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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불선원 선원장 설우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끊임없는 보살행 실천이 반야지혜의 본질입니다

부처님 설한 존재성이 연기법
연기성을 알면 집착끊고 무심
이것이 곧 범소유상 개시허망

 

 

▲설우 스님

 

 

부처님께서 남긴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어떤 가르침이 우리 현실에 도움을 줄까요.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도의 실천을 수행덕목으로 삼아서 참된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상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경)’입니다.


‘금강경’은 선가(禪家)에서는 선경(禪經)이라 합니다. 그만큼 선적인 의미가 잘 담겨 있는 경전입니다. 조계종에서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금강(金剛)은 다이아몬드를 말합니다. 금강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첫째는 ‘불변(不變)’입니다. 천년을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지구상의 어떤 물건도 다 끊어버릴 수 있는 날카로움을 말합니다. 일체의 잡스럽고 불필요한 문제들을 한 순간에 벼락 치듯 끊을 수 있는 특성 때문에 금강은 날카롭고 번득이는 지혜를 나타냅니다.


금강은 또 항상 빛이 나기 때문에 거울과도 같습니다. 거울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비춥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편애하고 집착하거나 누구를 우선순위로 두는 중생심이 거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은 부처님의 반야바라밀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 사구게(四句偈)는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라. 풀이하면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이 형상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면 곧 여래를 보게 되리라.” 이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입니다. 참으로 빈 것은 이 허공과 같다는 것입니다. 허공은 비어있지만 천상만상 모든 생명을 다 살려냅니다.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다 텅 빈 참 진공의 위력이자 생명력입니다.


진공묘유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과 상통합니다. 색이 그대로 공이고, 공이 그대로 색, 무슨 말일까요? 바로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 중심에 있는 연기(緣起) 사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기는 무엇입니까. 관계성입니다. 불교는 존재론을 이야기합니다. 생명이 어떻게 존재해 가고 있느냐에 대해서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존재성이 연기법입니다. 어떤 생명이던지 그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간의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연생연멸(緣生緣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성취한다고 했을 때 먼저 마음의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연기법을 잘 알게 된다면 마음의 본질을 알게 됩니다.


사구게에는 생명력이 들어있습니다. 컵은 인연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인연이 다하면 공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색과 공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색이 곧 공이고 공이 다시 색인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에게 편리성을 주고 행복을 줍니다. 그러나 집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물질은 컵과 같이 또한 연이 다하면 언제든지 공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연기성을 알게 되면 집착이 끊어지고 무심하게 됩니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말한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라는 뜻입니다. 형상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소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허망한 것입니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는 말을 사구게에서 더 절실하게 드러낸 것이 ‘금강경’ 마지막 32품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입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이라. 풀이하면 일체 중생이 가지고 있는 집착과 욕심으로 일어나는 고뇌와 번뇌, 또는 그림자, 꿈, 이슬, 아지랑이, 거품, 번개. 이러한 것들은 인연에 의해서 잠깐 스쳐지나가는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약견제상(若見諸相)은 무엇이냐. 일체의 모든 상을 제상이라 합니다. 꽃도 책상도 모두 제상에 들어갑니다. 우리도 모두 제상입니다. 이 제상이 비상(非相)인줄 알면 즉 형상이 항상 불변의 형상이 아닌 줄 알게 되면 여래를 보게 됩니다. 즉견여래(卽見如來)입니다. 형상이 형상 아닌 줄을 안다는 것은 없어진 다음에 아는 것이 아니고 형상과 동시에 그 형상의 본질을 관통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도 깨침은 허망한 생각
진리알고 생활에서 실천하여
복덕 구족할 때 깨달음도 가능


만약 있는 그대로 본질 속을 보게 되면 반야바라밀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반야지혜가 그대로 여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구게를 꿰뚫게 되면, 혹은 꿰뚫기 위해서는 보살행을 해야 합니다.


대승불교에서 부처님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가 보살행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전에 무수한 보살행을 하신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자타카’ 즉 전생담이란 경전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사물의 본질을 알았고 그 본질은 다시 인연을 만나서 무한한 생명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을 창출해 내기 위해 보살행을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보살행입니다. 보살행은 보살의 행인데 보살은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바로 보살입니다.


‘금강경’ 첫 구절을 보면 부처님께서 한 때에 공양하실 시간이 되자 25조 가사를 두르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성의 저잣거리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일곱 집에서 탁발을 얻어가지고 다시 기원정사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시고 발우를 씻고 또 발을 씻으시고 그리고는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이 구절이 사실은 대단한 내용입니다. ‘금강경’에서 반야지혜의 핵심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첫 구절은 중요할 것도 없는 시시콜콜한 내용으로 시작됐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부처님은 이런 모습 때문에 더욱 위대하고 뛰어난 스승입니다. 여러분들이 자녀 교육을 시킨다고 할 때 아이들에게 주문하는 것이 많습니다. 누워서 보지 마라. 가까이서 보지 마라. 계획적으로 공부해라. 그런데 여러분은 스스로 자녀들에게 했던 이런 말들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습니까. 만약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자식들에게만 강요를 하면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잔소리가 될 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절대 말로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성인의 말을 끌어다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은 대중들과 함께 있으면서 행동으로 몸으로 가르치십니다. 부처님은 성인 중에 성인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저잣거리로 나가 탁발을 하고 스스로 씻고 평등하게 나눠드시고 법문을 합니다. 직접 삶으로 진리의 당체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반야지혜에 보살행이 따르지 않으면 결코 온전한 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학문적인 지식이나 철학적인 견해로 교법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보살행이 함께 해야 합니다. ‘금강경’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가 또한 실천입니다. 사구게를 수지독송(受持讀誦)한다고 하는 것은 그냥 내용을 읽어 암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수지라는 말은 보살행이 내 삶 속에, 생활 속에 스며들어 일상화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선행과 봉사로 공덕을 쌓아감으로써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인색함과 에고, 집착 등을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도를 깨친다는 것은 허망한 생각입니다. 그런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알고 생활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해, 복과 공덕을 함께 갖출 때 깨달음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덕과 지혜가 평등을 이루며 어느 지점에 도달했을 때 도를 깨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금강경’은 반야지혜를 열어서 보살행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경전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금강경의 가르침에 따라 어떤 사물이나 형상에도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보살행을 실천하다보면 깨달음은 곧 여러분의 몫이 될 것입니다.
 

정리=광주·전남지사 조영훈 지사장


이 법문은 10월11일 무등산 증심사에서 ‘무등에서 길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명사초청법회에서 설우 스님이 한 설법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설우 스님

1951년 태어났으며 1971년 상주 원적사에서 원명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수도암, 도성암 등지에서 정진하며 25안거를 성만했다. ‘조계종 간화선 수행지침서’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조계종 교육원 교육제도개선위원회 위원, 승가고시 위원, 기본선원 교선사를 맡고 있다. 현재 진불선원 선원장으로 후학 양성에 매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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