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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를 허하라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6.13 16:05
  • 수정 2011.06.13 16:19
  • 댓글 0

불교학과를 입학하고 공부를 시작한 이후 불교가 내게 제약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 함부로 막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불편한 적이 한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낚시였다. 고향이 바닷가인지라 낚시는 어릴 적부터 내게 익숙한 놀이였다. 물고기가 미끼를 툭툭 건드릴 때는 더없이 짜릿하다.


대학 1학년 여름 고향에서 낚시를 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웬걸 갯지렁이 입에 낚시 바늘을 꿸 수가 없었다. 바닷가에서 나는 느꼈다. 이제 영영 낚시는 못하겠구나.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낚시를 한 적이 없다. 여리게나마 자란 불교적 정서가 행동을 제약한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능력의 감퇴가 아니라 능력의 신장이었다. 하지 않음의 능력 말이다.


두 번째는 논산 훈련소에서였다. 입소대로 가는 길에 아직 철거하지 않은 연등이 줄지어 달려 있었다. 전날이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불안함과 어색함을 군중 속에 애써 묻었다. 사격 훈련하는 날. 그때까지 나는 총소리가 그렇게 큰지 몰랐다. 개머리판에서 어깨로 전달되는 반동이 그리 큰지 몰랐다. 그 때 나는 또렷이 느꼈다. “아! 총으로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겠구나.”


저 앞에서 사람 모습을 한 표적이 내가 쏜 총을 맞고 퍽퍽 쓰러진다. 사격훈련은 분명 사람 죽이는 연습이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윤리적으로 해방된 듯 착각한다. 그런데 나는 별로 해방되지 못했다. 여전히 그 표적이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괴로웠다. 육체적 불편보다는 불교적 정서가 훼손당하는 느낌이었다.
나의 이런 불편이 종교적 오해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지 않음이 종교적 오해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2001년 오태양씨가 병역거부를 한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가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됐다. 오태양씨가 불교도였지만 불교계에서 그를 위해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나라 불교가 호국불교여서 그런가? 반호국은 반불교인가?


작년 봄 친구가 병역을 거부해 옥살이를 시작했다. 친구라고 하기엔 나이가 한참 떨어진다. 그래도 술친구로 꽤 고군분투한지라 친구로 쳐주는 녀석이다.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군대를 거부했다. 무슨 불순분자도 아니고 적과 내통한 것도 아니다. 내가 쭉 감시해봐서 안다. 그는 군대로 상징되는 문화가 싫었다. 자신의 생각과 몸을 거기에 맡기기 싫었다. 감옥보다도 더 싫었다.


나는 녀석에게 그냥 군대 가라고 했다. “너 감옥가면 여러 가지로 힘들고 앞으로 불리하다”고 일러주었다. 계산기를 두드려 수학적으로 군대 가야할 이유를 설명한 셈이다. 그런데 녀석은 군대가 아니라 교도소로 갔다. 신념대로 행동했다. 안됐지만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런 녀석이 조만간 출소한다. 전과자가 되어.


지난 정권 때 대체복무제도가 추진된 걸로 안다. 이번 정권 들어 싹 사라졌다. 국방부도 영 딴소리다. 인간은 종교적인 것을 포함해서 다양한 신념을 가진다. 그런데 그 인간은 시민이기도 하고, 국민이기도 하다. 사회나 국가를 위해(危害)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그 신념은 존중되고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보다 나은 사회고 국가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시행하지만 누구는 공립학교 다니고 누구는 사립학교 다닌다. 심지어 학교에 적만 걸어둔 연예인도 있다. 의무이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순정한 신념 때문에 전과자가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김영진 HK연구교수

대체복무제도만 시행됐어도 내 술친구는 전과자가 되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나온다니 기쁘다. 못한 술자리를 먼저 복구해야지 싶다. 그나저나 녀석이 출소하는 날 두부를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무슨 죄지었다고 두부를 안기나.

 

김영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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