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보타산 불긍거관음원·남해관음

기자명 법보신문

남해관음의 인자한 미소 수행자·향객에 꿈을 심다

 

▲ 관음의 고향 보타산 곳곳에서 바라다보이는 남해관음상은 이곳의 상징이다.

 

 

섬 전체 면적이 13㎢에 불과함에도 한때 200여 사암에서 3000명 이상의 스님들이 수행했던 보타산은 예부터 ‘골짜기마다 사찰이요 길이 다하는 곳마다 승려가 있다’고 했을 만큼 활발하게 포교가 이뤄지던 곳이다. 물론 지금도 크고 작은 절 모두에서 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명실상부한 ‘관음의 고향’으로 불리며 관음 가피를 입고자 보타산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섬에서 두 번째로 큰 절 법우선사(法雨禪寺) 참배를 마치고, 절 앞에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 천보사(千步沙)의 아름다움까지 눈에 담고는 다시 발길을 불긍거관음원으로 돌렸다. 일본으로 가기 싫어 움직이지 않았다는 관음상을 모시고 지은 사찰로 이름난 곳이다.

 

 

▲불긍거관음원 옆 소신공양이 있었던 자리에 새겨진 불상.

 


자주색 대나무 숲이 우거졌다고 해서 붙여진 자죽림 안에 자리 잡은 불긍거관음원은 작은 암자로, 마치 우리의 낙산사 홍련암을 보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중국 관음신앙의 중심지 보타산 전체가 낙산사와 닮은꼴이다.

 

불긍거관음원은 홍련암
보타산은 낙산사 닮은꼴
6km 떨어진 작은섬 낙가산
바다 위에 누운 관음보살님


신라 귀족으로 열아홉 나이에 출가한 의상 스님은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 2조로 불리는 지엄 화상 문하에서 화엄을 공부하고 10년 만에 신라로 돌아왔다. 이후 나라 안 이곳저곳을 만행하던 중 강원도의 한 바닷가에 이르러 파도가 깎아지른 절벽 인근 해변석굴에서 관음보살 친견을 기원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당시 높이 30m가 넘는 깎아지른 바위틈으로 쉴 새 없이 파도가 드나드는 험한 그곳의 해변 석굴엔 관음진신이 산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의상 스님은 여기서 관음의 진신 친견을 서원하며 기도를 했음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그대로 바닷물에 몸을 던지며 위법망구의 결의를 보였다. 이에 그 정성에 감응한 관음은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건네 위로 했고 동해 용왕도 여의보주 한 알을 내려 의상의 정성을 격려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관음보살과 용왕의 보이지 않는 보살핌으로 살아 돌아온 의상은 또다시 7일 동안 진심으로 기도한 끝에 마침내 관음을 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음의 계시에 따라 그곳에 절을 지었으니, 그 절이 바로 낙산사이고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한 곳에 세운 암자가 오늘날 우리나라 3대 관음 기도도량 중 하나인 홍련암이다. 불긍거관음원은 이 홍련암과 흡사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자주색 대나무 숲을 찾아보기 어려움에도 자죽림으로 이름 붙여진 이곳에 세워진 불긍거관음원은 움직이지 않는 관음상을 모셔 놓고 지은 관음도량이기에 참배객이 적지 않다. 법당을 찾는 이들이 줄지어 선 맨 끝자락에 섰다가 법당 안을 참배하고 카메라를 들자 한 스님이 가로막으며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손가락 끝을 따라 가보니 ‘사진촬영금지’란다. 스님에게 검지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 웃어 보이며 카메라를 들자, 스님도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촬영을 해도 좋다는 허락이다. 하지만 법당엔 불상만 봉안했을 뿐, 건물이나 내부 구조물에 특별한 이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법당을 나오니 중국 관광객들에게 소리 높여 설명하는 가이드가 눈에 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큰 비석에는 ‘소신금지’를 알리는 글이 빼곡하다. 옛날 어느 때인가 관음보살 친견을 서원한 이가 이곳에서 스스로 몸을 태우는 소신공양으로 그 간절함을 표현한 이후, 여러 사람들이 이를 따라했기 때문에 이처럼 큰 비석을 세워 온 몸을 사르는 소신공양이나 손가락을 태우는 소지의 금지를 알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닷가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자 돌에 소신공양한 장소임을 상징하는 작은 불상이 새겨져 있고, 그 불상 앞에 향객들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사른 향이 만들어낸 그을음 자욱이 선명하다. 소신공양한 그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잠시 그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내 속엔 어떤 간절함이 있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보타산에서 본 낙가산은 바다 위에 누운 관음보살 형상이다. 운무로 인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옆 정자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아 더위를 식히며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바다 저편으로 눈길 닿는 곳이 낙가산이다. 보타산에서 남쪽으로 6㎞정도 떨어진 작은 섬으로 보타산과 더불어 ‘보타낙가산’으로도 불린다. 애초 관음보살 도량의 시원이 낙가산이라는 전설이 있어 이곳 사람들은 ‘낙가산을 가지 않으면 보타산을 오지 않은 것과 같다’며 낙가산 가기를 권한다.


보타산 입구에서 낙가산 들어가는 배를 타고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하루 4번만 운항하기 때문에 일정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천태산에 이어 보타산을 찾은 일행 역시 일정상 낙가산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불긍거관음원 앞 정자에서 바라본 면적 0.8㎢ 정도의 낙가산은 마치 큰 관세음보살이 연꽃 위에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일행들은 “어디가 보살님 상이냐”며 서로 경쟁하듯 때 아닌 바다 위 보살상 찾기에 나서기도 했다. 안개가 흐릿하게 바다 위를 덮고 있어 선명하지는 않을지라도 마치 조각을 해 놓은 듯한 바다 위 보살상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었다.

 

남해관음상은 보타산의 상징
중생 고단한 소원 다 듣는 듯
삼보일배 수행자 얼굴엔 미소
염불하는 향객은 간절한 합장


중국 최대의 관음도량답게 이처럼 얽힌 전설도 이야기 거리도 많다.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바닷가 바위 위로 파도가 넘실대며 올라오는 모습이 아름다운 불긍거관음원을 나와 보타산이 자랑하는 남해관음상을 찾아 길을 재촉했다.


남해관음상은 보타산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청동관음상으로 이 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 남해관음보살상은 높이 33m로 전체가 황금으로 도금돼 있다. 남해관음상 쪽으로 길을 잡으니 이미 참배를 마치고 되돌아 나오는 향객들로 인산인해다. 사람 물결로 멀미가 날 지경이다. 중국에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또한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15분여를 걸어 도착한 남해관음상 앞엔 관광객과 향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6m 높이의 낙산사 해수관음상 보다 두 배 가량 큰 남해관음상은 거대한 크기임에도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가 아름답다. 특히 측면에서 바라본 보살의 인자한 미소는 가히 일품이다. 관음보살은 대자대비의 화신으로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진심으
로 부르기만 해도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기에, 세인들에겐 제일 친숙한 보살이기도 하다.


경전에서도 “선남자여! 많은 중생이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관음을 한 마음으로 부르면 그 소리를 들으시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신다. 활활 타는 뜨거운 불길에 갇힌다 해도 타지 않으니, 관세음보살의 위력 때문이다. 큰 물길에 떠내려간다 해도 관음을 부르면 곧 안전한 땅에 이르게 될 것이다.-‘관세음보살 보문품’-”라고 했으니, 가히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 남해관음상 친견에 나선 중국 불자들이 염불을 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관세음보살은 예로부터 중생의 고단한 소원을 가장 먼저 듣고 현세에서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는 보살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국민들이 종교와 관계없이 낙산사 해수관음을 찾는 것처럼 중국인들이 보타산 남해관음을 참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남해관음상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자 중간 중간 마련해 놓은 대형 향로 앞에서 향을 사르고 염불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여인 몇이 목탁을 치며 일심으로 ‘관음보살’을 염하고 있는 사이, 향객들도 그녀들 곁에 합장하고 서서 관음보살을 찾는다. 신라시대 의상 스님의 관음보살 친견 의지에 견줄 수 있을까마는 중국 향객들의 간절한 모습만큼은 그에 못지 않다.


남해관음상 좌대 아래엔 원형 법당이 조성돼 있고, 법당 벽엔 일본으로 가기를 거부한 채 배 안에 꼼작 않고 서 있는 관세음보살상 이야기가 여러 폭의 그림으로 표현돼 있어 이곳이 관음도량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관음상 발밑까지 올라 내려다본 바다는 여전히 황톳물이었으나, 보타산으로 들어올 때의 그 거친 물결은 가라앉고 평온하기만 하다. 출렁이는 황톳물을 보는 불편함이 사라졌으니 이또한 관음의 가피인가 보다.

 

 

▲ 삼보일배로 남해관음상을 향하는 수행자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보타산에서의 감동은 그 다음이 더 진했다. 남해관음을 친견하고 하산하는 길에 만난 3보1배 행렬. 저마다 서원은 다를지라도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티베트인들이 가장 낮은 자세로 수미산이라는 대 보살을 찾아가듯, 관음의 고향에서 업장소멸과 가피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는 미소 띤 얼굴의 수행자. 관음보살의 미소였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