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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상담연구원장 인경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소통이 곧 반야바라밀…경청과 배려로 가능

 

▲인경 스님

 

 

오늘의 법회 주제는 ‘명상과 가족 간의 소통’입니다. 가족 간에 화합을 하려면 소통이 돼야 합니다. 물론 소통은 가족뿐만 아니라 계층, 지역 간에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족의 화합은 사회의 소통을 이루는 기초입니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소통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 행복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소통이 있는 곳에는 안락과 마음의 평안이 함께 합니다. 소통이 없으면 막혀 있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소통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


그렇다면 소통은 어떤 것일까요. 소통은 ‘잘 통한다’, ‘너와 내가 잘 통하는 사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옆 사람과 손뼉을 마주 쳐 보십시오. 기분이 어떻습니까. 좋습니까? 이것이 막히지 않고 통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선가에서는 이를 ‘도통(道通)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도(道)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육조단경’에서도 “도란 통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옆 사람을 보며 다시 한 번 손뼉을 마주 쳐 보십시오. 통하십니까?


이것을 또 선가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막히지 않고 잘 통하다’라는 뜻입니다. 대부분 소통이 막히는 경우는 자기주장만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재단하고 내 방식대로 뜯어 고치려고 합니다. 간섭하고 통제하려하면 상대방은 숨이 막히게 됩니다. 당연히 도망가려고 하고 겉돌게 됩니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의 일부, 소속의 멤버로서 소외당하는 것 같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함께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결국 소통이 안 되면 단절과 좌절을 부르고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소통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잘 웃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소통이 잘 이뤄집니다. 또 한 가지는 조금 전처럼 마주 보며 손뼉을 치는 것,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서로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좋은 기분을 느끼게 되면 당연히 소통은 수월해 집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몸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가의 용어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했습니다. 머리로 하지 않고 몸으로 소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통의 또 한 가지 방법은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잘 경청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서운 꿈을 꾼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 울면서 엄마를 찾는데 엄마는 시끄럽다며 호통을 쳤다고 합시다. 이러면 소통이 되겠습니까. 먼저 안아 주어야 합니다.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안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말을 해주어야 될까요. “괜찮아.”, “무서웠구나.” 이것이 소통이고 도통하는 것입니다. 왜 도통일까요. 그 순간에 길이 트이기 때문입니다. 바깥에 있는 길이 아니라 너와 나의 마음과 마음의 길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 또한 길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안정감을 느끼고 ‘엄마라는 사람은 의지할만한 사람’이라고 신뢰하고 ‘엄마 품안은 따듯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욱 나아가서 ‘나는 가치 있고 엄마로부터 보호받고 있으며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끄럽다”라고 단정해버린 경우는 그 아이가 엄마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겠습니까. ‘넌 가치 없어. 넌 내 가족이 아니야. 넌 왜 그렇게 울기만 해. 넌 나쁜 아이야.’ 엄마가 직접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메시지를 아이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 경우는 좌절감과 단절을 가져옵니다. 대화는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익혀야 됩니다.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 익혀야 됩니다. 암사자들은 서로 머리를 비벼대며 소통하는 법을 엄마 사자에게서 배워 오듯이 사람도 소통의 방법을 몸으로 익히고 배워야 합니다.


도통·이심전심도 소통 의미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읽어 주는 것을 ‘적극적 경청’이라고 합니다. ‘적극적 경청’에 대해 소개한 글을 잠시 읽어보겠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공감해주고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주는 것입니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설득하여 내 뜻대로 조정하려는 의도를 가질 때가 참 많습니다. 특히 가족이나 직장 동료와 대화를 할 때 권력에 의한 의지가 자주 표출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없고 나의 이기심만 존재합니다. 결과는 소통의 단절이며 갈등의 증폭과 깊은 불신입니다. 적극적 경청은 수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 속으로의 따듯한 동행이며 함께 만들어내는 창조적 행위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관심으로 어려움에 처한 특별한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자애 명상’의 실천입니다.”


사자들이 얼굴을 비비는 것은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면 소통이 됩니다. 가족끼리 여행을 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같이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면 가족이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통은 몸으로 하고, 몸으로 한 것은 함께 경험한 것이기에 이것이 소통에 큰 도움을 줍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를 행할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관자재(觀自在)라는 말은 관세음(觀世音)이라고 번역을 합니다. 자재한다는 말은 바람이 이곳저곳에서 불어온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소통이 잘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무섭다고 우는 아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항상 웁니다. ‘이것 사라’, ‘저것 마셔라’ 라며 끊임없이 울어댑니다. 관세음보살은 그 소리를 듣는 분입니다. 적극적으로 경청해주는 보살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듣는 보살이고 거기에 막히지 않는 자재한 보살입니다. 그래서 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데 바라밀이라는 것은 저쪽 언덕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저쪽 언덕은 관자재한 곳이고 관세음한 곳입니다. 가슴이 막히지 않는 피안(彼岸)입니다. 상대적으로 차안(此岸)인 이쪽 언덕은 막힌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통이 막혀 있는 언덕은 차안이며 대화가 통하고 막힌 것이 뚫린 것은 피안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피안에서 사십니까, 차안에서 사십니까.


뻥 뚫린 곳을 경전에서는 ‘반야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바라밀다’는 건너다라는 말입니다. 반야는 지혜이고 뻥 뚫려서 너와 내가 이 세상에 대해 소통하고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을 실천할 때를 말합니다. ‘반야심경’에 보면 일체 고통과 액난을 건너는 자리가 피안이라고 했습니다. 오온은 꽉 막힌 것이 오온(五蘊)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꽉 막히게 합니까.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다섯 가지입니다.


자주 웃는 게 소통의 첫 걸음


‘색(色)’은 몸입니다. 엄마가 아픕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내가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몸이 따로 있는 것은 벌써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소통을 하려면 몸을 비벼봐야 합니다. 손뼉을 쳐서 몸이 통하는 것을 느껴 봐야 합니다. 몸과 몸을 비비고 마주할 때 소통이 됩니다. 소통이 되는 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소통이 되는 것은 텅 비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텅 비지 않고 막혀 있으면 소통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수(受)’는 느낌과 감정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통을 방해합니다. 아이가 우니까 엄마가 화가 나서 시끄럽다며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자신의 감정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소통을 가능하게 하려면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상(想)’은 생각이나 신념입니다. 먼저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너의 생각이 맞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며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시원해지고 고요해지는 것이 바로 ‘공(空)’입니다.


‘모두 공하다’는 말은 너와 나의 앙금이 없어졌고 장애가 없어져서 내 마음이 시원해졌다, 나는 너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공이라는 말을 경험적으로 이해할 때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마음이 평화롭다, 개운하다, 가볍다 등으로 이해합니다. 왜 가볍습니까. 상대방을 인정하니까 개운해 지는 것입니다. 꽉 찬 것이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읽어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통의 길이 열리고 반야바라밀의 삶을 잘 이어갈 수 있습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6월30일 부산 미타선원 행복선수행학교에서 열린 인경 스님 초청 법회의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인경 스님

조계산 송광사로 출가해 송광사 전통강원을 졸업하고 중강을 역임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몽산덕이(蒙山德異) 선사상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상치료 수퍼바이저이며,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한국명상치료학회 회장, 명상상담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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