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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라다크를 깨우는 틱세곰파의 새벽예불

기자명 법보신문

독경 소리로 귀를 씻고 하루를 연다

 

▲틱세곰파는 라다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곰파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붉은색과 황금색, 그리고 흰색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틱세곰파는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과도 흡사해 ‘작은 포탈라’로 불리기도 한다.

 

 

어스름하게 여명이 밝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방이 환해진다. 고작 5시30분인데 하늘은 이미 대낮 같다. 해발 3500미터의 희박한 공기는 이른 아침의 여린 햇살도 품지 못한 채 아낌없이 허공으로 흩뿌린다. 날카로운 햇살이 청명한 하늘에 거침없다. 며칠 만에 만나는 선명한 아침이다. 레에서 남쪽으로 19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름다운 겔룩파의 곰파 틱세, 그곳에서 열리는 아침예불에 동참하기 위해 새벽부터 길을 서두른다. 날씨도 맑고 기분도 설렌다.


어제는 잔뜩 찌푸려있는 카르둥라, 해발 5602m를 다시 넘어 레로 돌아왔다. 한 번 넘어본 경험 덕분인지 처음 카르둥라를 넘을 때만큼 고산증으로 고생하진 않았다. 하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카르둥라는 짙은 구름으로 겹겹이 머리를 둘러싼 채 해발 5602m의 하늘을 보여주지 않았다. 떼를 써서 될 일이라면 맑은 하늘을 보여 달라며 떼라도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하늘의 땅. 인간의 욕심이 통할 리 없다. 대신 우리의 가이드는 카르둥라 정상에 타르초를 내걸었다. 타르초를 걸며 그는 큰 소리로 세 번 외쳤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가 깃들길.” 그의 발원이 타르초에 실려 카르둥라의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눈이 부실만큼 선명한 하늘을 보자 어제의 아쉬움이 다시 떠오른다. 이 하늘 한 허리를 베어들고 다시 카르둥라를 올라 그 위에 얹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운 아침이다.


틱세곰파는 라다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곰파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푸른 하늘에 기대어있는 틱세곰파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라다크를 소개하는 각종 안내책자나 사진작가들의 단골 모델이 되곤 한다. 서울에서 라다크 여행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 미처 주저할 사이도 없이 단박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사진 가운데 하나도 바로 틱세곰파였다. 그 곰파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간밤엔 잠도 설쳤을 정도다. 곰파에서의 아침예불 동참도 며칠을 벼르고 별러 마침내 잡은 일정이다. 특히 틱세곰파의 아침예불은 장엄하기로 유명해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데 빼곡한 일정 탓에 애를 태우고 있는 참이었다. 이래저래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그림엽서같이 예쁜 ‘작은 포탈라’


차는 제법 속도를 내서 달리고, 마음은 벌써 틱세곰파를 오르고 있는데 곰파는 보일 기미가 없다. 대부분의 곰파는 산꼭대기나 산허리에 걸려있어 쉽게 눈에 띄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 곰파가 있을만한 산이 보이지 않는다. 목을 길게 내빼고 곰파를 찾느라 연신 두리번거린다.


그러기를 한참, 작은 마을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불쑥 솟아오른 언덕 위로 곰파가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 위에 지어진 곰파인지, 아니면 곰파 주변으로 다닥다닥 모여든 작은 집들이 봉우리를 이룬 것인지 얼핏 보아선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 봉우리 전체가 바로 틱세곰파다. 붉은 색과 황금색 건물의 사원 아래를 온통 하얀색의 집들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그 뒤로는 티끌 하나 없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어 마치 한 장의 사진을 보는 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곰파 주변으로는 수많은 초르덴이 도열하듯 줄지어 있다. 사원을 호위하는 법의 무사들이다.

 

 

▲아침예불이 한창인 틱세곰파 법당.

 


틱세곰파는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과 비슷해 ‘작은 포탈라’로 불리기도 한다. 포탈라궁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곰파 윗부분의 붉은 건물과 그 아래의 하얀색 건물들이 사진으로 보았던 포탈라궁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곰파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5세기다. 한때 군사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다는데, 수백 년에 걸쳐 법당과 요사들이 증축되면서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됐다.


곰파가 시야에 들어오자 마음이 더욱 급해져 기사를 재촉한다. 서두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괜한 채근이다. 마침내 도착한 틱세곰파 입구에는 길상문이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 법라, 일산, 산개, 금어, 보병, 연화, 매듭, 법륜 문양으로 티베트불교에서 행운을 불러온다는 여덟 개의 상징이다. 곰파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는 길상문 위에서 아직 잠이 덜 깬 검둥개 한마리가 벌러덩 누워 늦잠에 빠져있다. 한가한 아침 표정이 재미있어 연신 카메라셔터를 누르는데 곰파 위에서 ‘두웅~’하며 나지막한 소라고동 소리가 들린다. 아침예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곰파 꼭대기에서 두 스님이 겔룩파의 상징인 노란색 모자를 쓰고 ‘퉁’이라 불리는 소라고동나팔을 불고 있다. 아침 예불을 알리는 고동소리는 마을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진다. 이 신호를 시작으로 법당에서는 스님들의 예불이 시작된다.


어둑한 법당 안에는 20여 명의 스님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독경으로 아침예불을 올리고 있다. 티베트어 경전을 읽는 것이어서 라다크어에 능숙한 가이드도 어떤 경전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독경을 하는 중간 중간 북이나 종을 치기도 하고 나팔이나 바라 같이 생긴 전통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열 살 남짓해 보이는 동자스님들이 예불 중간에 스님들에게 차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공양하는 점이다. 동자스님들은 자신의 키 절반만한 커다란 주전자에 버터와 우유를 넣어 끓인 차를 가득 담아 들고는 스님들 사이를 오가며 찻잔에 차를 따라 드린다. 스님들은 그 차와 보리빵 몇 조각으로 아침 공양을 대신하며 한 시간이 넘도록 독경을 계속한다.


장난꾸러기 동자도 독경은 우렁차게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스님들 사이를 오가던 동자스님들도 차공양이 끝나고 나면 말석에 앉아 독경에 동참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딴 짓을 한다. 옆에 앉은 또래 도반의 가사자락을 괜히 잡아당기기도 하고 애꿎은 머리를 자꾸 긁어대기도 한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그래도 노스님들은 묵묵히 바라만 본다. 그러면 동자스님들은 금방 장난을 멈추고 다시 예불에 집중한다. 예불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는 조금 전의 장난을 참회하려는 듯 이따금씩 아주 큰 목소리로 경전을 읽곤 한다. 그럴 때면 제법 의젓해 보인다.

 

 

▲ 법당 밖에서 예불 중인 라다키 여인.

 


틱세곰파에는 12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다. 큰법당인 듀캉 외에도 곰파 안의 여러 법당에서 스님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아침예불을 한다. 곳곳의 법당에서 울리는 낮고 굵은 독경 소리가 이른 아침 곰파를 가득 채운다.
스님들이 아침예불을 하는 동안 곰파에는 참배객들이 속속 찾아온다. 아침예불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도착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법당 안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라다키들은 법당 밖에서 오체투지로 부처님을 예경한다. 간혹 어떤 이들은 안면이 있는 스님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대부분 법당 주변에 편한 자세로 앉아 독경을 듣는 것으로 예불을 대신한다.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예불이 끝난 후 스님들이 법당에서 나와 각자의 방으로 발길을 옮기자 법당 밖에 있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라다크에 도착한 이후 숨 돌릴 틈 없이 빼곡한 일정을 이유로 매일 아침을 전쟁처럼 시작했는데 아침예불을 마치고 나니 오랜 만에 실컷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한 뒷맛이 돈다. 스님들의 독경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 라다키들의 하루하루에는 법향 그윽한 평화가 깃들지 않을까. 왠지 오늘 하루는 즐거운 일만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아이들 불연 맺어주려 고향 찾았죠”


아들 첫돌 맞아 틱세곰파 참배한 세린 가족

 

 

▲세린 가족

 


아침예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법당을 참배하는 가족이 있다. 두 아이와 함께 법당에 들어선 부부는 부처님을 향해 한동안 오체투지로 절을 올린다. 절을 마친 아이 엄마는 이제 갓 돌이 됐음직한 어린 아기를 안아 올려 부처님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고는 무엇인가 간절한 기원을 한참동안 읊조린다.

 

“작은 아이가 첫 생일을 맞이했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신 부처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가족 모두가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기원했어요.”
아이 엄마 세린과 그의 남편 체링의 고향은 이곳 라다크다. 하지만 지금은 인도 남부 카르나타가주에 있는 도시 마이소르에 살고 있다. 결혼 후 생업을 위해 라다크를 떠난 후 세린은 첫 딸과 둘째 아들이 태어나도록 고향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태어난 아들의 첫돌을 맞아 고향을, 고향의 부처님을 찾아왔다.


“아이에게 이곳 틱세곰파의 부처님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비록 고향을 떠나 있기는 하지만 틱세곰파의 부처님은 언제나 마음의 의지처니까요. 아이들도 우리 부부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심 깊은 불자가 될 것이라 믿어요.”


요즘엔 많은 라다키들이 라다크를 벗어나 외지로 나가 산다. 인도에서도 최북단, 오지에 속하는 라다크엔 대학 같은 고등교육시설뿐 아니라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비록 멀고 힘들기는 하지만 틱세곰파의 부처님을 참배했으니 돌아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습니다. 돌아가서 더욱 열심히 생활할 수 있는 힘을 얻어가는 기분입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아이 엄마는 신이 난 표정이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품에 안겨있던 어린 아들의 얼굴에도 햇살 같은 미소가 번진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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