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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삶을 바꾸고 공감으로 세상을 바꿔라”

기자명 법보신문

[명법문 명강의] 젊은이들의 멘토 시골의사 박경철
사람은 모두 빛나는 구슬…나쁜 행위로 빛 잃어

 

 

 

저는 ‘시골의사’ 박경철이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여러분과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섭니다.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여러분들은 많은 고민과 생각을 갖고 있을 겁니다. 이 자리가 여러분의 고민과 생각에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요즘 청춘들은 참 힘든 시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청춘을 돌이켜보며 편안하게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살던 곳을 떠나 전학을 갔습니다. 아주 평범한 일반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대구의 부자동네로 전학을 가게 됐습니다. 거기서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제 도시락은 추억의 양은도시락이었고, 반찬이라고는 김치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전학을 가니 도시락가방이라는 걸 아이들이 들고 다니더군요. 파스텔 톤의 도시락에 소시지라는 음식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또 아이들의 실내화주머니에는 미키마우스가 그려있었습니다. 제가 느낀 문화적 충격은 참 대단했습니다. 그만큼 환경이 달랐던 것입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을 가니 모든 것이 위축됐습니다. 성격도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저에게 왜 이렇게 기가 죽어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전에 생활기록부를 보니 활발한 성격이라고 돼 있는데 왜 그러냐고. 그러면서 담임선생님이 저한테 책 한 권을 주셨습니다.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집 가운데 2권인 ‘그리스로마신화’였습니다. 당시 저는 그 책에 아주 깊이 빠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담임선생님에 제게 주셨던 한 권의 책이 이후 제가 독서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 지금은 제 주변사람들이 “넌 심각한 독서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심지어 “격리수용이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독서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내가 그리고 싶은 생각이 그려지고, 내가 만나고 싶었던 것을 만날 수 있고, 내가 꿈꾸고 싶었던 것을 꿈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지식을 넘어선 거대한 창의력이며 감동

 

그 후로 계속 열심히 책만 읽다보니 다른 것은 딱히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 보시기에도 제가 다른 재주가 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머리도 다른 사람에 비해 크고, 운동도 못하고, 노래도 못 부르고, 술도 못 마시고, 실상 잘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친구들은 저보고 경상도 말로 ‘빙신’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평범하게 자라 의사로 성장해 여러분들의 환영을 받으며 이렇게 강단에 설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전적으로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지식을 꼽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배우고 내가 습득하는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계속 공부하고 외우고 했던 것은 지식을 쌓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쌓아온 지식들, 배워온 많은 것들이 사실은 하드웨어에 기록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하드웨어에 담겨진 지식을 어떻게 끄집어 활용할 것인가 입니다. 하드웨어를 움직일 오퍼레이터가 없다면 그 지식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내가 쌓아온 지식을 활용하고, 끄집어내 삶에 반영하고, 내가 살아가는 삶속에서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지혜라는 것은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라는 무엇일까요. 지식은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을 수치화하고 배우고 익히는 것이지만 지혜라는 것은 내부에서 고민하는 것입니다. 내 삶 속에서 직접 체험하고 치열히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는데 있어 지식을 쌓는 데에는 집중하면서 지혜를 쌓는 일에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지식을 가진 분들은 참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머릿속에서는 열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합니다. 엄마가 도망갔나? 강도가 들었나? 119에 전화할까? 문을 부셔야 하나? 이러한 생각의 찌꺼기들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나 문이 열리면 그것으로 생각은 중단됩니다.

 

또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이 눈빛만 봐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라면 내 인생에 위로자는 될 수 있어도 동반자는 될 수 없습니다. 대화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만난 사람이 나와 사이가 좋지 않다면 입장이 달라집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럴까’, ‘이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나’ 등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노력 속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내 생각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방법 등을 터득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나의 지혜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혜를 키우는 방법으로 여행을 추천합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며, 위험에 부딪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잔상들이 개인의 삶속에 축적된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식은 이미 기존에 정해진 것들을 섭취하는 과정입니다. 지혜는 넓은 세상, 넓은 세계, 내가 접하지 못했던 것들과 만나며 일어나는 나의 반응들을 끊임없이 섭취해 가는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과 조우할 때 그것에 호의를 가지면 그것은 곧 내 것이 됩니다. 따라서 지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혜를 키우기 위해 평생 전 세계를 여행 다닐 수 없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만 쫒아 다릴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이러한 세계와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책입니다.

 

일반적으로 독서는 책을 읽고 그 안의 감정을 이입하고, 배우고, 익히는 지식의 측면만을 생각합니다. 사실 독서는 책 너머의 책을 읽는 것입니다. 독서를 할 때 그 안에 적혀있는 지식들을 줄을 그어 익히는 것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지식에 매몰돼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문학서든, 역사서든, 사회과학서든 언젠가 써먹기 위해 빨간 줄을 치는 것은 지식만을 늘려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지혜는 저자의 말과 그것에 대한 자신의 반응입니다. 책은 문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합니다. 저자는 저자의 메시지를 담지만 독자는 자신의 경험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때문에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와 독자가 받는 메시지는 각각 다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권의 책에서 똑같은 내용을 읽었다면 여러분은 지식을 쌓은 것이지만 그 책을 보고 각각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지혜를 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동정은 삶을 바꾸지 못하지만 공감은 변화시켜

 

예전에 ‘아름다운동행’이라는 메디컬 에세이를 쓴 적이 있습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삶과 죽음의 현장과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 등을 담았습니다. 이 책을 다른 의사가 읽었다면 제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장기입원 환자가 봤다면 병상에서 느꼈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반면 자원봉사자가 봤다면 이 사람들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를 생각할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의 책이지만 자신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식과 지혜는 전혀 다른 것이며 지혜를 성장시키는 데는 책만 한 것이 없습니다. 공자님은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 했습니다. 배우되 사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사색하되 배우지 않으면 그 또한 쓸모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식만 쌓고 지혜를 갖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생각은 많은데 배우지 않으면 그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혜는 스스로 도전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입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식을 쌓는 것만큼 지혜를 키우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반드시 지혜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첫 번째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공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수련의 시절, 레지던트 1년차 때 내과에서 수술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40대 초반의 여성분인데 위암이셨어요. 당시 CT가 선명하지 않아 전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보통 암은 전이 없으면 수술을 하고, 전이가 있으면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콘퍼런스에 상황을 보고하고 논의를 통해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배를 열어보니 보이지 않았던 암세포가 전체 장기에 퍼져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늦었기에 다시 봉합하고 환자를 병실로 옮겼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병실을 찾으니 환자분이 누워 계시는데 교복 입은 고등학생 남자애 하나, 여중생 하나가 같이 있더군요. 다가가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 알고 있다는 것이죠. 수술도 짧고 중환자실도 아닌 일반병실에 있으니 환자가 직감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수명은 보통 3개월 남짓입니다. 퇴원도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며 병실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회진을 도는데 환자식에 밥 하나가 추가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병실을 지키던 아이들이 환자의 식사에 밥을 추가해 먹은 것이었습니다. 짠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데려가 컵라면을 함께 먹었습니다. 특별히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보통 수술을 마치면 식사시간을 놓쳐 컵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기 일쑤인데 그 자리에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먹은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를 물으니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곧 어머니도 돌아가시게 되면 아이들만 남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련의 시절에 경찰인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을 때의 기억이 났습니다. 당시 건강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기에 저는 아무런 준비를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겨진 가족보다 아버지가 더 답답할 것 같았습니다. 갑작스런 상황을 맞은 가족도 그렇지만 말 한 마디 못한 채 쓰러진 아버지 마음은 오죽 답답하겠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아무런 걱정하지 마시라, 이미 자식들도 성장했고 어머니도 잘 모실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들과 컵라면을 먹는데 그때의 감정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앞으로 둘만 남게 될 텐데 너희들 입장에선 대단히 당황스럽고 힘든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떠나는 어머니입장에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일 것이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얼마나 슬프겠냐. 어머니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특별한 선의가 아니라 그냥 밥을 먹으며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전해준 것뿐입니다.

 

어느 날 환자분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그런 경우 보통 의사들은 대기를 하고 심전도가 멈추면 사망선고하고 기록합니다.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잘 모르는 사이지만 환자분의 심장이 멈추면 아이들이 울고불고 할 것이고, 간호사들은 아이들을 말릴 것이고, 영한실로 옮겨가는 모습들이 그려졌습니다. 곧 환자의 숨이 머졌습니다. 그런데 예상외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남자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를 꼭 껴안고 조용한 목소리로 “엄마 사랑해요. 걱정하지 마세요”하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찡하고 제가 그때까지 병원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습니다. 다시 병실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그 자리는 정리되고 잠시 후 다른 환자가 그 자리에 눕습니다. 조금 전까지의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새로운 환자를 봐야 합니다. 한참을 지나 안동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데 신부님 한분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외모는 시원찮아보여도 지역에서 나름 용한 의사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나 스님들이 많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때 신부님이 들어오는데 순간 후광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빛이 있습니다. 이러한 빛깔은 태도, 습관, 생각, 언행에 의해 빛의 색과 밝기가 결정됩니다. 좋은 태도, 좋은 습관, 좋은 생각, 좋은 언행을 가진 사람들은 밝은 빛, 후광이 비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두운 빛을 냅니다. 왜곡되거나 만들어질 수 없는 이 빛깔은 그 사람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미래가 떨리는 기다림이 되도록 최선 다해야

 

이 빛은 각각의 사람이 가진 구슬에 의해 결정됩니다. 본래 이 구슬은 밝고 찬란한 것이지만 그 위에 나쁜 습관, 나쁜 태도, 나쁜 생각, 나쁜 언행으로 더럽혀져 본래의 빛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단점을 지워 때를 벗겨내고 장점을 성장시킨다면 자신의 밝고 찬란한 구슬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나쁜 습관, 나쁜 태도, 나쁜 생각, 나쁜 언행이 사라진 사람에게는 후광이 비치게 됩니다.

 

당시 신부님이 빙긋이 웃으며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을 10여 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여성분 아들이라고 소개하는데 기억이 나더군요. 그리고 자신은 신학대학에 진학해 신부가 됐고, 동생은 사범대학에 진학해 교사가 됐다고 소개했습니다. 몇 년 전 신문에 칼럼을 보고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고, 우연히 지나다 인사차 들렸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어머니 마음에서 생각하라’는 말이 지난 10여 년 동안 자신이 흔들릴 때마다 잡아줬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서 힘을 얻었고 주저앉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저도 철부지라 진지한 조언을 할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 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일치되면서 내가 내 경험을 말해줬고, 그 아이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반대로 별 뜻 없이 한 말이 평생토록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항상 내가 아닌 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공감입니다.

 

공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봅시다. 육교에 걸인이 깡통 하나를 놓고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누군가 동전 하나를 던져줬습니다. 그것은 공감이 아닌 동정입니다. 동정은 상대를 낮춰보는 마음입니다. 내가 당신보다 더 높으니 자비를 베푼다는 우월성이 바탕이 된 것이죠.

 

그런데 공감은 같은 500원이라도 던지지 않고 무릎을 굽혀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던져진 500원은 감정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지만 무릎을 꿇고 따뜻한 위로의 말과 함께 건 낸 500원은 분명 의미를 갖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더욱 따뜻한 위로의 말과 함께 1000원을 건네고, 또 다른 사람이 ‘국밥 한 그릇 살 용의가 있다 함께 일어나자’고 하면 분명 걸인은 일어설 것입니다. 그런데 100명이 500원짜리를 던졌다면 걸인에게 그 돈은 그냥 운수좋은 날에 불과할 뿐,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동정은 세상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감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공감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의 마음으로 그를 보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세상을 이끌어갈 한 사람이 아닌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을 더욱 요구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지식도 중요하지만 지혜를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식을 넘어 지혜를 확장하려는 노력이 미래의 인재로 성장하는 방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식은 등수를 매길 수 있지만 지혜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지혜는 거대한 창의력으로 확장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내면의 구술을 밝게 빛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늘려가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더라도 포기하거나 체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청춘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장점인 것입니다. 매일매일 매시간이 두근두근 떨리는 기다림이 되도록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셋째는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바로 공감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미래사회의 가장 중요한 인재가 될 것입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20년, 30년 후 제가 노인이 돼 살아가는 세상의 동량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축복합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이 강의는 11월22일 동국대 교양강좌 ‘Pride Dongguk 지성 콘서트’에서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청춘의 삶과 도전’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박경철 원장은

외과의사이자 칼럼니스트, 주식 투자 전문가, 방송인이다. 1990년대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사이트에 글을 올려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주식 투자 전문가이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동행’으로 인기를 얻은 작가이기도 하다.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으로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명예홍보대사, 한국소아당뇨인협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주간지와 일간지 등 약 20건의 고정 칼럼, 월 평균 30건 이상의 강연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안철수 씨와 함께 ‘청춘’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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