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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정방산 성불사 〈상〉

기자명 이학종

풍경소리 들을 수 없으나 아미타불 미소는 여전

웅장한 정방산이 옛 대찰의 영화를 말하고

5백나한 응진전엔 고려불교의 향훈이 가득

북녘의 사찰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찰이라고 하면 황해북도 봉산의 성불사(成佛寺)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노산 이은상의 시조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가곡 ‘성불사’를 모르는 이 없거니와 여전히 이 노래가 우리에게 친밀한 노래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종교의 같고 다름을 떠나 성불사는 우리에게 꿈엔들 가보고 싶은 고향 같은 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리라.


<사진설명> 성불사 본전인 극락전 전경.
정방산을 배경으로 한 풍광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꿈엔들 그리던 성불사行

성불사로 달려가는 마음은 그래서 더 들떠 있는지 모른다. 들뜬 마음을 달래려 정방산(正方山)으로 달려가는 차안에서 콧노래로 가곡 성불사를 읊조려 본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정방산이 사리원의 지근거리에 있다고 하니 얼마 달려가지 않아 우리 일행을 실은 승합차는 성불사의 초입에 닿게 될 것이다. 잠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인터체인지를 통해 빠져나오자마자 농촌가옥 몇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동리가 나타난다. 그 곳을 지나 5분쯤 달려가면 거대한 산성(山城)이 등장하는데, 산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당도한 곳은 정방산성의 남문이다. 남문의 입구에는 둥근 무지개 모양의 문이 나 있는데, 문 안으로 들어서니 정방산의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웅장함이 보는 이를 능히 제압하고도 남는다. 산의 규모는 구월산에 미치지 못하나 힘차게 솟아오른 기운만은 구월산에 뒤질 게 없다.

굽이굽이 난 산길을 따라 우리 일행을 실은 승합차가 정방산을 오른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정방산은 가히 장관이다. 틈새마다 소나무를 달고 있는 바위는 힘찬 기운을 내뿜고, 산의 능선 또한 덤덤한 것이 남성적 기상을 발산하고 있다. 산성 안쪽은 유원지로 깔끔하게 단장돼 있어 이곳이 북에서도 유명한 관광 명승지임을 알게 한다.


<사진설명> 극락전에서 바라본 성불사.
왼쪽의 전각은 응진전과 명부전이다.
5중탑뒤 청풍루의 뒤편에 정방산이 보인다.



정방산 품에 고즈넉히 안겨

10여분쯤 더 올랐을까. 드디어 저만치에 성불사가 자태를 드러낸다. 고즈넉한 모습의 작은 절인데, 일제강점기에는 33본산 중의 하나였을 정도로 대찰이었다고 한다. 명부전 옆에 서 있는 ‘성불사 기적비’에 따르면 성불사는 한 때 20여 채가 넘는 건물(전각)과 10여개의 암자, 15개의 돌탑이 있었으며 무려 1000여명의 스님들이 있었다.

현재 성불사에는 5층 석탑을 중심으로 극락전, 응진전, 명부전, 운하당, 청풍루, 산신각 등 여섯 채의 집이 남아 있다. 가람의 배치는 여느사찰과 마찬가지로 본전인 극락전 앞마당에 탑이 서 있고 그 좌우측에 응전전, 명부전과 운하당이, 본전의 정면에 누각 청풍루가 서 있다.

탑의 좌우측으로는 괘불을 세웠던 당간지주가 반쯤 파괴된 모양으로 서 있다.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성불사로 달려 들어간다. 일주문은 따로 만들지 않고 누각의 입구에 대문을 만들어 붙였는데, 거기에 신장상을 그려 넣었다. 전체적으로 도상의 구도나 색감이 조잡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범작이다.

벌써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있다. 햇빛으로 절을 구경할 시간은 채 1시간 정도도 남지 않았으니 발걸음이 바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잰 걸음으로 누각 밑 계단을 올라 마당에 올라서니 전형적인 고려석탑인 오중탑(五重塔)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전각으로 둘러싸인 절 앞마당은 포근한 느낌을 준다.

성불사의 가장 으뜸가는 보물은 아무래도 오백나한을 모신 응진전(應眞殿)이다. 응진전이 있어 성불사는 무량수전이 있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와 황해북도 연탄군의 심원사 보광전, 평안북도 박천의 심원사 보광전과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절로 손꼽힌다.


응진전은 국내 最古목조건물

풍루 구석편에는 관리인으로 보이는 40대 안팎의 남자 세 사람이 서서 우리 일행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상진 서기장에게 물으니 아직 성불사에는 주석하는 스님이 없단다.

이은상의 시조에 나온 것처럼 성불사의 풍경소리를 들어보려 했지만, 바람이 제법 불어오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이상타 싶어 추녀 끝을 살폈는데, 저런! 처마 끝 어디에도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노산이 이곳을 들렸을 일제강점기(1932년경)에는 그토록 심금을 울렸을 성불사 풍경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혹여 다시 이곳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풍경을 몇 개쯤 가져다 달아야겠다는 마음 간절하다.

주승도, 풍경소리도 사라진 성불사. 그저 유적으로 남아 쓸쓸한 성불사는 오늘의 북한 불교 현실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극락전 법당 안에 부처님이 계시고, 응진전에 5백 나한이 건재해 있으니 예서 무슨 욕심을 더 낼 것인가. 더구나 극락전 등 많은 전각들이 6·25 한국전쟁 당시 전소된 것을 뒤늦게 복원했다고 하니 불자로서 고맙고 감사할 밖에.

성불사의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서둘러 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아미타 부처님은 남녘에서 온 불자들을 반기시는 듯, 인자한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다.

<사진설명>청풍루 출입문에 그려진 신장상.
무서운 표정속에 해학적 재미가 스며있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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