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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 위해 살생되는 생명체 고통 공감하다

기자명 법보신문
  • 생명
  • 입력 2011.11.2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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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를 넘어서’ / 고미송 지음 / 푸른사상

▲‘채식주의를 넘어서’

2008년 서울광장에서는 광우병 미국산 수입소 반대를 외치던 촛불들이 모였다. ‘우리는 살고 싶다’라는 피켓과 구호가 터져 나왔다. 고미송 동국대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 연구원은 당혹스러웠다. 값싸고 질 좋은 고기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작 소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0년간 채식 해오던 그는 불자로서 “내가 먹는 음식은 곧 나다. 그런데 그 음식이 동물 사체여야만 할까” 고민했다.


지난 겨울 구제역 파동으로 1000만 마리에 가까운 동물들이 죽거나 생매장 당했다. 이를 계기로 채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나 한동안 달아올랐던 채식 열기도 어느새 익숙한 고기 맛에 잊혀졌다. 그는 안타까웠다. 하지만 곧 현실로 인정한다. 육식동물이 날마다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듯, 인간세상 속 도살장에는 날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살생이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수소는 생후 6개월이면 마블링을 위해 거세당한다. 또 고단백 사료를 먹으며 하루 800g씩 몸집을 불린다. 자연 수명이 20년이지만 생후 30개월이 지나면 ‘고기’가 된다. 돼지 역시 새끼 때 수퇘지 특유의 노린내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식기가 잘려나간다. 새끼 돼지는 이빨이 뽑히고 꼬리도 잘린다. 스트레스로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지 말라는 조치다. 암퇘지는 약 4년간 6번 출산하고 ‘고기’로 도축된다.


그는 ‘환경과 생명’, ‘불교평론’, ‘문학 사학 철학’, ‘불교학보’ 등에 채식과 관련한 여러 생각들을 갈무리해 게재했다. 그리고 최근 이 글들을 다듬어 한 권의 책‘채식주의를 넘어서’로 엮었다.

 

 

▲국내 채식 및 동물보호단체들이 11월1일 오후 ‘세계 비건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육식의 폐해와 채식의 장점을 알렸다.

 


그는 동물을 살생하는 문화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을 성찰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고민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결론들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3가지 큰 주제로 나눈 책은 채식주의자 입장에서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자세의 안이함을 밝힌 단상들이 맨 처음 실렸다. 두 번째는 여성주의자 입장에서 채식의 필요성을 탐구하는 글이며, 마지막은 진리를 구하는 수행자 입장에서 살생 고통을 이해하고 넘어설 수 있는 고민들을 담았다.


그는 매춘제도가 도덕적으로 인정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여기는 이들조차 가축제도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동물은 영혼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특히 생존을 위해 여성의 희생을 강요한 사회는 여성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고기 먹는 사회는 고기 근원지에 대해 무감각하다. 사창가를 이용하거나 상품화된 여성의 성을 소비하는 남성은 상대 여성의 고통을 모른다. 고기 먹는 사람도 같다. 현실 속 무수한 상징들이 차단벽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햄 포장지에 괴로운 돼지 표정이나 닭 튀김 포장지에 죽어가는 닭 모습은 없다. 갈비집이나 정육점에서 도살당할 때 고통스러워하는 소나 돼지는 없다. 그는 사회적 합의라는 폭력으로 진실을 포장한 것이라 지적한다.


살생을 전제로 낙태와 육식과의 접점도 살폈다. 그는 살생 대상이 생명체가 분명하지만 같은 생명체로 동일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서 낙태와 육식을 비슷하다고 본다. 소나 돼지가 도살당할 때 느끼는 고통을 짐작할 수 있으나 실감하기 어렵고, 태아의 고통은 더욱 더 실감할 수 없는 게 일반적 정서다.


다소 학구적인 글이긴 하지만 감성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는 지난 10년간 채식을 하며 어려웠던 일들도 소상히 고백했다. 불살생이 오계 첫 번째 덕목임에도 불교의 이미지가 채식과 거리가 먼 점, 한 스님이 육식을 강요한 일, 고기 입맛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제재를 받았던 어린 시절 기억 등등.


그는 참회를 중요하게 여겼다. 현대사회 공장형 축산업은 불특정 소비자를 대상으로 고기를 생산한다. 증가하는 육식수요에 맞물려 더 많은 살생이 이뤄지므로 공업중생인 불자 역시 생산자이자 소비자라고 그는 말했다. 육식문화의 폭력성과 기만성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수준의 채식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 내면에도 그런 특성들이 있다는 점을 성찰하고 스스로 용서해야한다고 했다. 이를 토대로 모든 살생과 폭력을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며 철저하게 참회가 가능할 때 비로소 채식은 채식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고기를 먹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 먼저 자신의 몸을 자르는 고통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고통을 알게 돼 육식을 포기할 것이다.”(‘능가경’)
1만6000원.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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