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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유의 땅' 라마유루곰파

기자명 법보신문

죄지은 자에게도 자비 베푼 천년 사원

 

▲ 라마유루곰파의 초르덴 아래서 라다키 여인이 탑돌이를 하고 있다. 마니차를 돌리는 여인의 손길이 정성스럽다.

 

 

지상에 내려앉은 한 조각 달인 듯 신비로운 라마유루 달의 계곡, 문랜드의 감동을 품고 라마유루곰파로 향한다. 라마유루곰파는 문랜드가 마주보이는 언덕 위, 정확히 표현하자면 벼량 끝에 서있다.


곰파 아래의 계곡이 제법 까마득하지만, 사실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들이 워낙 만만치 않은 높이를 자랑하고 있어 절벽 위의 곰파는 그리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해발 3540m. 이 정도면 라다크 지역 평균 고도에 불과하다.


라다크의 땅 가운데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은 5%밖에 되지 않는다. 메마른 계곡과 산허리를 돌아가다가 우연히 푸른 숲을 만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마을이다. 라다크는 그렇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야만 하는 곳, 자연이 오직 그러한 삶만을 허락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 라마유루곰파 내부 벽엔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가 가득하다.

 


하지만 라마유루에서는 그런 기대조차 용납되지 않는가 보다. 문랜드 맞은 편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라다크식 흙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라마유루는 라다크의 어느 마을보다도 거칠고 삭막해 보인다. 곰파가 세워져 있는 산비탈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좁은 계곡을 따라 약간의 나무가 자라고, 조각조각 이어져 있는 계단식 보리밭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나무가 있는 아래쪽 계곡 대신 계곡 위 산비탈에 세워져 있는 라마유루곰파 주변을 외호하듯 모여 있다. 그 덕분에 변변한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만날 수 없는 라마유루 마을의 첫 인상은 콧속까지 칼칼하게 만드는 건조함, 그 자체다.


푸석푸석한 산비탈 길을 따라 라마유루곰파 입구에 도착했다. 달의 땅을 옮겨 놓은 듯 이질적인 환경의 계곡 풍광과는 달리 4층 높이의 커다란 게스트하우스가 떡 버티고 서 있는 곰파의 입구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당황스럽다. 그것도 라마유루곰파에서 직접 짓고 운영하는 곳이란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 만큼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 입구에는 수 십대의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고 방금 오토바이에서 내린듯한 서양인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오토바이로 라다크를 여행하는 이들이 오늘은 이곳을 숙소로 잡은 모양이다. 소란한 그들의 대화를 뒤로한 채 게스트하우스 옆 작은 골목길을 따라 라마유루곰파로 향한다.

 

창건자 나로파는 까규파의 모태

 

 

▲ 달의 계곡이 보이는 절벽 위, 우뚝 서 있는 라마유루곰파.

 

 

라마유루곰파는 성스러운 뱀이 살던 맑은 호수 자리에 세워졌다는 신비로운 전설의 사원이다. 그 전설의 주인공, 호수의 물이 모두 사라지도록 만들고 그 자리에 사원을 세운 ‘나로파’는 11세기 인도의 불교학자다. 그는 이곳 계곡의 바위동굴에서 여러 해 동안 수행한 후 깨달음을 얻었고 산허리를 갈라 호수의 물이 사라지게 만든 후 그 자리에 곰파를 세웠다. 이곳 라마유루곰파에는 나로파가 수행했었다는 바위동굴이 아직도 남아있다. 라마유루라는 지명도 ‘라마의 명상지’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라마란 바로 나로파를 지칭한다.


그러나 라마유루곰파에 관해, 역사는 10세기 경 라다크왕의 명령으로 린첸 잔포 스님이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16세기에 이르렀을 때 나병에 걸린 라다크왕이 스님들의 도움으로 병을 치료한 후 고마움의 표시로 라마유루곰파를 스님들에게 보시했다. 왕은 사원을 보시하며 세금을 면제해주는 면세특권과 함께 곰파 주변을 성역으로 지정해 성역 안에서는 누구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도록 했다. 덕분에 범죄자라도 라마유루곰파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라다크 사람들은 이곳을 ‘자유의 땅’이라 부른다.


라다크지역에서도 가장 오래된 사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라마유루곰파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오며 여러 차례에 걸쳐 파괴되고 재건되는 부침을 겪어야 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들 역시 수차례 파괴와 복원을 거듭한 것들로 그나마 사원 중앙의 건물이 비교적 초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우선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호텔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곰파의 초르덴이 아름다운 실루엣을 드러낸다. 조성된 지 얼마 안돼 보이는 새것 옆으로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져 마치 둥근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초르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초르덴은 한 번 세우고 나면 보수를 하거나 새로 짓지 않는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라다크 지역이라도 흙과 흙벽돌만으로 조성된 초르덴은 여름과 겨울의 계절 변화를 겪으며, 그리고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시달리며 조금씩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그런 초르덴을 보면서 사람들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눈으로 확인한다. 초르덴이 허물어지면 사람들은 그 옆에 새로운 초르덴을 세운다. 그러다보니 여러 개의 초르덴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라다크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옛것과 새것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라다크 자연의 한 자락인 듯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스런 풍경이다.

 

 

▲ 곰파 내부의 법당엔 고색 창연한 탕카가 즐비하게 걸려있다. 화려한 색의 비단으로 만들어진 장엄물들이 법당 내부를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마침 라다키 여인 한 명이 초르덴을 따라 탑돌이를 하며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줄지어 세워져 있는 마니차를 한 개도 빠뜨리지 않고 돌리는 여인의 솜씨는 능숙하면서도 정성스럽다.


라다키 여인을 뒤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건물 밖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들이 즐비하다. 라마유루곰파에는 오래돼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속에서도 벽화가 발견되는데 그 중에는 조성 시기가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는 것들도 있다고 한다. 법당 내부에는 우리의 만장(挽章) 혹은 번(幡) 같이 생긴 오색깃발들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그 뒤로 티베트 불화인 탕카(Thangka)들이 법당을 빙둘러가며 걸려있다. 사원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색창연한 탕카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오색 깃발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법당을 둘러보느라 목이 뻐근할 지경이다. 탕카에 정신이 팔려 벽만 올려다보고 있는데 법당 오른편 벽에 작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색 팻말에는 영문으로 ‘이 동굴은 나로파가 명상 수행을 할 때 사용했던 곳입니다’라고 적혀있다. 이곳이 바로 라마유루곰파 창건 전설의 주인공 나로파의 수행동굴이다.


체구가 작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머리와 어깨를 밀어 넣을 정도의 작은 창문 너머로 들여다 보이는 동굴 안에는 나로파와 그의 제자인 마르파, 마르파의 제자인 밀라레파의 조각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특히 마르파는 티베트불교 4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까규파의 시조로, 까규파는 까르마파가 이끄는 종단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나로파에 의해 창건된 라마유루곰파는 이후 까규파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번성했고 지금도 까규파의 한 지파인 디궁파의 사원으로 위상을 공고히 이어가고 있다.


달의 계곡에선 신비의 가면축제가

 

 

▲ 곰파 창건자인 나로파(가운데)와 그의 제자들 조상이 모셔져 있는 나로파 동굴.

 


이같이 위대한 인물인 나로파가 수행했다는 이 동굴은, 그러나 한 사람이 들어가 앉아 있기에는 턱 없이 작아 보인다. 동굴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작은 바위틈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싶다. 하지만 나로파는 그의 스승 틸로파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 사원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고, 끓는 물속에 들어가는 등 모두 12가지의 시련을 거쳤다고 하니 이처럼 작은 동굴에서 수년간 수행하는 일쯤은 어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설은 전설로 남겨주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거친 라다크의 땅이 품고 있는 비밀스런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으리라.


전성기에 이곳 곰파에는 400명에 이르는 스님들이 생활했지만 지금은 20~30여 명의 스님들만이 기거하고 있어 조금 외로워 보인다. 대신 매년 티베트력으로 2월과 5월, 양력으로는 3월과 7월이 되면 100여 명이 넘는 스님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며 가면춤을 추는 축제가 열린다. 3월은 지루한 겨울의 끝자락이고 7월은 짧은 여름의 한 복판이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묵묵히 겨울을 보내고 있는 라다키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짧은 여름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기쁨을 나누기 위해 열리는 축제인 셈이다. 달의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사원, 온갖 신비로운 전설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가면을 쓰고 벌이는 축제란 어떤 모습일까. 마치 먼 우주의 어느 별에서 인간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생명체들이 경이롭고 낯선 풍경과 어울려 벌이는 한 바탕 우주의 춤사위 같지 않을까. 달의 계곡, 문랜드에서 벌어지는 이 놀라운 우주의 축제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오는 3월을 기다리기에 여행자의 시간은 너무 짧고 지나버린 7월의 상상 속에 머물기에 갈 길은 너무 멀다. 다음 여정으로 발길을 옮길 시간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 오토바이로 라다크를 여행하는 서양인들. 번호판에 적혀있는 ‘DL’이라는 표식이 델리 소재 오토바이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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