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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거북

단단한 등껍질로 탐욕 막는 무장

 

▲오대산 적멸보궁 거북.

 


삶 자체가 수륙양생이다. 단단한 등껍질은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주술가들이 예부터 눈여겨봤던 이유다. 등껍질을 태워 갈라지는 모양으로 점을 쳐 하늘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귀복(龜卜)’이다. 여기서 ‘구복’과 ‘거붑’을 거쳐 ‘거북’이 탄생한 것이다.


중국에서 거북은 용과 봉황, 기린과 함께 4가지 영물 중 하나로 숭배됐다. 4가지 방위 중 북쪽을 지키는 수호신 ‘현무’가 바로 거북이다. 중국 남쪽 장강 중류 지방에 있던 초나라의 가사 ‘초사’ 연유편에는 현무를 설명하는 기록이 전한다. “암수가 한 몸이고 거북과 뱀이 모인 것을 이른다. 북방에 위치하므로 현(玄)이라 하고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으므로 무(武)라고 한다.”


사찰 곳곳엔 거북이 숨어 있다. 큰스님 부도비를 떠받들고 수미단, 법당 지붕을 받드는 기둥에서 벽화 속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찰 이름을 바꾼 거북도 있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 구룡사는 유난히 곡절이 많았다. 조선시대 치악산 나물은 대부분 궁중에 납품됐는데,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 책임자였다. 인근 사람들은 나물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로비를 하기도 했다. 하여 구룡사는 물질은 10점 만점에 10점이었으나 수행도량으로서는 빵점이었다. 이 때 한 스님이 절 입구 거북바위 때문에 몰락한다며 바위를 쪼개라고 충고했다. 이에 바위를 쪼갰지만 구룡사는 더욱 더 쇠락해갔다. 이번엔 다른 스님이 나타나 절 입구를 지키는 거북바위를 없앴기에 망했다고 했다. 주지스님이 당황하자 “거북을 살리시오”라고 답했다. 주지스님은 방도를 물었고 절 이름에서 ‘아홉 구(九)’를 빼고 ‘거북 구(龜)’를 넣으라했단다.


거북은 위기에 처할 때면 얼굴과 손, 발을 등껍질에 감춘다. 등껍질로 외부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때문에 현무에서 ‘단단할 무(武)’자가 쓰였다. 중국과 한국에서 타고난 무장으로 비유되는 연유도 여기 있다. 부처님은 이런 특징을 설법에도 사용했다. ‘중아함경’엔 굶주렸던 자칼을 피해 머리와 꼬리, 다리 모두를 껍질 속에 숨겼던 거북 얘기가 나온다. 부처님은 머리와 꼬리, 네 다리를 안이비설신의 육근에 빗대 수행자들을 경책했다. “색,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에 집착해 눈, 귀, 코, 혀, 몸, 뜻을 밖으로 드러내려 하지 말라. 설사 육근이 나온다 하더라도 자칼이 거북을 어찌할 수 없듯 다스려야 한다.”


육근으로 인해 색,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에 집착하는 순간 번뇌라는 그물에 걸리니, 거북처럼 단단한 수행 껍질로 이를 물리치라는 설법인 게다. 부처님 전생담 ‘자타카’에도 비슷한 얘기가 전한다. 고향을 향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 거북이 삽에 찍혀 죽는다는 얘기로 집착을 버리라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윤회 사슬을 끊고자 치열하게 정진 중인 눈 푸른 납자의 가행을 독려하는 데도 거북이 등장한다. 맹귀우목(盲龜遇木)이다. 눈 먼 거북이 숨구멍 난 나무판자를 만나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 확률이다. 목숨 줄 구할 중대한 인연이다. 눈 먼 거북이 숨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해  머리를 내밀 듯 납자들도 끊임없이 탐욕 바다 밖을 향해야 한다. 지치고 끝이 없어 보여도 언젠간 반드시 생사 고리를 잘라내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채찍이다.


눈 먼 거북이 부산 범어사 금어선원 문빗장에 떡 앉은 이유다. 금어선원 문빗장이 열리는 순간, 눈 푸른 납자들은 고해와 탐욕 바다에서 숨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는 것이리라.


부지런히 물 속 손과 발을 저어 고해 밖으로 머리를 내놓아야 할 일이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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