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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금동반가상 보관의 초승달

기자명 법보신문
간다라-미투라 양식 탈피 ‘상징’

페르시아-소그드 왕관에서 모티프 빌려



사상이나 종교가 전파될 때 이에 상응하는 미술 또한 함께 전래되기 마련이다. 특히 종교미술의 경우 종교적 신성성과 교리를 미술품에 엄격히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완고한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 나라 불교미술이 인도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불교가 이 지역을 통해 우리 나라에 수입됐으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 미술품에도 가끔은 전혀 엉뚱한, 그리고 기발한 내용이나 상상이 첨가돼 더욱 풍부한 종교적 상징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보 78호 금동반가상의 보관이다.

국보 78호 금동반가상의 보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소 재미있는 문양이 조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승달 문양의 조각이 바로 그것이다. 초승달뿐만 아니라 초승달 위에 해를 조각하고, 그 앞에는 3개의 방패 모양의 입식도 조각해 한껏 멋을 부렸다. 거기에 고사리 같은 식물형 장식과 연꽃잎 비슷한 문양까지〈그림1〉.

그러나 이것은 인도 간다라·미투라 보살 보관 양식이 원형 터번〈사진4〉 것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요소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문양이 도입돼 보관 위에 앉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78호 미륵반가상 보관은 사산조 폐르시아 왕관〈사진2〉에서 모티프를 빌려온 것이다.

6­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 왕관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내관(內冠)의 꼭대기에는 초승달과 해를, 외부에는 세 개의 성벽 모양을 둘러친 형태를 조각해 넣었다.

78호 금동반가상의 초승달과 해는 말할 것도 없고, 방패 모양 입식 조각은 바로 페르시아 왕관의 성벽 모양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서쪽으로 건너가 아프카니스탄과 소그드 지방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소그드 지역의 판지켄트 벽화에 그려져 있는 왕관은 78호 금동반가상과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성벽모양은 단순화 됐고 일부분은 지워졌지만, 식물형 장식과 연꽃 모양은 상당히 닮아있다. 그러나 78호 금동반가상 보관이 이들 지역의 왕관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이들을 뛰어넘는 아름다움과 창조성을 담고 있다. 어느 쪽으로 휘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밋밋한 초승달의 무심함. 그런 초승달을 3개씩이나 조각해 넣는 파격, 식물형 장식의 모양은 한결 부드럽고 아름답다.

원형을 완전히 변형시킬 정도의 이런 대담한 재구성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이 모티프 하나 하나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아마 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마음을 옭아매는 형식이나 양식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답게 반가상을 치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그 마음이 78호 금동반가상의 고요한 미소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이런 아름다운 보관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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