완전 연소하자.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자. 행불 합시다.


오늘 여러분들께 삼보에 대한 명상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삼보에 대한 명상은 초기경전에 나오는 말씀인데 삼보에 대한 명상을 읽고, 진실에 맹세를 하면 초월적인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신통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초월적인 힘이냐. 지구촌이 재앙이 줄어들어 마침내 소멸할 수 있는 힘입니다. 최근 재앙이 엄청나게 많이 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진, 쓰나미에 이어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까지. 또 우리나라는 구제역, 조류 독감이 발생하는 등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재앙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불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이 삼보에 대한 명상을 해야 합니다.


진실에 맹세를 하면 얼마든지 재앙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근본이 바로 삼보(三寶)입니다. 그래서 삼보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삼보에 대한 명상을 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엄청난 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로 삼보의 위신력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많은 보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보배가 삼보입니다.


삼보에 대한 명상은 여래십호(如來十號)에 다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의미의 응공(應供)입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실지실견(悉知悉見), 즉 모두 알고 모두 보신다 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실지실견의 눈을 갖추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비록 육신은 소멸하셨지만, 법신(法身), 보신(報身)은 활동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몸이 크게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 세 개가 있습니다.


법신불은 본마음, 참 나 자리의 부처님입니다. 성품의 부처님, 진리의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법신불은 눈으로 보거나, 소리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금강경’에서 ‘만약에 색으로 나를 보고자 하거나, 음성으로 내 소리를 듣고자 하면 이 사람은 삿된 견해를 가진 것이다. 나를 볼 수 없으리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고 했는데 바로 법신불을 이야기합니다. 진리, 성품의 부처님은 드러난 모습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법신불만 있다면 부처님을 알 사람이 없습니다. 견성도인이 아니고는 부처님을 알 사람이 없고, 볼 사람이 없고, 믿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불법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마음으로 나투신 부처님, 그게 바로 보신불입니다. 마음으로 나투신 부처님은 마음의 눈이 열린 분은 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지극히 하다 보면 관세음보살님이 나투셔서 가피를 주거나, 선몽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신불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기도에 응답해 주는 부처님이 보신불입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이런 분들이 보신불에 속합니다. 보신불은 마음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살피는 것입니다.


그것도 역시 마음의 눈이 열리거나, 지극 정성으로 해야 볼 수 있으니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으로 나투신 부처님이 화신불입니다. 이렇게 세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들께서 이것을 본인의 상황에 잘 맞추어서 신행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잘 가려면 완전 연소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주인이 되어 완전 연소하자고 그랬죠. 그러면 완전 연소는 무엇이냐. 지금 여기에서 공부할 땐 공부할 뿐, 밥 먹을 때 밥 먹을 뿐, 잠 잘 때 잠 잘 뿐, 일 할 땐 일 할 뿐, 아플 땐 아플 뿐, 죽을 때 죽을 뿐. 항상 자기가 바로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할 줄 아는 사람 이게 잘 사는 겁니다.

 

불교는 믿어라 아닌 와서 보라는 것
무한한 가능성을 살려 주는게 불법


자신이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수행법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면 진짜 그것이 최상의 수행법이 됩니다. 본래 정해진 최상의 수행법은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게 최상의 수행법이 됩니다.


‘삼계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분이다. 그 다음에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시며, 또 신과 인간의 스승이다.’ 이 부분을 정확이 알아야 합니다. 천인사(天人師). 천신과 인간의 스승이다. 부처님의 여래십호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만의 스승이 아니고, 신들의 스승입니다. 제가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불교는 무신론일까요 유신론일까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신론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유신론도 아니고, 무신론도 아니고 비신론입니다. 신의 존재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나의 주인은 아닙니다. 다른 종교와의 차이는 불교에서도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다른 종교에서는 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주종관계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주종관계는 아닙니다. 부처님과 우리는 스승과 제자 관계입니다. 부처님과 신은 스승과 제자 관계입니다. 그래서 신과 우리는 도반 관계입니다. 명확히 알아야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입니다.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불교는 바다와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해 줍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가 될 수 있는데 무엇인들 될 수 없겠습니까. 신도 될 수 있고, 인간도 될 수 있고, 축생도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합니다. 이것이 ‘법화경’의 중심사상입니다. 법화 사상의 핵심이 여러분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주인이니 굳이 밖으로 구걸하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사상이며, 무한한 가능성, 무한한 자원, 무한한 재산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불성사상입니다.


베푸는 마음을 연습하는 것은 남이 내 덕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지근성, 종살이 이런 것을 다 놓아야 참다운 부자가 되고 주인이 되는 비결입니다. 베푸는 마음을 연습하면 부자가 됩니다. 마음이 먼저요 현실이 나중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연습하는 데로 현실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좀 빨리 오느냐 더디 오느냐 이 차이만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긍정마인드를 연습하면 현실에 긍정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긍정안테나를 세우니까 세상의 긍정적인 기운이 다 모여드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부정 안테나를 내가 세우면 세상의 부정적인 일이 다 모여듭니다.


‘스스로 보호할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바로 와서 보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웃을 때, 와서 보라는 것이지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와서 보라는 것입니다. 향상으로 인도하고, 점점 여러분들을 향상 시켜준다는 겁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살려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또 지혜로운 자들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불교입니다. 이것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법, 쾌락에도 빠지지 말고 고행에도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몸을 닦고, 마음을 닦고, 성품을 닦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수행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 몸 닦기, 둘째 마음 닦기, 셋째 성품보기입니다.


몸과 마음은 닦아야 합니다. 몸은 해체해서 봐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몸을 해체해서 보고 그 다음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묶어서 봐야합니다. 마음은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그냥 보려 하면 절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묶느냐. 들숨날숨의 기둥에 마음 챙김의 밧줄에 묶어서 봐야합니다. 마음은 원래 고정된 실체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갑니다. 마음이 여기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품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여기에 참선과 명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몸을 보고 마음을 보는 것은 명상입니다. 그러나 성품을 보는 것은 참선입니다. 성품은 돌이켜 봅니다. 반문문성(返聞聞性).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눈은 내 밖을 봤습니다. 성품을 보려면 시선을 안으로 돌려야 합니다. 밖을 향한 시선, 시비와 분별을 쉬고 자신의 본마음을 돌이켜 보는 것이 성품 보는 법입니다.


정리=조영훈 광주지사장


이 법문은 3월19일 증심사 취백루에서 열린 무등산 증심사 명사초청 ‘무등에서 길을 묻다’ 법회의 1회 법사로 나선 월호 스님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월호 스님은

동국대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 쌍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했으며, 고산 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전수받았다. 현재 쌍계사 승가대학 교수이며, 행불선원 원장으로 후학양성과 포교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