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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양

기자명 법보신문

음식 유혹 못 견뎌…설법 듣고 업장 소멸

맛있는 음식의 유혹은 견디기 힘들다. 배가 주릴 때는 물론이고 음식 냄새나 빛깔에 취하면 절로 배가 고파진다. 배가 부른데도 눈과 코를 사로잡은 음식에 마음을 뺏기면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찍이 부처님은 양을 비유로 들어 무명에 사로잡혀 쉽게 유혹에 빠진 경솔한 행동을 경계했다.


‘본생경’은 풀에 묻은 꿀의 달콤함을 탐내다가 산지기에게 덜미를 잡힌 양 얘기를 전한다. 이를 본 왕은 ‘조심성 많은 양이 적은 양의 꿀 때문에 잡혔다’고 생각하며 맛에 집착하는 욕심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잡보장경’에서는 성실한 여종 몰래 보리 한 말을 먹어치운 숫양 얘기가 나온다. 여종은 틈만 나면 양을 회초리로 때렸고 양도 지지 않았다. 그냥 들이 받곤 했다. 어느 날 양은 여종이 회초리를 들지 않은 모습을 보자 그대로 뿔로 들이받았다. 기겁한 여종은 엉겁결에 손에 잡힌 불을 양에게 던졌다. 몸에 불이 붙자 양은 미친 듯이 사방으로 날뛰었다. 결국 산과 들로 불길이 번졌다. 산 속에 살던 원숭이들은 무슨 죄인가. 500마리 원숭이까지 여종과 양 싸움에 등 터지는 게 아니라 아예 타죽고 말았다. 여러 하늘이 이런 게송을 내렸다고 한다. “성내 서로 싸우는 그 사이에는 머물지 말라.”


기후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양을 사육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불교에서 양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불교미술이나 민화에는 염소 모습으로 주로 등장한다. 헌데 한 곳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白羊寺) 이름 유래에 양 설화가 얽혀 있다.


조선 선조 때 일이었다.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하는데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 설법을 들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된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 꿈에 흰 양이 나타났다. 양은 고백했다.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 몸을 받았으나 설법을 듣고 업장을 소멸해 천상에 다시 환생해 가게 되었노라고. 이튿날 영천암 아래엔 흰 양 한 마리가 죽어있었고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조금 다른 얘기도 전해진다. 백양사가 옛 이름인 정토사로 불리던 시절 팔원(八元) 스님은 약사암에서 늘 ‘법화경’을 독경했다. 어느 날 흰 양 한 마리가 나타나 독경 소리에 취한 듯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독경이 끝나면 조용히 사라졌다. 다음날부터 독경을 듣는 양의 숫자가 하나 둘 늘어가더니 흰 양 100마리가 무리지어 나타났다. 그래서 백양사라는 이름을 붙였고 팔원 스님은 양을 불러들였다 해서 환양(喚羊)선사라고 불렸다.


양 설화가 서린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호남불교 요람이다. 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며 5대 총림 중 한 곳이다. 이 백양사의 옛 이름은 백암사(白巖寺)였다. ‘암석이 모두 흰색이라 백암산이라 하였다’는 기록에 근거한 이름이다. 고려시대엔 정토사라 불렸다. 조선시대 기록은 백암사와 정토사를 혼재해 표기했다. 지금의 이름은 환양선사 다음 주지인 소요대사의 비명(碑銘)에 백양사라는 명칭이 쓰였고 이 시기부터 ‘백양사’라 했다고 한다.


양 꿈은 출세, 성공, 횡재 따위 행운을 암시하기도 한다. 고려말엽 이성계 장군이 양을 잡으려다 양 뿔과 꼬리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놀라 깼다. 불길한 예감에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던 무학대사에게 꿈을 털어놨다. 대사는 ‘양(羊)’ 글자에서 뿔과 꼬리를 떼며 ‘왕(王)’자가 된다며 왕이 될 운명이라고 했다. 이성계는 군대를 이끌고 거사를 일으켜 조선을 건국했다. 건국 야사에 양이라니. 상서롭다는 뜻을 양(羊)자가 가질 만하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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