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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왜 절에 꽃 항아리 그림이 그리 많은가?

만발한 꽃, 사방으로 펼쳐지는 불법 형상화

인도선 물 자체가 귀해
물항아리 대신 꽃 활용

 

스투파는 가득찬 항아리
사리알 담는 알과 같아

 

 

 

인류 역사상 그림이 액자 속에 들어가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은 근래의 일이다. 서양화의 원조는 성당 벽화나 천정화였다. 마찬가지로 불교 절집은 사방 안팎 위아래에 그림이 가득하다. 답사를 다니다 간혹 마주치는 스님과 그림 얘기를 나누자면 “그런 건 몰라도 돼” 하는 퉁명스러운 답을 가끔 듣기도 한다. 그림은 문자 보다 더 효율적인 종교 교리를 나타내는 교육적인 수단인데, 안타깝게도 천년 이상의 우리 불교가 흘러내려오면서 원 뜻을 잃어버린 채 그림 문맹이 되고 말았다.


절집에 가면 항아리에 꽃이 가득한 그림을 자주 볼 수 있다. 보통 처마 밑 포작 사이 삼각형 틈새 벽이나(그림1) 출입 문짝에 그려져 있다. 항아리에서 솟아난 꽃이 연속적 넝쿨무늬로 뻗어나간다. 한국 미술사학계에서 지금도 통용되는 일본인 작명 오류명칭, 뜬금없는 당나라 풀 ‘당초문(唐草紋)’을 근래 미술사학자 강우방 선생이 신령스런 기운의 ‘영기문(靈氣紋)’이라 수정 명명하였다. 그냥 보기 좋으라는 장식용 꽃 그림이 아니라 깊은 뜻이 숨어있다.

 

▲5. 정수사 법당 문 가득찬 꽃항아리.

얼마 전 산사나이 박영석 대장이 실종된 히말라야 봉우리가 ‘안나 푸르나’였다. 번역하면 ‘풍요의 여신’이다. 전 편에서 사리를 항아리에 담는 이유는 물이 귀한 인도에서 물 항아리는 귀함 자체이고, 둥그런 인도 탑은 속에 부처님 사리 알을 담는 가장 바깥 항아리로서 곧 큰 알이라고 하였다. 항아리는 인도 원어 ‘푸르나 가타’ 즉 ‘가득찬 항아리’라 하여 숭배된다. 한자문화권 학문을 선점한 일본인들이 백 년 전 ‘만병(滿甁)’으로 번역하였다. 불통의 구세대 어려운 한자용어 대신 쉬운 한글 ‘가득찬 항아리’ 줄여서 ‘찬 항아리’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


인도에서 불교는 물론(그림2) 힌두교, 자인교 모든 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흔히 ‘자이나교’라 부르는 것은 받침 발음을 못하는 일본인들의 열등한 식민잔재 언어이다. 인도 발음은 ‘잰’, 영어 발음은 ‘자인’이다) 엘로라 자인교 석굴 기둥 위 항아리에 꽃이 넘쳐 휘늘어진 장식으로 나타난다.(그림3) 이후 인도 사원의 기둥 주두에서 단순화 되어 두 갈래 늘어진 꽃 항아리 모양이 정형 양식화 된다.(그림4)


가득 찼다는 것은 물론 물이 가득 찬 것인데 형상 없는 물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대신 꽃이 만발한 모습으로 나타낸다. 강화도 정수사 법당 전면 모든 문짝마다 항아리에서 솟아 올라온 꽃들이 만발하는 장관을 이룬다.(그림5) 법당 바로 옆 바위 샘물이 있는 정수사(淨水寺)는 이름 그대로 ‘깨끗한 물’의 절이다. 그릴 수 없는 물 대신 밑바닥 항아리에서부터 줄기가 엄청나게 뻗어나와 꼭대기까지 꽃이 만발하는 ‘가득 찬 항아리’를 창살로 교묘히 표현하고 있다.


인도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4대 도시 첸나이의 박물관에 가면 남부를 볼 수 있는 인도 박물관이 있다. 남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중부 조금 남쪽이다. 인도는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 대 제국을 이룩한 아소카왕도 현재 타밀나두 지역의 남부는 먹지 못하였다. 그래서 남부는 북부와는 전혀 달리 인도 순 토종 드라비다 문화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 나중에 볼 아마르바티나 나가르주나콘다의 남부 불교 사원 폐허 터에서 바닥만 남은 평지 대형 스투파를 덮었던 석판 파편들이 전시되어있다. 서양 놈들이 대부분 약탈하여 자기들 대영이니 루불이니 하는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일부만 인도 박물관에 남아있다. 산치 같은 중·북부 민 스투파와는 달리 스투파 표면에 장식을 요란스레 하기 시작한다. 불교 용어로 ‘장엄한다.’이다. 그중 꽃이 가득 담긴 배가 땅땅한 모습의 항아리 석판 부조가 하나 보인다.(그림6)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항아리를 가로지른 꽃술 띠이다. 인도에 가면 꽃을 실에 꿰어 띠로 만들어 신에게 공양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항아리 꽃술 띠가 그대로 아마르바티 석판의 스투파 윗부분에 두른 장식 띠 모습과 완전 동일하다는 것이다.(그림7) 즉 ‘가득찬 항아리’는 곧 제일 바깥 항아리인 스투파의 ‘불란(佛卵)’과 같다는 필자의 주장이 입증된다. 한국 석탑에서는 지난 글 4회의 그림2, 실상사 탑 꼭대기의 ‘불란’(오류용어, 복발)에서와 같이 좀 더 단순화 된 가로 꽃띠로 장엄된다.

 

 

▲ 6. 가득찬 항아리 스투파 석판. 왼쪽. 7. 아마르바티 스투파 석판 부조. 가득찬 항아리 장식 술과 같음. 가운데. 8. 스투파 상부 만발한 양산 꽃. 나가르주나콘다 석판 부조. 오른쪽.

 


앞서 본 산치 스투파 꼭대기에 고귀함을 나타내는 외기둥 양산은 점차 중앙과 좌우 세 줄기로 (마치 삼존불처럼) 뻗어나가 양산이 개개로 보면 버섯모양, 전체로 보면 꽃송이 모양으로 변화하여 층층 만발하여 뻗어나간다.(그림8) 스투파는 곧 ‘가득찬 항아리’이고 꼭대기에서 꽃이 만발하여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가득찬 항아리는 지난 호의 석류항아리 알집에서 알이 나와 뻗어나가는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절에서 흔히 보는 항아리 꽃 그림은 단순 장식 문양이 아니라 ‘가득찬 항아리’ 즉 부처님 사리 알이 새생명으로 깨어나 진리가 되어 세상 만방으로 화려하게 한없이 점점 퍼져나가는 불교의 깊은 속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희봉 교수
다음 편에서는 우리 탑 꼭대기에 중국 번역불교 1700년 동안 ‘상륜(相輪)’이라 불러온 엉터리 용어를, 곧 바퀴와 양산도 구분 못하는 한중일 불교의 무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희봉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hblee@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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