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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륜사 주지 본각 스님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엔 봄 매화향이 숨어 있다

 

▲본각 스님

 

 

오늘은 입춘입니다. 봄이 시작된다는 절기입니다. 동양에서는 1년을 24절기로 나눕니다. 그 24절기의 첫 시작이 입춘입니다. 봄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때라는 뜻입니다. 입춘이 지나면 우수, 경칩, 춘분, 청명이 지나고 봄기운, 생명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봄이라고 하면 불자님들은 어떤 것이 떠오르십니까. 봄이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특히 입춘은 혹독한 겨울의 기억, 음울하고 어두운 기운을 흘려보내고 다가오는 따뜻한 기운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봄은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봄은 반드시 겨울을 거쳐야만 옵니다. 겨울을 지나서 오기에 봄은 더 따뜻하고 거룩하게 여겨집니다. 중국의 옛 선사들은 봄의 따뜻함을 시로 읊었습니다. 황벽 희운 선사의 시는 이렇습니다.


동유후이곡유심 (桐愈朽而曲愈深)
매유한이향유고 (梅愈寒而香愈高)
설심시견송백조 (雪深始見松栢操)
사난방지장부심 (事亂方知丈夫心)
오동나무는 세월이 많아야 그 곡조가 깊고 매화는 추워야 향기가 더욱 진하다


눈 쌓인 소나무라야 비로소 그 지조 더욱 푸르고 어려운 일 만나야 비로소 장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핵심은 ‘매유한이향유고’입니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전령인 동시에 군자의 꽃이라고도 합니다. 향기도 은은할 뿐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귀한 자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매화는 겨울이 혹독할수록 그 향기가 더욱 높고 진해집니다. 누구나 봄을 기다리며 봄의 좋은 것만 생각하지만 그 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혹독한 겨울을 지나야 온다는 것입니다. 그 이치를 선사는 시로 남긴 것입니다.


그 앞의 구절 ‘동유후이곡유심’에도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오동나무는 굉장히 가벼우면서 단단한 나무입니다. 이 오동나무로 동양에서는 악기를 만드는데 나무가 오래되면 될 수록 좋은 악기가 됩니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속이 비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에 속이 다 썩어 없어지면 비로소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의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악기를 만드는 나무는 새로 밴 나무가 아니라 수 십 년 흘러서 속이 썩을 대로 썩어 텅 빈 나무입니다. 불자님들이 세상을 살며 6,70세 즈음 되면 “속이 다 썩었다”는 말들을 많이 하십니다. 머리가 허옇게 되신 어르신들이 “속이 다 썩었다”는 말씀을 하시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사실, 저는 나이 먹는 게 참 좋습니다.


인생의 겨울은 성장의 기회


나이를 먹으면 물론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지만 참 좋은 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절을 삐뚤빼뚤 하는 모습을 보며 흉을 봤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며 나도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게 되니 비로소 절은 삐뚤빼뚤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것은  참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진리라고 느껴집니다. 저는 젊었을 때 외골수였습니다. 그래서 노스님들을 보면서 ‘왜 절을 저렇게 하실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1988년 겨울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3000배를 하면서도 한 번도 흐트러지게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사람인데 이제 노인들이, 다리 아프신 분들이 삐뚤빼뚤 절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이에 오지 않았다면 이 진리를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나이를 먹고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오동나무가 오래되고 오래되어 속이 다 썩어버리고 나서야 좋은 악기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나무는 썩으면 썩을수록 곡조가 깊다고 선사는 읊은 것입니다.


이 시는 작은 어려움에 좌절하지 말고 고난이 있다고 해서, 겨울이 길다고 해서 봄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긴 겨울과 고난, 모든 어려움은 나 자신을 오히려 한 층 더 승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봄을 기다리는 불자들은 지금 이 겨울을 통과해야 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괴롭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지금이 겨울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며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제 제가 어느 신도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5년여 전에 함께 일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인연이된 분입니다. 그 분이 오랜 만에 전화를 해서 아는 분의 상담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뵙는 보살님과 무려 4시간여를 상담 하게 됐습니다. 그 보살님 첫 말씀이 “그냥 죽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보살님 얼굴을 보니 그야말로 죽을상인 것이 그냥 놔두면 정말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죽고 싶은가 들어봤더니 아들을 둘 두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이 문제였습니다. 그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법관에 뜻을 두었는데 이번에 로스쿨 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그런 일로 죽을 마음이 생길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온 집안 식구들 모두가 오래전부터 그 아이 법관 되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시험에 떨어지고 나니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삶의 의미조차 없어지는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딱 죽고 싶어질 때,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 희망을 버리기보다는 겨울을 통과해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불자의 길입니다.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고 붙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입니다. 어쩌면 너무 지나친 욕심 때문에 벌어질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그것은 너무도 큰 고통입니다. “남의 염병보다 내 고뿔이 더하다”는 옛 말처럼 자기가 갖고 있는 괴로움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며 아무도 대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담을 한 보살님이 “나이 오십에 처음 당하는 절망”이라고 하기에 제가 한 마디 거들어 “이제 종종 당할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나이를 더 먹을수록 몸도 무너져 갈 것이고 자손들도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면 ‘아, 지금이 겨울이구나, 하지만 이 겨울은 그냥 겨울이 아니다. 봄을 준비하는 겨울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겨울을 통과할 때 더 거룩한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일을 관계 속에서 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대립적으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대립적인 관계 속에서 비교하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그 대립은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밤과 낮이 대립이고 남자 여자가 대립입니다. 저 사람이 갖은 것은 좋은데 내 것은 그렇지 못하고 저 사람은 이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고 등등. 그 모든 현상을 보면서 괴로워한다면 우리의 삶은 대립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끝없는 괴로움입니다. 진리를 보지 못하고 현상으로 보이는 것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현상 너머에 있는 진리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대립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의 모습인데 그 대립에 끄달려 좌충우돌하는 것은 나의 망상이고 나의 번뇌입니다.


현상에 흔들리면 번뇌의 연속


설사 한 없이 복잡하고 어려울 일이 생겨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라도 그것은 겨울을 통과하는 과정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춘유백화추유월 하유량풍동유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약무한사괘심두 변시인간호시절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 밝고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 불고 겨울에는 눈 내리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좋은 시절이라네.


내 인생 아닌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들이 시험에 안 되어도 내 인생이고 합격해도 내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곁눈을 팔 필요가 없습니다. 무문 혜개 선사의 시처럼 그 현상을 잘 극복해서 그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유유자적하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묻지 마십시오.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난 후 된 일에 감사하고 안 된 일에 다시 노력하는 것입니다. 안된 것을 붙잡고 울고 속상해하면 그것 또한 바보입니다. 이것이 참된 불자의 마음입니다. 현상은 모두 대립이지만 그 각각의 현상에는 동일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은 병고와 건강을, 가난과 부를, 합격과 낙방을 동일한 가치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음이야 말로 참된 거룩함입니다. 모든 대립 개념을 넘어 그 깊은 곳에 흐르는 참다운 생명의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화로운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늘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2월4일 입춘을 맞아 금륜사에서 열린 입춘 법회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본각 스님

1952년생.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고마자와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계종 11,12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현 중앙승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본지에 ‘법구경’의 말씀을 풀이한 ‘진리의 말씀, 천불만다라’를 연재한 바 있으며 2010년 천불만다라 도량 금륜사를 창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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