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어유희 끊고 곧장 본체로 향하는 조사어록의 왕

기자명 법보신문

황벽 희운 스님 제자로 임제종 종조
‘할’고함 깨달음 방편 삼아 후학 길러

 

조계종 뿌리로 한국불교에 큰 영향
9세기 중국조사선 찬란한 시대열어

 

 

▲ 법보신문과 동산불교대학은 1월6일부터 격주 금요일 오후 7시 종광 스님의 ‘선사상 임제록’ 특강을 마련했다. 사진은 종광 스님의 강연.

 


일체의 언어유희(言語遊戱)를 끊고 몽둥이(棒)와 고함(喝)을 방편 삼아 곧장 본체로 들어가는 통쾌함은 임제선의 특징이다. 이런 임제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임제록은 조사선의 골수를 담은 금구성언이다. 어록 중에서도 군계일학(群鷄一鶴), 어록의 왕, 군록의 왕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본지와 동산불교대학이 공동으로 개설한 종광 스님의 ‘임제록’ 강의를 격주로 연재한다. 조계종의 뿌리이기도 한 임제 스님의 활달하고 걸림 없는 선의 세계에 몰록 들어가는 인연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임제의현(臨濟義玄·?∼867)스님은 태어나신 날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열반하신 해가 867년이니 9세기 중후반을 사신 스님인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사선(祖師禪)은 7~9세기 선불교를 말합니다. 이것을 조사선 불교, 혹은 조사선 시대라고 합니다. 임제 스님이 살았던 시기는 조사선이 찬란한 꽃을 피웠던 시대입니다.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인 조계종의 뿌리도 이 임제 스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임제 스님에 대한 존경과 경외는 우리 불교의식에 잘 남아있습니다. ‘황매산하(黃梅山下) 친전불조지심인(親傳佛祖之心印) 임제문중(臨濟門中) 영작인천지안목(永作人天之眼目).’ “황매산 아래에서 스스로 부처님과 조사들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고 임제 스님 문중에서 영원한 인천의 안목이 되어주소서.”


스님들이 입적하시고 나면 축원할 때 빼놓지 않는 내용입니다. 조계종이 임제 스님으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임제 스님은 인천의 안목을 가진 선지식으로 후학들이 존경했던 스님입니다.


여기서 황매산은 오조홍인(五祖弘忍) 스님이 사셨던 곳입니다. 홍인 스님은 육조혜능의 스승입니다. 중국불교는 홍인 스님의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정착을 시작합니다. 이 시대를 동산불교(東山佛敎)시대라고도 하는데, 선을 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이뤄 수선(修禪)을 업으로 하는 교단이 탄생한 것입니다.


중국에 선이 전래된 것은 인도의 달마 스님으로부터입니다. 그래서 선의 역사를 말할 때 초조달마(初祖達磨)로 시작해서 이조혜가(二祖慧可), 삼조승찬(三祖僧燦), 사조도신(四祖道信), 오조홍인(五祖弘忍), 육조혜능(六祖慧能) 이렇게 부릅니다. 이것을조통설(祖通說)이라고 합니다. 조사의 법통 혹은 계보라는 뜻입니다.


특히 육조 혜능에 와서 뛰어난 제자들이 대거 배출되는데, 이때 비로소 중국선은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남악회양(南嶽懷讓), 청원행사(靑原行思), 영가현각(永嘉玄覺), 남양혜충(南陽慧忠), 하택신회(荷澤神會) 등 다섯분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도 남악회향, 청원행사 스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분들을 통해 그 유명한 중국선종의 오가칠종(五家七宗)이 탄생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남악회향 스님의 제자로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로 유명한 마조도일(馬祖道一)이 있습니다. 또 마조의 제자로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선종의 전통을 세운 백장회해(百丈懷海)가 있습니다. 백장 스님의 시대에 와서 비로소 총림이 만들어집니다. 그 백장 스님의 제자가 황벽희운(黃檗希運) 스님이고 이 황벽 스님의 제자가 바로 임제 스님입니다. 남악회향으로부터 비롯된 이들 스님들의 문하에서 위앙(仰)과 임제(臨濟)종이 생깁니다. 또 청원행사 스님을 뿌리로 해서 조동(曹洞), 운문(雲門), 법안(法眼)종이 나옵니다. 이를 합해서 오가(五家)라고 합니다. 그리고 임제종이 후대에 양기(楊岐)와 황룡(黃龍)파로 분기되면서 이를 합해서 칠종(七宗)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가칠종(五家七宗)입니다. 앞서 밝혔듯이 조계종은 임제종에 연원을 두고 있습니다. 임제종 중에서도 양기파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중국 선종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조계종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일단 기억해 두고 임제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제록은 서문(序文), 상당(上堂), 시중(示衆), 감변(勘辯), 행록(行錄), 그리고 탑기(塔記)로 구성돼 있습니다. 상당은 상당법어를 말합니다. 시중은 일상적으로 해 주신 법문, 감변은 올바른 것을 가린다는 말입니다. 행록은 임제 스님의 행장입니다. 그런데 가장 처음에 나오는 서문이 사실은 가장 늦게 쓰인 글입니다. 1120년의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임제 스님이 돌아가시고 대략 254년이 지나서 쓴 글입니다. 따라서 임제록을 공부할 때 서문을 먼저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임제록 전체를 압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임제록을 모두공부하고 나서 읽어야 효과가 크고 무엇보다 이해가 쉽습니다.


그렇다면 임제록을 공부할때 어디부터 봐야 할까요. 행록입니다. 행록은 앞서 밝힌 대로 임제 스님의 행장입니다. 살아온 삶에 대한 정리입니다. 따라서 행록을 먼저 읽으며, 임제 스님의 삶을 살펴본 연후에 본격적인 가르침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행록(行錄)


師初在黃檗會下하야 行業이 純一이어늘 首座乃歎曰, 雖是後生이나 與衆有異로다 遂問, 上座在此多少時오 師云, 三年이니다 首座云, 曾參問也無아 師云, 不曾參問이니 不知問箇什麻오 首座云, 汝何不去問堂頭和尙호되 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해석) 임제 스님께서 처음에 황벽 스님의 회상에 있었는데 행업이 순일하였다. 이때 수좌 소임을 보던 목주 스님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비록 후배이기는 하나 다른 대중과는 사뭇 다르구나”했다. 그리고 (어느날) 임제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은 여기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는고.” 이에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3년입니다” 목주 스님이 다시 물었다. “법에 대해 물은 적이 있는가” 그러자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아직 묻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목주 스님이 말했다. “그대는 방장 스님을 찾아뵙고 어떤 것이 불교의 확실한 대의입니까라고 왜 묻지 않는가.”


강의) 행업(行業)은 공부, 혹은 수행을 말합니다. 순일(純一)은 순수하고 한결같았다는 의미입니다. 임제록에 등장하는 수좌 스님은 목주(睦州) 스님입니다. 진존숙(陳尊宿)이라고도 불리는데 존숙(尊宿)은 총림의 어른을 높여 부르는 호칭입니다. 흔히 그냥 목주 스님이라고 하는데 ‘고승전’에 그분의 행적이 잘 나와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직 방장이라는 제도가 생기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임제록에서는 방장(方丈) 스님을 당두화상(堂頭和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선당(禪堂)의 최고 어른이라는 뜻입니다.


목주 스님을 여기서는 수좌(首座) 스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선원에서 방장 스님을 제외하고 가장 첫 번째 자리에 앉는 분이 수좌 스님입니다. 한문 그대로 ‘으뜸자리’에 앉는 분입니다. 그래서 수좌 스님은 당두화상을 보좌하는 역할을 합니다. 평소 공부하는 스님들을 지도하며 잘 살펴보았다가 눈 밝고 근기 뛰어난 스님들을 방장 스님에게 인도해 깨달음의 싹을 틔우는 일이 수좌 스님의 역할입니다. 목주 스님은 수좌 스님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제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 방장 스님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시불법적적대의(如何是佛法的的大意)를 풀이하면 “어떤 것이 불법의 가장 명확한 뜻입니까”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적적(的的)은 명확한, 분명한, 확실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적(的)은 과녁, 표적을 뜻합니다. 활을 쏠 때 표적을 분명하게 그려서 눈에 확 띄게 합니다. 바로 그렇게 눈에 확 띄게 명백하고 적확한 이라는 뜻입니다.


師便去問한대 聲未絶에 黃檗便打하다 師下來에 首座云, 問話作生고 師云, 某甲問聲未絶에 和尙便打하니 某甲不會니다 首座云, 但更去問하라하니 師又去問이라 黃檗이 又打하야 如是三度發問하고 三度被打하니라 師來白首座云, 幸蒙慈悲하야 令某甲問訊和尙하야 三度發問에 三度被打니이다 自恨障緣으로 不領深旨하니 今且辭去하노이다 首座云, 汝若去時에는 須辭和尙去하라 師禮拜退하니라


해석) 임제 스님이 바로 가서 물었다. 그러나 황벽 스님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뜸 후려쳤다. 임제 스님이 돌아오자 목주 스님이 물었다. “법을 여쭈러 간 일은 어떻게 됐는가”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드린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방장 스님께서 때리시니,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목주 스님이 다시 말했다. “다시 질문 해 보도록 하게.” 이에 임제 스님이 다시 가서 물었다. 그러나 방장 스님이 다시 때리니, 세 번을 묻고 세 번을 다시 맞았다. 임제 스님이 돌아와 목주 스님에게 말했다. “제가 다행히 자비하심을 입어 방장 스님께 불법의 대의를 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을 물었으나 세 번을 모두 맞았습니다. 스스로 한탄하건데 장애가 있는 인연으로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그만 떠나고자 합니다.” 그러자 목주 스님이 말했다. “만약 그대가 떠나려하거든 반드시 방장 스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가도록 하게.” 이에 임제 스님은 절을 하고 물러났다.


강의) 내용을 보면 임제 스님은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스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순박합니다.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 지도 모르지만, 선배 스님의 조언에 따라 방장 스님을 찾아뵙고 어렵게 법에 대해 참문(參問)합니다. 그러나 흠씬 두들겨 맞기만 합니다. 그것도 세 번을 찾아가 세 번을 맞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한번에 20대씩 맞은 것으로 나와 있으니 도합 60대는 맞은 셈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느닷없이 맞아놓고도 임제 스님은 방장 스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스스로 재주 없음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순박하고 순수하고, 그러면서도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스님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호랑이 같은 임제가풍의 첫 모습은 이렇게 고졸합니다. 이런 임제 스님의 순일함은 깨닫고 난 다음에 펼쳐질 호방한 기질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편의 그림 같은 선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계속>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