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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인간관과 세계관-12연기 ②

기자명 서광 스님

번뇌에 오염된 인식은 갈등 유발
분석과 자각 통해 고통 약화해야

지난 호에서는 12연기의 열두 고리 (①무명-②행-③식-④명색-⑤육입-⑥촉-⑦수-⑧애-⑨취-⑩유-⑪생-⑫노사) 가운데 번뇌가 극심한 ⑧갈애를 기준점으로 삼고 고통이 발생하고 순환하는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이번에는 망상이 극심한 ⑤육입을 중심으로 탐색해보고자 한다.


육입은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각각 감각/인식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을 만나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느낌이 발생한다. 그런데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마음이 각각의 대상과 부딪치는 과정이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 부여된 의미, 가치 또한 실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안이비설신의가 앞의 단계인 ④명색에 의해 오염되었다는 의미다.


그 결과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부딪쳐오는 대상과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이고 의도적으로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고 구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밀어내는 내적 에너지를 이미 내포하고 있다. 이를테면 갈증이 심한 상태에서는 우리의 눈이 물을 찾고, 귀는 물소리, 코는 물의 냄새, 혀는 물의 맛, 몸은 물과의 감촉, 마음은 물을 생각함으로서 안이비설신의 육입이 모두 물을 갈망하고 구하는 비상사태에 돌입해 있다는 것이다. 오직 물 이외는 다른 대상이 눈앞에 있어도 쉽게 보여지고 들려지고 냄새 맡아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신체구조와 마음은 일차적으로 생존을 위해 구조화되어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협하는 갈증이라는 조건이 발생하면 몸과 마음이 자동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에 집중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생존과 관계없는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것들을 갈망하고 추구함으로서 자신과 타자, 환경을 파괴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생존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 위의 예에서 물은 필요한 만큼 취하게 되면 갈증이 해소되고 더 이상 탐욕하고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④명색의 단계에서는 물과 같이 생존과 직결되는 대상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자아의식을 채워주는 대상으로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명색(名色)에 대한 이해다. 전통적으로 명색은 정신과 물질(6경: 색성향미촉법), 즉 6가지 감각기관인 육입(六入)의 인식대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때의 인식대상들은 실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아만, 아애, 아견, 아치의 4가지 번뇌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감각기관과 인식기관은 이들 대상들이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내어 주는지,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주는지, 얼마나 더 인정하고 사랑하는지를 분별해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갈증이 나는 상태에서 우리의 감각/인식기관인 안이비설신의가 모두 물을 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고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만일 그것들이 돈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명품을 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전자는 조건이 충족되면 그 욕구가 금방 해소되고 고통도 사라지지만 후자는 그 욕구가 끝이 없기 때문에 고통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명색의 단계에서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다.


▲서광 스님
즉 감각/인식대상에 대해 사심사관을 통해 그 대상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名), 그 이름에 붙여진 뜻(義), 본질적 공통점(自性),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 차이(差別)를 분석하고 자각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반복적 과정을 통해 우리의 감각/인식기관이 그 대상들로부터 보다 자유롭고, 덜 집착하도록 만듦으로서 고통의 순환고리를 약화시킬 수가 있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seogwang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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