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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조홍근씨[하]

기자명 법보신문

일생의 선지식 백봉 김기추 거사 만나
새말귀로 견성성불하길 아침마다 서원

▲ 47·휴암

법정 스님이 입적하시기 얼마 전이었다. 스님 법문집을 읽었다. ‘일기일회’와 ‘하나는 모두를 모두는 하나를’을 읽으며 과거 의문과 공부를 되살렸다. 이렇게 부평초처럼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불안과 공포와 욕심과 짜증으로 점철된 삶이 괴로웠다. 그리고 얼마 후 스님이 입적하셨다. 생전에 못 뵌 것이 아쉬워 길상사를 찾았다. 조금도 주저함 없이 아침 참선수련에 참여했는데 결국 법정 스님은 나를 40년 동안 끊임없이 격려해주시고 마침내 인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깨달음이 숙명처럼 찾아왔다. 역시 생물학, 물리학 그리고 천문학이었다. 슈레징거의 고양이는 주·객관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드린다. 고양이가 들어있는 밀폐된 박스를 열기 전, 즉 우리가 보기 전에는 그 고양이는 죽어있지도 않고 살아있지도 않은 상태다. 관찰자의 관측행위가 개입하기 전에는 그 존재는 우주 어느 곳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데, 관측행위를 하는 순간 그 확률함수가 붕괴하면서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죽을 때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자기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달이 우리 집 정원에 있는 쥐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에 따라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입처에 따라 모든 것이 생긴다. 나는 여기서 사람이지만 다른 입처에서는 수미산일 수도 있다. 심지어 과학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세상은 어떤 것이 투영된 홀로그램이 아닐까하고. 나는 여기서 눈치 챘다. 그 보는 놈, 세상을 창조한 놈이 누구인가?


그러나 단지 머리로 이해한 것이기에 삶은 여전히 분노, 불안, 기쁨, 환희 등 감정 범벅이었다. 총을 맞고 죽었지만 마침내 그 총알이 헛 총알이며 죽는 그 몸도 헛것임을 깨달아 가짜 죽음에서 깨어난 네오처럼 되고 싶었다. 실참이 필요했다. 마침내 일생의 큰 선지식을 만났다. 어느 날 백봉 김기추 선생의 법문집을 접했다. 선생님의 금강경 강해를 읽으면서 백내장환자가 수술 후 시야가 확 트이는 듯한 경험을 했다.


모든 장애가 ‘나’있음에서부터 시작하며 모든 수행의 기본은 ‘나’없음을 뼈저리게 아는 일부터 시작한다. ‘내’가 있으니 ‘남’이 있고 ‘나’와 ‘남’이 있으니 갈등이 시작된다. ‘나’없는 삶은 곧 ‘남’없는 삶이니 하는 일이 다 걸림이 없다. 새말귀 화두는 바로 ‘내’가 없음을 바로 뚫고 들어가는 방편인데 직접적이고 경쾌하다. 간화선이 망심인 큰 의심으로 다른 망심들을 소멸시키는 것이라면 새말귀는 대신심으로 바로 들어가는데 어떻게 보면 쉽지만 의심 많은 사람에겐 어려울 수도 있다.


실참을 하면서 머리가 단순해지면서 감정도 많이 가라앉았다. 지혜가 개발되니 자비가 따라 오는데 환자들이 내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된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병원에 다녀오는데 환자가 걱정을 하지 않고 웃고 와서 까닭을 물으면 내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내 법명은 ‘휴암’이다. 쉴 ‘휴’, 암자 ‘암’이다. 지금은 그 뜻을 알 것 같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쉬어 가는 안식처가 되라는 의미다. 아침마다 서원한다. 휴암이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번뇌망상을 여의고 견성성불하기를, 휴암이 의업으로 중생의 몸과 마음을 구제하기를. 수많은 겁을 살고 죽으면서 이루지 못한 것을 금생에 이뤄 보고자 한다. 꿈 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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