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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不作 一日不食’의 교훈

기자명 손석춘
무릇 종교는 말 그대로 으뜸 되는 가르침이다. 본디 종(宗)으로 한역된 범어 또한 궁극에 이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불교의 가르침은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깨우침을 준다.



일할 권리 요구할 근거

일각에서는 불교가 새로운 문명의 반석이 될 것이라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일찌기 아놀드 토인비가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현대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꼽은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 선(禪)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곰비임비 늘어나고 있다. 자연은 물론 사회와 사람을 두루 황폐화시킨 현대 문명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을 서양인들 스스로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의 부익부빈익빈을 개혁하려는 비판적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이 내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구호는 불문(佛門)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미 중국 당나라 때 백장회해(百丈懷海) 스님(749-814)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란 말을 남겼다. 나이가 들어서도 쉼 없이 일하는 스님을 위해 제자들이 삽과 괭이를 숨기자 아예 식사를 거부한 일화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벼락같은 깨달음을 준다. 주식투자와 경마 따위의 투기가 극성을 이루고 돈과 쾌락만을 좇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부작불식(不作不食)은 얼마나 적실한 교훈인가.


노동 자체의 신성함 의미



그러나 요즘의 우리에게 그 말은 적잖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실업이 크게 늘어난 까닭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부작불식은 한가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작불식의 참 뜻을 올바르게 되새긴다면, 이는 ‘일할 권리’의 튼튼한 사상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더구나 백장스님은 일 자체를 참선 수행으로 삼지 않았던가.

기실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 곧 노동권을 지니고 있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거센 물결로 다가오고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실업은 근본적인 문제다. 이른바 구조조정의 이름아래 정리해고가 마구 자행 돼 40대 이상의 실직 자살자가 크게 늘고 있다.

가령 지난 2월말에도 부산의 한 40대노동자가 20여 년 넘게 일해온 대우에서 정리해고 된 사실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단 기성세대만의 고통이 아니다. 올해 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53.4%로 10만 명 이상의 젊은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졌다.

문제의 심각성은 실업 문제가 가까운 시일 안에 해결될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반면 일하지 않는 자들의 투기적 재산 부풀리기는 급증했다.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 좇는 현대인 꾸짖는 가르침



일하지 않고 얻는 이익들에 대해선 ‘중과세’를 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 운동으로 일할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철학은 바로 그 과정에서 양날의 칼일 수 있다. 일하지 않고 먹는 이들에게는 노동의 신성함을, 일자리가 없는 이들에겐 일할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근거를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에도 부작불식을 수행으로 실천하는 스님들이 적잖게 있다. 불교의 가르침과 풍부한 실천의 경험들을 되살려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발전방향을 제안하고 더 나아가 세계사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는 일, 바로 그것이 오늘의 불교인들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손석춘(한겨레신문 여론매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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