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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조홍근씨 [상]

기자명 법보신문

법정 스님 ‘무소유’ 읽고 출가 동경하기도
학생운동하던 불교동아리 날카로움에 실망

▲ 47·휴암

비스킷을 먹고 그네를 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네를 밀어주셨다.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하얀 옷을 입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이제 떠나야할 때라고 말씀하셨다. 떠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죽는다고 하셨다. 웃으면서 가셨다. 죽음이 뭔지는 몰랐지만 여하튼 헤어지는 것이라 울며 매달렸다. 울다가 잠에서 깼다. 할아버지는 멀쩡히 잔디에 물을 뿌리고 계셨다. 6세 때 일이다.


죽음은 이렇게 강렬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동안 죽으면 어떻게 될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실까? 죽음 뒤에는 또 다른 죽음이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꿈이 있을까 등등의 고통스런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어느덧 그런 생각은 일상에 묻혀 무의식 저편으로 점차 밀려갔다.


출가를 하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보게 됐다. 어린 마음에 참 동경이 가는 삶이었다. 게다가 거의 말기에 온 독재정권이 최후의 발악을 하느라 사회 구석구석까지 공포분위기가 배어있어 사춘기 소년 감성에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분위기였다. 늘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법정 스님의 책은 먹구름 사이로 투광되는 한줄기 빛이었고 폭풍우 속의 등대와 같았다. 그러나 출가에 대한 생각은 갑자기 닥친 정권 붕괴와 함께 사라졌고 나 역시 여느 소년처럼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의 물결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법정 스님은 나에게 평생 등대였고 북극성이었고 끊임없이 오라고 부르시는 관제탑이셨다.


이과를 갔는데 수학을 못했다. 그러면 이공계 중에 수학이 가장 필요하지 않은 곳이 어딘가? 생물학, 건축학 그리고 의학이었다. 이과인데 수학을 못한 것과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은 피는커녕 고등어 내장만 봐도 비위가 틀리는 나를 의대로 보내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그 때 의대로 지원하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를 불문으로 이끈 결정적인 추동력이 됐다.


결국 신촌에 있는 의대에 왔다.  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회관 1층에 있는 서클룸을 찾아갔다. 불교학생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삶에 바빠 잊었다 가도 가끔 정신 차리면 가는 곳이 늘 불교였다. 뜻을 모르고 들어도 스님들의 법문과 글은 늘 내게 평화와 만족을 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숙생의 인연인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를 맞이하던 2, 3학년이나 되어 보이던 학생들은 여기는 학생 운동하는 곳이니 의대생은 받을 수 없다고 퉁명스럽게 냉대했다. 당시엔 모두가 학생운동을 한다고 할 정도로 선악 구도가 명백했던 때인데 평화와 자비의 상징인 불교를 공부하는 서클에서 날카로운 얼굴들로 앉아서 법을 찾아온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대학생활 동안 생물학, 물리학 그리고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 책을 두루 섭렵했다. 몇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는데 주관과 객관이 도대체 있는지 세상은 정말로 존재하는 지에 대한 과학적 질문과 대답이었다. 몸의 모든 원소는 표면적으로도 3개월이면 다 완전히 교체된다.


거의 있지도 않은 진동 덩어리 원자로 된 내 몸은 실제 몇만 분의 1초 단위로 맹렬히 변하면서 존재의 형태를 이어나간다. 그렇다면 무엇이 고정되지 않은 것을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 하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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