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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원숭이 [하]

기자명 법보신문

‘왕의 동물’이던 원숭이…지계의 상징

 

▲강화 전등사 대웅전의 벌거벗은 여인상.

 

 

‘왕의 남자’란 영화는 10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정조와 광대 그리고 광대와 광대 사이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외줄타기 했던 ‘왕의 남자’는 개봉했던 그 해 그렇게 대박 났다.

 

‘왕의 동물’ 원숭이는 왕에게 백성을 섬기라는 충고를 톡톡히 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명백히 기록된 얘기다.

 

성조 8년(1477) 11월4일,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을 편찬한 문신 손비장이 왕에게 아뢨다. “어제 사복시에서 흙집을 지어 원숭이를 기르자고 청하고, 또 옷을 줘 입히자고 청했는데, 신의 생각으로는 원숭이는 곧 상서롭지 못한 짐승이니 사람 옷을 입힐 수는 없습니다.” 일본에서 보내온 선물을 애지중지하던 성조가 원숭이에게 옷을 해 입히고 집을 마련하라 이르자 손비장이 나선 것이다. 손비장이 탐탁지 않았을 터. 그러나 손비장은 말을 끊지 않았다. “한 벌 옷이라면 한 사람 백성이 추위에 얼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신은 진실로 전하께서 동물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성조는 손비장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기록대로 유추하자면 손비장 공이다. 그러나 왕은 조선 백성들 시름을 한 번 더 깊이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계를 지키지 않는 수행자를 경책하는 일도 원숭이 몫(?)이다.

 

‘백유경’에 실린 콩 얘기는 지계의 중요성을 설하고 있다. 옛날 원숭이 한 마리가 콩 한 줌을 가지고 있다 한 알을 땅에 떨어뜨렸다. 원숭이는 손에 쥐었던 콩을 다 버리고 땅에 떨어진 한 알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고, 나머지 콩은 닭과 오리가 모두 먹어 치워버렸다. ‘백유경’은 이렇게 경계한다. 출가자도 원숭이와 같아 처음에는 한 가지 계율을 훼손해도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방일(放逸)은 더욱 늘어나 계를 모두 버리게 된다고.


원숭이는 절절한 신심도 갖췄다.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모습을 본 뒷산 500마리 원숭이들은 연못 속 달을 공양키로 했다. 나무 위로 올라간 원숭이는 서로 팔을 이어 달을 건지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달은 일그러지고 사라졌다. 다시 건지고 건졌지만 달은 일그러지고 사라졌다. 그러다 힘을 다한 원숭이는 모두 연못에 빠져 죽었다. 그러나 갸륵한 마음 덕분에 뒷날 500 아라한이 됐다.


인욕도 만만치 않다. 부처님 전생 설화 가운데 ‘육도집경’ 원숭이 왕 이야기를 되새김질해보자. 원숭이는 깊은 구덩이에 빠져 며칠을 굶은 사냥꾼을 등에 업고 땅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사냥꾼은 원숭이 뒤통수를 돌로 내리친 뒤 주린 배를 채웠다. 그럼에도 원숭이는 악한 마음을 품은 사냥꾼을 도리어 불쌍히 여기며 ‘지금 내 힘으로 제도할 수 없는 사람은 미래세에 부처가 되어서라도 반드시 제도하리라’고 서원했다. 사냥꾼의 배신에도 기필코 그를 제도하겠다는 원숭이의 서원은 인욕에 다름 아니다.


여럿 사찰에서는 문이나 대웅전에 눈과 귀와 입을 가린 원숭이 조각이 있다. 나쁜 것은 보지 말고, 음란한 소리는 듣지 말고, 오만한 말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밖에도 사찰 구석구석 원숭이는 숨어있다. 법주사 팔상전 추녀 밑에는 원숭이 상이 있고 대웅전 계단 양쪽에도 화강암으로 된 나한상이 있다. 강화 전등사 나녀상(裸女像)이 법주사 팔상전 원숭이와 비슷하다. 여기엔 두 가지 얘기가 전해진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사에 지친 일꾼들에게 원숭이 4마리가 술을 가져다 줬고, 이 술을 자양강장제 삼은 일꾼들은 공사를 무사히 회향했다고 한다. 이를 감사히 여긴 아도대사가 원숭이 공덕을 기리기 위해 법당 네 귀퉁이에 원숭이 형상을 조각하게 했다고.

 

불같은 사랑과 배신이 얽혀 있기도 하다. 전소된 전등사 대웅전을 복원을 맡은 목수는 아랫마을 주모와 통하였다. 노임까지 그녀에게 맡겼으나 돈에 눈 먼 주모는 불사가 끝날 무렵 줄행랑을 놨다. 상심한 목수는 대웅전 바깥 처마 들보 사이에 벌거벗은 여인을 조각해 평생 업보의 무게에 짓눌리게 했단다.


본의 아니게 벌거벗겨진 원숭이(?)는 천년 넘는 세월동안 염불소리를 듣고 목탁소리를 들었으니, 부처로 나투지 않았을까.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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